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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꿀꿀 Feb 07. 2024

퇴사 후 세계여행에 2500만 원을 썼다

직장을 다닐 때의 나는 자주 그런 상상을 했다. 사직서를 던져버리고 배낭 하나 메고 세계여행을 떠나는 상상. 어쩐지 너무 무모하고, 그다지 현실성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1년 전, 나는 다른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교육공무원의 자리를 박차고 나와 그걸 실행에 옮겨봤다. 28살까지 모았던 돈과 퇴직금을 들고 배낭하나 들고 나는 여행을 떠났고, 1년간 여행에 총 2500만 원이라는 돈을 썼다.

나는 왜 여행을 떠났고, 여행이 끝난 후의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꿈 없던 직장인의 자각

직장을 다닐 때의 나는 더 이상 꿈이 없었다. 사직서를 내버리고 싶은 충동을 매일 아침마다 꾸역꾸역 참으며 출근했고 때가 되면 퇴근했다.

문득 앞을 바라보니 관성대로 살던 내 앞에는 정해진 허들 같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결혼적령기가 되면 결혼하고 애를 낳고, 워킹맘으로 아이를 기관에 맡기고 출근했다가 퇴근하면서 어린이집에 하루종일 있었을 내 아이를 돌보고, 운이 따라준다면 승진을 몇 번 하고, 명예퇴직을 하고 노년에는 악기나 서예 같은걸 배우리라는 미래. 그 미래가 두루마리 휴지가 맥없이 펼쳐지듯 내 앞에 펼쳐져 있었다. 도톰하고 부드럽고 하얗고 향기도 나는 것만 같은 길이지만 내겐 더 이상 기대가 되지 않는, 남들은 다들 좋다고 하고 그렇게 사는 게 최고라고들 하는데 나는 그게 좋은 건지 도저히 모르겠는 그런 길. 그런데 심지어 그 길을 위해 내 모든 인생을 걸어야 하는 그런 길.

그 길 위에서 우울과 권태로 미쳐버릴 것 같았던 어느 봄, 다시 써본 <내가 살고 싶은 인생의 모습> 리스트에는 세계여행과 워킹홀리데이가 있었다. 리스트를 적으면서 눈물을 질질 흘리던 나는 다시 태어나면 지금처럼은 안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잠깐, 그런데 나에게 다음 생이라는 게 있나? 어쩌면 내게 주어진 생은 이것뿐일지도 모르는데?

 그때 나는 다짐했다. 모든 걸 떠나 그냥 내 마음이 원하는 걸 하겠다고. 그렇게 나는 여름에 사직서를 냈고 가을에 세계여행을 떠났다.


길을 잃어봐야 진짜 내가 갈 길을 찾을 수 있다.

 1년간 인도와 동남아, 아프리카와 유럽을 다녔다. 배낭을 메고 한동안 혼자서 내가 가고 싶은 미지의 곳을 향해 걸어보니 알 것 같았다. 그간 내가 어디로 걷고 싶은지도 모른 채 남들의 말과 남들의 시선에 맞추어 걸었다는 걸.  

여행을 하는 내내 낯선 곳에서 밥을 먹고, 낯선 곳에서 자면서 시종일관 길을 잃은 기분이 들었지만 훤히 아는 길을 걸을 때보다 비교도 안될 만큼 행복했다. 길거리로 나오자 그제야 길 위의 수많은 배낭 여행자들도 보였다. 호텔을 하나 가지고 있어서 1년 365일 여행 중이라던지 풀 재택근무인 회사를 다니며 여행 중인 정상적인(?) 친구들도 있었지만, 거지꼴로 작은 가방하나만 들고 다니며 머무는 곳에서 봉사를 하고 요가를 가르치며 다니는 히피 친구, 길거리 같은 데서 자면서까지 여행을 하며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빠져나와야 한다며 진지하게 얘기하던 몽상가 같은 친구도 있었다. 난 나름 큰 결심하고 간 건데, 나처럼 퇴사를 하고 여행을 하는 여행자는 너무 흔해서 눈에 띄지도 않았다. 그런 여행자들과 이야기하면서 나는 사람이 단지 나이가 든다고 늙는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배웠다. 내가 소설가가 되고 싶다던지, 프랑스에서 미술 공부를 하고 싶다던지 뉴욕에서 일해보고 싶다던지 하는 이상적인 꿈을 말하면 그들은 20대부터 60대까지 나이불문 이렇게 답했다.

Why not? Do it!

그걸 외치는 그 눈빛에는 진심이 담겨있었다. 왜 안돼? 그까짓 거 도전해 봐. 해보고 안되면 다른 거 하면 되지.

