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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균 May 20. 2022

조현병 환자의 그림에서 예술성을 발견한 정신과 의사

Das Selbst (1919), a self-portrait by Franz Karl Buhler

여러 철학자가 '광기'를 예술의 핵심 요소로 꼽았던 것에서 볼 수 있듯, 예로부터 정신건강의학과는 예술과 가장 밀접한 연관을 맺는 의학 분과 중 하나였다. 이에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작품을 수집하고 분석하려는 시도가 예전부터 있어왔는데, 미술사와 의학을 전공한 한스 프린츠혼(1886-1933) 역시 그런 시도를 한 인물 중 한 명이었다.


한스 프린츠혼은 1908년에 미술사 박사 학위를 받고 전문적인 성악 교육을 받은 뒤 다시 의학을 전공한 이색적인 경력의 소유자다. 1차 세계대전 이후 한스 프린츠혼은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의 작품으로 컬렉션을 만들었던 당대의 유명한 정신의학자 에밀 크라펠린(Emil Kraepelin)의 컬렉션을 발전시켜 1922년 Bildnerei der Geisteskranken(정신질환자들의 조형작업)이라는 책을 출간하기에 이른다.


앞서 언급했듯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들의 발상과 표현에 호기심을 가지는 사람은 많았다. 하지만 그것을 예술 작품으로 받아들이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한스 프린츠혼은 환자들의 작품을 병리적 산물 정도로 생각했던 기존의 담론을 뛰어넘어 그 안에서 조형미를 찾아내고자 했고, 그러한 시도는 파울 클레나 막스 에른스트와 같은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근대 정신병원에서 관습적으로 정신과 환자에게 채워졌던 족쇄를 풀었던 필립 피넬이 물리적 결박을 제거한 것이라면, 한스 프린츠혼의 시도는 환자들을 미학적 결박에서 해방시켰다. 무엇이 예술이고 무엇이 예술이 아닌지, 예술을 창조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은 누구인지 재단하려 들었던 나치즘의 광풍 한가운데 우뚝 선 그의 용기는 그래서 더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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