이것은 외국인 노동자의 또 다른 고군분투?
저는 새해를 맞아 포트폴리오를 정리하는 겸, 글을 쓰기로 했어요. 재미있는 생각들이 번뜩일 때마다 다이어리에 메모하는 걸 좋아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작은 메모조차 다시 들여다볼 시간이 없더라고요.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반짝였던 생각들이 기화되는 거 같이 느껴졌어요.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메모들에 살을 붙여놓는 시간을 가지는 게 어떨까'라고 2021년 목표를 다짐해봤어요. 번뜩이는 생각들을 정제하고 제련하는 과정을 통해 태어난 글들은 더 재미있는 일을 벌일 때 유용할 것 같더라고요. 이미 글로써 필터링이 되어 저장된 데이터니까요. 드문드문 올라올 글들은 특정한 주제는 없지만 미술판에서 연구/일하는 사람의 짤막한 사색, 사유 정도가 될 것 같아요.
프랑스 좋아하세요?
프랑스에서 태어난 작품들을 좋아하시나요? 혹시 프랑스 미술의 역사는요? 이 질문들에 'YES'라고 답해주신 분들은 아마 프랑스의 1848년부터 1914년 사이에 태어난 작품들을 다루는 오르세 미술관을 다녀와 보셨을 것 같습니다.
오르세의 수많은 소장품들을 통해 우리는 그 시대를 여행해 볼 수 있죠. 마치 필름 한 장 한 장이 이어져 만들어진 영화처럼요. 오르세 미술관의 작품들을 연구하고 시대상과 가치를 읽어내 관람객들에게 선보이는 오르세 미술관의 학예사, 큐레이터는 무슨 일을 할까요. 저는 2019년 그들과 함께 건축 큐레이팅 연구원으로서 오르세 미술관에서 몇 가지의 프로젝트를 수행했습니다. 제가 참여한 전시나 연구들을 소개할까 해요.
가장 먼저 실행에 참여하고 작품 리서치를 진행했던 건축 전시 < Le Pari(s) de la modernité (현대성의 모험) >(2019/09/13 - 2020/01/06)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하지만 그전에 전시가 기획된 배경을 살펴볼까 해요.
오르세 미술관정책에 관련된 이야기인데 꽤 재미있어요.
오르세 미술관은 2019년 9월 10일 후기 인상주의관 (Gallery postimpressionist)을 새롭게 개관했습니다. 그동안 미술관 정책에 따라 컬렉팅 된 인상주의의 많은 소장품에 비교 보았을 때 후기인상주의관은 상대적으로 빈약하게 다뤄져 왔습니다. 또한, 관람 동선도 5층 전관을 통해 인상주의 컬렉션을 본 뒤 다시 2층으로 이동해야 후기 인상주의 작품들을 이어서 볼 수 있었죠. 시대순에 따른 동선이 ‘가장 좋은 작품 관람 방법’이라고 말씀드릴 순 없지만, 작가들이 살았던 시대를 상상하면서 작품을 보는 것이 해석에 도움될 때가 많아요. 우리에게 당연한 재료인 ‘튜브 물감’이 클로드 모네가 살았던 시절에 발명되었기 때문에 많은 인상주의 작가들이 아뜰리에를 떠나 들판과 강변의 풍경을 그 자리에서 그릴 수 있는 자유를 갖게 된 사건처럼요. 동선에 따라 작품의 구도와 색채, 다루는 소재들의 변화를 기민하게 비교해보며 작가 개인의 변화, 화풍의 변화 나아가선 시대의 변화까지 읽어볼 수 있는 게 우리가 살아보지 않았던 19세기 말 20세기 초를 다루는 오르세 미술관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조별 소장품의 양(질)적 격차, 동선의 부조화가 인상주의/후기 인상주의 컬렉션 정책의 맹점이라 분석한 오르세 측은 리노베이션을 진행합니다. 5층 인상주의관이 끝나는 지점에 추가로 9개의 전시실 (760m2)을 덧붙였어요. 이 과정을 통해 관람객이 인상주의에서 후기 인상주의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동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르세는 세계에서 2번 째로 많은 반 고흐 컬렉션을 소장한 미술관이 됐고 Émile Bernard, Sérusier 등의 후기 인상주의 작가들의 작품을 추가로 구입하고 기증받아 총 136점의 풍성한 컬렉션을 완성했습니다.
짙은 초록 컬러를 선택한 시노 그라피가 참 인상적이에요. 오르세 미술관은 소장품 전시(Collection permanente)가 메인이고 일 년에 2-4개 정도의 기획전시가 운영되기 때문에 상설전시관 디자인에 상당히 공을 들입니다. 물론 작품 선택에 있어서도 엄청난 연구가 진행되고 있고요. 연구에 기반해 주요 작품에는 '작품 설명'이 붙게 돼요. 불어로는 Cartel développé라고 부릅니다. 이 부분은 다음에 들려드릴 내용과 아주 밀접하기 때문에 미리 말씀드려요. 본 글의 맨 위 사진에 보시면 벽에 기대어있는 회색 패널이 보이시나요? 그게 바로 작품설 명란입니다. 작품 타이틀, 매체 정보, 사이즈 등과 함께 짧게 작품의 중요성에 대해 적어요.
다시 돌아와서 새롭게 태어난 후기 인상주의 갤러리에는 ‘건축 데생(Cabinet d'architecture)’컬렉션을 선보이는 전시실도 물론 함께합니다. 후기 인상주의와 동시대의 1890년대부터 1900년대 유럽 건축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보여주는 목적의 전시실이죠. 저는 이 전시실에 선보이기 위한 1889년 만국박람회, 1900년 만국박람회의 건축 데생들을 연구했습니다. 그중엔 오르세 소장 이후 최초로 선보이는 작품도 있었고, 제가 진행한 연구가 해당 작품에 대한 첫 연구로 관람객에게 소개되고 있어요. 물론 작품 설명란도 작성했고요!
(이 작품들은 곧! 따로 보여드릴게요. 제가 텍스트 벌레라서요…)
To be continued
+ 아 그리고 ‘시대별 미술관정책에 따른 소장품의 격차’, 참 흥미롭지 않나요? 이 주제에 대해서도 할 말이 참 많은데 언젠가 브런치에서 다루는 날이 오기를! ㅎㅎㅎ 제가 참 좋아하는 주제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