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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세상 모든 건 빌린 거니까

뮤지컬 렌트, N#2 Rent

by 박꿀꿀

뮤지컬 렌트의 두 번째 노래는 <Rent>.

나는 이 노래를 들으면 낡은 옷을 주워 입고 줄 끊어진 일렉기타를 들고 발코니에 나가서 방방 뛰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집에 일렉기타도 발코니도 없다는 게 다행인 점)


노래가 시작되고 다큐멘터리 감독인 마크는 ‘현실을 어떻게 기록할까, 현실이 더 소설 같은데’ 하고 노래하며 전기 나간 낡은 건물로 들어간다. 마크는 룸메이트이자 가수인 로저와 함께, 추운데 태울 게 없어 공연포스터와 대본을 불에 태우며 노래한다. 이들의 친구이자 해고당한 MIT교수인 콜린스는 건물에 들어서려다가 강도를 당하고 만다. 더 이상 절망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상황에서 퇴거명령까지 받은 예술가들은 다 함께 발코니로 뛰쳐나와 집세를 내지 않겠다며 시위한다.


이렇게 설명하니 아주 구질구질하고 가난한 슬픈 현실 같지만, 노래하는 이들의 역동적인 에너지는 절대 구질구질하지도, 슬프지도 않다. 온몸에 전율을 일으킬 정도로 이들의 '집세 안 낼 거야 '시위는 힘차고 역동적이다.


마크: How do you document real life When real life's getting more like fiction each day?

(어떻게 현실을 기록하지? 현실이 더 거짓말 같은 걸)

..

We're hungry and frozen

(우리는 배고프고 추워)


로저: Some life that we've chosen

(우리가 선택한 현실이 이런 거니까)

How we gonna pay

How we gonna pay last year's rent?

(어떻게 내지 작년 집세를?)

...

We're not gonna pay last year's rent! This year's rent! Next year's rent!

Rent rent rent rent rent!

We're not gonna pay rent!

Cause everything is rent!

(우리는 작년 집세도, 올해 집세도, 내년 집세도 안 낼 거야 왜냐하면 모든 건 어차피 빌린 거니까)


건물주가 들으면 어이가 없고 혈압이 오를 시위 그 자체.

이 낡은 건물의 건물주 베니도 한숨을 쉬며 시위를 바라본다. 황당한 얘기도 당당하게 하면 그럴듯해 보인다던데, 어차피 모든 게 빌린 거라는 그럴 듯 한 궤변. 하지만 이런 뻔뻔함을 뚫고 뿜어 나오는 에너지에서는 어쩐지 자유의 향기가 난다. 등장인물들과 스토리의 전반적인 매력인 ‘모든 규율과 경계에 저항하는 자유로운 캐릭터들’을 잘 보여주는, 바로 그게 이 장면의 매력이다.


다음 장면에서는 반감을 가지고 시위하는 마크와 로저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데, 그들의 반감이 더 큰 이유는 이 건물의 건물주 베니가 예전엔 마크와 로저와 함께 가난하게 지내던 예술가 친구였기 때문이다. 베니는 예전엔 이들의 룸메이트였지만, 부잣집 외동딸과 결혼해 건물주가 되고 나서는 노숙자들의 공터를 사들여 노숙자들을 몰아내는 등 부동산투자와 돈에만 관심가지는 인물이다. 이후 이어지는 노래에서 로저는 그에게 '네가 꿈꾸던 이상은 어디에 있느냐'라고 묻는다.


이런 모든 내용을 모르고 봐도 이 장면은 좋다. 불타는 종이뭉치들을 통째로 창문 밖으로 내던지고 예술가들이 발코니에 나와 카메라를 가지고 싸울까, 기타로 싸울까 노래하는 이 시위 장면의 에너지 자체가 매력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엄마 생각이 난다. 엄마에게도 추천하고 보여주려고 영화를 틀었는데, 엄마는 이 노래가 나오는 장면을 유심히 보다가 이내 흥미를 잃고 떠나버렸다. 그리고는 나중에 언니한테 그랬다고 한다.


얘가 서울에서 혼자 월세내고 살기 많이 어렵나 걱정된다며.. 월세내기 싫다고 시위하는 음울한 영화를 좋다고 본다며…


그 얘길 듣고 얼마나 많이 웃었는지. 지금이라도 오해를 풀어보고 싶다.

나 월세 내기 힘들어서 렌트 좋아한 거 아니야 엄마…

엄마에게 해명은 실패했지만 독자님들에게는 꼭 렌트의 매력을 영업하고 싶다.


1. 오리지널 사운드트랙 듣기. 오리지널 음악이 가장 좋다.

https://youtu.be/jc0NXwQLJjE?si=a1dAwzsWoG9LS6Jo


2. 뉴욕 브로드웨이 뮤지컬 rent의 장면. 무대만이 가진 에너지가 또 매력적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pV9zLqyio6U


다음 노래는 'Light my candle'

내가 정말 애정하는 캐릭터인 미미가 촛불 하나 들고 불을 빌려달라며 찾아와 고양이처럼 기어 다니며 로저를 첫눈에 매혹시키는 장면. 미미에게 다 같이 사랑에 빠져버리는 그런 장면이다.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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