나는 그간 용기나 모험심 따위는 세월에 따라 자연히 빛이 바래가는 종류의 것이지, 키워지는 힘의 종류는 아니라고  분류해 왔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는 내 세계에서 바로 그런 걸 젊음이라고 정의하기로 했다. 누군가에게 세상의 시간이나 나의 잣대를 들이밀지 않는 것. 그 어떤 상식과 가치도 절대적인 건 없다는 믿음에서 나오는 유연함.

그렇게 그간 쌓아왔던 나의 모든 잣대와 상식인줄로만 알았던 것들은 생전 처음 보는 문화, 처음 겪는 새로운 상식들 앞에서 아무런 힘도 못쓰고 와르르 붕괴되어 무너져 버렸다. 세렝게티 초원과 이집트의 호수 같은 광활한 대자연 속을 누비면서는 그런 생각을 했다. 나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며, 우주의 작은 먼지 한 톨만 한 존재도 안된다는 걸. 같은 의미로 다른 이들도 그러하니 누군가에게 내 잣대를 들이밀지도 말고 동시에 누군가 만들어놓은 상자에도 갇히지 말자고 다짐했다.


나를 무기력에 빠지게 한 여행, 빠져나오게 해 준 것도 여행.

발랄했던 여행이 끝나고 난 뒤의 나는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마음과는 달리 한동안은 무기력에 빠져 있었다. 당연한 거지만 뭔가를 배웠다고 해서 인생이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밥벌이라는 모든 동물의 숙명이라는 게 없어지는 건 아니니까. 흔히들 목표를 이루고 난 이후에 무기력에 빠진다고들 한다. 내게는 원하던 대학에 합격했을 때가, 그 이후엔 임용고시에 합격했을 때가 그랬다. 그 다음 내 인생에 다신 그런 건 없을 줄 알았는데 세계여행도 내게는 하나의 목표 같은 것이었던가. 나는 여행이 끝난 후 다시 막막해하고 있었다. 그런 내게 언니는 이번 기회에 네가 진짜 뭘 하고 싶었는지 생각해 보라고, 원하는 걸 미루지 말라고 했다.

그 통화 이후 나는 다시 신발끈을 고쳐맸고(말 그대로) 일단 조깅을 시작했다. 매일 나가서 뛰다 보니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장편 소설을 완성해 공모전에도 내봤고, 내가 할 수 있는 1인 사업을 찾아 웹사이트 제작부터 시작해 보았다. 대학원 문예창작 전공에도 지원했고 면접도 봤다. 대학원은 떨어졌지만 소설 쓰기 수업을 신청해 듣기 시작했고, 혼자 고군분투하며 이끌어본 1인 사업은 나름 순항했다. 직장생활을 하던 수입의 배를 벌어들인 달도, 용돈밖에 안 되는 돈이 들어온 달도 있다. 내 앞에는 내 선택으로 불투명해진 미래만이 놓여 있었다. 그렇지만, 어차피 미래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지금 내가 실행하고 있는 것만이 확실하다는 건 이제 알 것 같다.


여행 그 후,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져 버렸다.

종종 내게 그래서 안정된 직장을 그만둔 데에 후회가 없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통장에 따박따박 꽂히던 돈은 가끔 그립지만 그것을 제외한 전부가 그때보다 행복... 아니다. 행복하다는 말로 퉁치는 건 또 이런 삶 나름의불안정을 담지 못하니까 너무 단순한 표현이고, 그냥 다른 삶이 되었다는 게 맞는 것 같다. 좋고 나쁨의 차원에서 다르다는 게 아니라 그냥 옆에 있는지도 몰랐던, 그러나 모든 방향으로 열려 있었던 다양한 길 중 내게 보다 맞는 길 하나를 골라 걷게 되었다는 설명이 더 맞겠다.


물론 앞으로의 수입은 보장 못하겠지만 어차피 무엇도 보장할 수 없는 게 삶이다. 지금의 나는 이전에는 생각도 못했던 정말 많은 새로운 꿈들을 꾸고 있다. 이제부터 내 세계에서 나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에 도전해 봤다면 그걸 성공이라 부르기로 했다. 여행하며 머물렀던 요가원의 기억으로 산 속 시골집을 고쳐서 글쓰며 에어비앤비 하고 살고 싶다는  꿈이 새로 생겼고, 지금은 불어를 공부하고 있다. 조만간 꼭 살아보고 싶었던 프랑스로 워킹홀리데이를 가보려 한다.


앞으로 살면서 또 어떤 시련과 기쁨, 실패와 성공이 찾아올지 모르겠다. 분명한 건 무엇이 찾아오든 나는 살아있다는 것이고, 그 모든 것들도 결국에는 다 지나가리라는 것이다. 어떤 길이 좋은 길인지는 나말고는 아무도 모를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시키는 대로, 그 누구의 기준도 아닌 내가 걷고 싶은 나의 길을 걸어보려고 한다.


삶은 긴 여행이라는 말을, 나는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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