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간의 미국 생활 마무리 - 2021년 8월
"네가 영어를 못한다고 이상하거나 부족한 사람이 아니야. 영어를 잘 하든 못하든 친구들은 네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느낄 수 있어."
"나도 다 처음 해보는 거야. 엄마는 마흔이 넘었는데도 처음 해보는 게 이렇게 많네."
딸에게 했던 이 말이 아이가 낯선 미국 학교 생활을 시작하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고 믿는다.
2년 동안의 미국 생활 이야기를 전부터 기록하려고 했는데 결국 미국 생활을 한 달 남긴 지금에서야 쓴다.
2021년 8월 새 학기가 시작한 지 일주일이 지났을 때 우리 가족은 미국 얼바인에 도착했다. 오기 전부터 너무 바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비행기에도 거의 한숨도 못 잤지만 도착하자마자 미리 계약해 둔 집에 짐을 내려놓고, 은행에 가서 계좌를 개설하고, 차를 사고 집에 왔다. 지금 생각하면 다 어떻게 했나 싶을 정도로 바쁜 스케줄이었다. 게다가 한국에서도 초보 운전이었던 내가 해 질 무렵 퇴근 시간에 비몽사몽 상황에서 미국 고속도로를 달려 집에 온 기억을 떠올리면 지금도 식은땀이 난다.
살림살이가 아무것도 없어서 한국에서 가져온 얇은 이불을 덮고 바닥에 누워 자고, 3일 치 정도 챙겨 온 햇반과 반찬을 먹었다. 시차 적응도 못 했지만 미리 한국에서 입학 준비를 하고 왔기에 미국에 온 다음 날 바로 아이들은 학교에 갔다.
미국에 오자마자 가장 신경 쓰였던 부분은 아이들이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6학년이 된 딸은 내성적인 성격임에도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 친구들을 사귀려 애썼다. 반 아이들은 친절했지만 어느 무리에 들어가 친구가 되기는 어려워 한동안 점심시간에도 쉬는 시간에도 혼자 지내야 했다. 도움을 줄 수 있는 한국 친구도 없었다. 2학년이 된 아들은 파닉스와 간단한 단어 몇 개만 아는 정도여서 영어를 하나도 못 알아듣고, 당연히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Hi!"도 못할 정도로 온몸이 얼어붙어 있었다.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 친구가 도움을 주긴 했지만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잘 안 돼서 아들은 오로지 눈치로 생활했다.
매일 아이들이 학교 끝나고 나오면 아이들 얼굴을 살피게 되었다. 우리 아이들은 내성적인 편이고 이런저런 얘기들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라 학교 생활을 잘 알 수는 없었지만, 학교에 있는 내내 긴장 상태로 바짝 얼어있다가 엄마를 만나는 순간에야 약간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물론 처음 몇 달은 낯선 환경에서 생활하기가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가기를 기다리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고 함께 놀아주는 것뿐이었다.
우리는 거의 매일 저녁마다 학교에 가서 축구도 하고 놀이터에서 놀았다. 나는 체력도 약하고 운동은 정말 못하지만 그냥 같이 뛰고 놀려고 애썼다. 밤마다 보드 게임도 했다. 우스갯소리로 우리가 미국에 운동하고 보드게임 하려고 왔나 보다 했다. 그런데 이렇게 보낸 시간들이 아이들이 학교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날려 보내고 다음 날 또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데 힘이 되었던 것 같다. 세 달쯤 지났을까? 어느 정도인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아이들이 학교에 좀 적응했다 싶었을 때 이제 매일 하던 보드게임은 그만두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시작은 하지만 결국은 꼭 싸우고 화내고 끝났기 때문이다.
이 당시 사진을 보니 그땐 아이들이 많이 어린 줄도 몰랐었네, 지금은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내고 많이 성장했구나 싶어 기분이 이상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