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인도, Incredible India
인도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더더군다나 여자로 산다는 것은 어렵고도 매 순간 긴장해야 하는 삶이다. 외국인이면 돈이 많을 거라는 생각에 길만 지나다녀도 수없이 달라붙는 길가에 꾀죄죄한 아이들부터, 사소하게는 혼자 택시나 릭샤(태국의 툭툭이 같은 운송수단)를 탈 때에도 힐끔힐끔 룸미러로 쳐다보는 눈길까지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니다.
긴장해야 되는 일은 종종 있는데 그중 하나는 부득이하게 새벽에 택시를 탈 때이다. 휴가를 맞아 한국으로 가기 위해 공항으로 가기 위해 나 혼자 새벽에 택시를 타면 뉴스에서 보았던 수 많던 성범죄 기사들이 떠오르고 그 전날부터 오만가지 상상들로 밤잠을 설치곤 한다. 타자마자 괜히 아저씨에게 말도 걸고 먹을 것도 주고, 딸은 있냐 하며 아저씨의 가족들의 안부를 묻는 등의 갖가지 노력한다. 속으로는 '제발 제발, 저를 무사히 공항으로 데려다주세요. 아무 짓도 하지 말아 주세요. ' 하고 빌고 빈다. 무사히 공항에 도착하면 30분도 안 되는 거리에도 진이 다 빠진다. 인도의 상당수 남자들이 외국인 여자는 상대적으로 개방되어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이 때문에 벌어진 일도 있다.
한 번은 코친(코치)이라는 인도 남부 바닷가 도시로 여행을 혼자 방문했을 때다. (여자 혼자 여행이라니 미쳤다고도 하겠지만, 누구 같이 갈 수 있는 사람도 없거니와 코친은 상대적으로 인도의 여타 도시 중에서는 굉장히 안전한 축에 속하는 도시다) 코친 시가지를 구경하며 카페도 가고 델리에서는 잘 먹지 못했던 해산물도 먹으며 행복한 하루를 보내고 숙소로 돌아왔다. 혼자 지내는 것이라서 가격이 꽤 있는 괜찮은 숙소로 예약을 잡았는데, 체크인할 때 리셉션에 아주 건장하고 잘생긴 인도 청년이 있었다. 숙소 시설정보며 관광정보 등 아주 예의 바르게 설명해주는 이 청년은 호텔관광과를 전공하고 있단다.' 예의 바르고 건실한 청년이네' 하는 인상을 받았는데 그날, 일정 후 숙소로 돌아와 방으로 들어가는 길에 리셉션에 있는 그와 또 마주쳤다. 그 친구가 말을 걸더니
"너 혹시 호텔 루프탑에 수영장이 있는 거 알아?"
하는 것이었다.
"응? 수영장도 있어? 지금 볼 수 있는 거지? 올라가 봐야겠다! " 하고는 옥상으로 올라가려는데, 자기한테 열쇠가 있어서 지금은 잠가놨다는 것이다. 그래서 네가 사용을 원하면 열어주겠다길래, 그럼 나 방에서 쉬다가 30분 뒤에 올라갈 거니까 미리 좀 열어달라고 부탁했다. 호텔 루프탑에 올라가 보니 사람들은 없고 큰 수영장이 떡하니 있길래 와! 탄성이 나왔다. 숙소에 별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이런 것도 있구나 하며 수영을 막 하려는데 5분이 되었나? 갑자기 문을 열고 수영복을 입은 그 건실해 보였던? 청년이 들어오는 것이다.
"어? 너는 왜 들어와? 일 안 해?"
하니까 일이 끝나면 자기는 종종 수영을 하러 올라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뭐 신경 안 쓰고 개헤엄으로 파닥파닥 거리고 있는데 멀리서부터 수영장 코너에서 나를 지켜보더니 슬금슬금 내 쪽으로 나가오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수영을 가르쳐주니 마니 이래저래 말을 걸더니 내 허리를 잡고 키스를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여행을 하며 유난히 동양 여자들이 이 인도 놈들의 주 타깃이 되는 이유가 서양 여자들은 인도 남자들이 가슴을 만지고 도망가면, 욕을 하며 그놈을 잡아다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주변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구하는데 동양 여자는 순간 움츠려 들어서 아무 말 도 못하고 얼어버려 반격을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순간, 수영장에는 날 도와줄 수 있는 그 누구도 없었지만, 무슨 용기로 그랬는지 그놈의 가슴팍을 탁 밀치며
너 내가 인도 여자라도 이렇게 만나자마자 키스할 수 있냐? 외국인이라서 만만하게 보고 개방적이라고 착각하는지는 모르겠는데, 이거 성범죄야!
너 한 번만 더 이런 식으로 한국 여자애든 일본 여자 애든 만만하게 보면 너 트립어드바이저에 니 이름 사진다 뿌릴 거다. 이 개 같은 &#*#**야!
라고 나도 모르게 호통 쳤다. 순간 내가 강하게 나오자 움찔한 그는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면서 변명을 늘어놓았고 나는 당장 내일 너희 사장을 만나야겠다고 화를 내며 거의 울먹거리는 그를 뒤로하고 수영장 밖으로 나왔다. 다음날 체크아웃할 때까지 그는 나를 피해 다녔고 우연히라도 만나면 나는 죽일 듯이 째려보고, 그는 깨갱거리고 도망가기 일쑤였다. 지금 같으면 그놈 사진도 찍어서 한국 카페에도 올리고, 사장에게도 이메일을 보내고 등의 절차를 밟았겠지만, 그때는 구두로 경고를 주는 것 말고는 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게 이불 킥 할 정도로 아쉽다.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남성주의 인도 사회에서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 더더군다나 외국인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편견과 싸우는 일이었다. 어딜 가나 주목받고 범죄의 타깃이 되기 쉬운 삶. 지난 2년간 쌈닭처럼 항상 나를 보호하기 위해 모든 촉을 세우고 다녔다. 나 자신을 보호하지 않으면 공격받기 쉬우므로, 2년 동안 매일 출근길에 10루피를 더 받으려는 릭샤 아저씨랑 고래고래 언성을 높여 실랑이를 하고 (우리나라 돈으로 200원 가지고 싸운 거다), 비자 연장에 뒷 돈을 받아 챙기려고 별 꼬투리를 다 잡는 공무원 아저씨를 보고 이를 바득바득 갈고, 택시를 탈땐 목적지까지 에둘러 돌아갈까봐 구글맵을 켜는 등 항상 눈에 불을 켜고 살던 날들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인도를 사랑했다. 너무 미워해서 매일 치고박고 싸우지만, 그래도 함께 할 수밖에 없는 20년 부부처럼 인도를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인도에서의 적지 않은 한국 여성들이 인도에 살며, 인도 사람들과 맞서 싸우고 울고 화내고 악쓰며 편견에 싸우고 있다. 어쩌면 처절하게, 또 치열하게 인도를 살아가고 사랑하는 그들에게 오늘도 건투의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2년 동안 매일 고생한 나에게도 어깨를 토닥이며 말해주고 싶다. "이제 긴장 좀 풀고 살아도 돼. 싸우느라 고생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