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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희 Dec 19. 2020

없는 맛을 사냥한다.

톡, 톡. 토도독.

프라이팬 위에서 달걀이 하얗게 익어간다.

떠오르는 태양을 올려놓은 듯한 달걀 프라이는 내가 아침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요리다.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요리지만, 나에겐 매번 도전장을 내미는 요리 이기도 하다. 집는 순간부터 예쁘게 금이 가기를, 투명한 흰자가 멋지게 안착하기를 바라보지만 성공하는 날보다는 실패하는 날이 더 많다. 다행히 식구들은 특별히 모양에 신경 쓰지 않고 먹는 편이지만 나에겐 늘 아쉬움과 즐거움이 교차하는 요리 중 하나다.


내가 기억하는 나의 첫 요리는 된장찌개다.

대학교 4학년 봄, 독립과 동시에 나에게 첫 주방이 생겼다. 도마를 놓기 힘들 만큼 작은 공간이었지만 나는 들떠있었다. 독립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었는지 누군가에게 요리를 해주고 싶었었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뭐든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에 연습 한번 없이 동아리 친구를 자취방으로 초대했다. 떡볶이나 사 먹자는 그녀의 말은 나의 의지를 더욱 불타오르게 했다. 간단하다고, 재료만 넣고 끓이면 된다고, 맛있게 먹을 준비나 하라고 친구를 안심시킨 뒤 나는 끓는 물에 된장을 풀었다. 보글보글 된장이 끓어오르는 행복도 잠시, 감자와 호박을 넣고 반듯하게 썬 두부를 넣는 순간 국물이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당황해하며 아직 두 손에 남아있는 두부를 어쩔 줄 몰라하는 내게 친구는 말했다.

“뭐 하냐. 두부 한 모 다 넣냐.”


내가 요리가 가장 즐거웠었던 순간은 미국에 머물 때였다. 배달이나 외식이 쉽지 않은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음식을 만드는 즐거움에 빠졌다. 늘 싱겁게만 먹던 내가 간이라는 것을 맞출 줄 알게 됐고, 구하기 쉽지 않은 재료들을 찾아다니며 음식에 대한 호기심도 생겨났다. 낯선 언어로 적힌 생소한 식재료들은 나에게 도전정신을 불러왔고, 주방은 내게 곧 창조의 공간이 되었다. 당시 나는 향과 색, 맛을 만들어내는 즐거움에 완전히 매료됐었다. 도마 위에서 들려오는 칼질 소리에 리듬을 타고, 신선한 과일과 살짝 데쳐낸 채소의 색감에 온전히 마음을 빼앗겼었다. 재료가 익어가는 동안 모락모락 피어나는 향이 집안의 공기를 데우는 시간, 바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순간이었다.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치킨과 닭강정 사이 그 어디쯤.


반면, 요즘 나에게 요리는 스트레스다.

코로나-19로 온 식구가 집에서 끼니를 해결하면서 의무감으로 요리를 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저 요리는 배를 채우기 위해 해야 하는 노동에 불과하다. 노동시간은 짧을수록 좋다. 특히 시간에 쫓기거나 마음이 콩밭에 가 있는 날에는 그 시간이 더욱 괴롭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간편식으로 때우는 날도 늘어났다. 다행히 요즘은 누구나 셰프가 될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하고 편리한 제품들이 많다. 손질되어 오는 재료를 냄비에 넣고 종이에 적혀 있는 대로 끓이기만 하면 근사한 요리가 완성된다. 적당히 만들어도 레스토랑에서나 볼법한 비주얼에 맛도 함께 보장한다. 하지만 왠지 성취감보다는 안도감이 드는 이런 식사 준비를 마치고 나면 공허할 때가 많다. 정점을 찍지 못하고 내려오는 롤러코스터처럼 아쉬운 향만이 가득하다.


그래서인지 아이들도 내게 종종 묻는다.

“엄마, 이거 엄마가 직접 만든 거야?”

“엄마가 그때 미국에서 만들었던 거, 그거 먹고 싶은데..”

엄마 김치, 엄마 김밥, 엄마가 만든 닭고기. 엄마가 한 탕수육. 그럴 때마다 어디 ‘엄마 맛’을 파는 가게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나도 그리운 엄마의 배추전을 언제든 지 사 먹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팔지 않는 맛,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그 맛은 몸과 마음이 지칠수록 더욱 그리워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거실을 가득 채운 오후의 햇살을 뿌리치고 주방으로 향한다.

우리 가족만의 맛, 없는 그 맛을 사냥하기 위해.




Image thanks to unsplash @timchow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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