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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희 May 28. 2021

Andante, Andante!

티브이에서 어느 가수가 연습생 시절 자신의 모습을 회상하며 말했다.

타고난 재능도 없고, 열심히 노력은 하는데 특별함이나 뛰어남이 드러나지 않아 좌절했다고.

순간 하던 일을 멈추고 나는 화면 속의 그를 봤다. 아주 잠깐이지만 그의 눈 속에 지금의 내 모습이 스쳐갔다. 동시에 무기력과 우울 사이의 어느 지점에 있는 내게 반문했다. 정말로 그 가수만큼 열심히 살고 있는 게 맞냐고.


몇 달 전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그림 그리기에 매달렸다. 처음 시작을 하기까지는 큰 용기가 필요했지만 막상 시작을 하고 보니 거침이 없었다. 마치 숨겨두었던 나의 샘을 퍼올리듯 매일매일 그렸다. 그리는 것 자체가 즐거웠기에 다른 어떤 의문도 품지 않았다. 팔리기 위한 그림을 그리는 것도 아니었고 집에 걸어두거나 누군가를 위해 그리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내가 긋는 선과 채우는 면이 좋았다. 어쩌다 아주 만족스러운 그림이 탄생하면 유명 작가가 되는 공상에 가까운 상상을 하며 행복해했다. 나보다 한참이나 어린, 함께 그림을 배우는 친구들은 그런 나의 모습이 매우 고무적이라고 했다. 그들의 격려에 어느 순간 내 안에는 큰 희망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래, 바로 이거였어! 여기가 바로 내가 찾던 세계야!’

그 희망은 곧 삶의 목표가 되고 열정이 되었다. 내일이 오면 그 세계에 조금 더 가까이 가 있을 것 같은 설렘에 매일 밤 흥분되는 마음으로 잠을 청했다.


하지만 진지하게 한 발짝씩 다가갈수록 내 마음은 기울기 시작했다. 매 순간 내가 걸어가고 있는 길을 저울질했다. 고작 이 정도의 마음이었나 하는 자책과 시늉만 하는 것 같은 나의 도둑놈 같은 심보에 속상함과 화가 동시에 올라왔다. 즐거웠던 순간들은 미래를 위해 희생하는 시간이 됐고 무거운 마음만큼이나 나는 어두워졌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이미 벌려놓은 일들과 앞으로 하고 싶은 것들이 한꺼번에 눈앞에 펼쳐졌다. 욕심이 늘어나는 만큼 마음은 조급해졌다. 급기야 스스로 남들과 비교하고 나이를 탓하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돌봐야 하는 상황, 가정 내에서 예기치 못하게 생기는 일들에 시간을 빼앗기게 되자 극도로 예민해지는 날들도 많아졌다. 모든 것을 다시 내려놓는 것도, 그렇다고 매진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타고난 재능과 특별함이 없다면 꾸준한 애정과 노력이 답이라는 걸 알면서도 의지마저 약한 나를 인정하는 것도 싫었다. 화선지에 먹물이 번지듯 내 삶의 모든 구석이 못마땅함으로 번져갔다.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고민한다. 이쪽 샘을 파야하는지 저쪽 샘을 파야하는지, 혹은 두 샘이 저 밑바닥에서 연결되어 있는 건 아닌지 하고 말이다. 이왕이면 더 확실한 샘을 찾고 싶은 마음도 여전하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샘 말이다.


하지만 오늘은, 어제보다 가볍다.

그것이 모지스 할머니(Grandma Moses)처럼 따뜻한 선배가 차려준 가래떡과 차 한잔 때문인지, 어느 식당의 된장뚝배기를 흉내 낸 나의 첫 전복 숙주 된장찌개가 성공한 덕분인지는 모르겠다. 분명한 건 보글보글 찌개 끓는 소리에, 집안 가득 퍼지는 구수하고 향에 내가 행복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오늘 밤엔 조용히 나를 달래 본다.

내일은 고민보다 내가   있는 일에 집중해보기로,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작은 순간이  삶을 지탱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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