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타강사 도전기
다른 선생님들 교재를 아무리 봐도 모르겠다가 선생님 교재를 보니까 이제 감이 잡혔어요. 도움 많이 받았습니다.
수강생님으로부터 받은 이 이메일을 몇 번이나 읽었는지 모른다. 내가 만든 내 교재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감사해서 며칠간 이메일을 들락날락했다. 골방에서 머리를 쥐어뜯어가며 만든 내 첫 강의와 전자책은 그간 교사시절 월급의 두세 배를 벌만큼 꽤나 순항했지만, 이런 메일은 처음이었다. 첫 과외생들이 고득점으로 합격하긴 했어도 그건 다 열심히 한 수강생님들의 몫이지 내 교재가 좋다는 생각을 못해봤던거였다.
게다가 올해의 수강생님들 중 한 명은 매일 내게 그런 말을 해줬다. 선생님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너무 도움 되고 든든하다고. 그리고 수강생님들 몇 분이 최종합격했다는 기쁜 소식까지 들려줬다. 이렇게 두 해 째 합격생들을 내고 보니, 새삼 이게 정말 내가 잘하는 일이 아닐까 싶은 거였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의 교사라는 꿈을 이루어주는 일이라니 이보다 가치 있는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싶은데 심지어 돈까지 벌 수 있다니!
하지만 지원서를 제출하기 직전엔 다시 두려움이 밀려왔다.
-만약 지원서 냈는데 학원에서 연락이 안 오면 어쩌지?
그런 걱정을 털어놓는 내게 언니는 아주 심플한 대답을 들려줬다.
-연락 안 오면 또 다른 거 해. 너 한다던 전문직 공부 해.
역시 상황은 언제나 내 생각만큼 심각하지 않다. 언니 말이 맞았고 나는 지원서를 세 군데의 학원에 제출했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이틀 후 바로 연락을 받은 데다가, 감사하게도 지원한 학원들 모두가 계약금까지 제시해 주며 계약을 하자고 했다.
물론 이대로 해피엔딩은 아니다. 따지자면 이제 간신히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터넷 강의 강사라는 일이 꽃길이 아닌 건 당연히 알고 있었다. 내가 잘 못하면 바로 도태되는, 연봉의 상한선도 없지만 기본급도 없는, 100% 능력제의 아주 무시무시하고 살아남기 힘든 시장. 성공한 일타강사들이 눈에 띄어서 그렇지 도태되는 강사가 훨씬 많은 그런 시장. 오래 한다고 잘하는 일도 아니고 앉아있다고 돈 주는 일도 아닌, 철저하게 내 능력에 달린 그런 시장.
하지만 이번에도 느꼈듯 두려워도 일단 뛰어들어봐야 아는 것. 마음껏 뛰어들어보고 싶어서 안정적인 직장까지 버린 것 아닌가. 뛰어들고 깨지고 방황하고 난리를 친 2년의 방랑이 지나 보니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었다.
<인생은 그렇게 쉽게 망하지 않는다>
그랬다. 하고 싶은걸 다 해봐도, 수십 번 뛰어들고 깨져봐도 직업을 잃거나 돈을 잃거나 좀 쪽팔리거나 그럴 뿐이었다. 아주 최악의 상황이 오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새로운 도전을 막는 가장 큰 두려움일 텐데, 그 최악의 상황조차도 잘 생각해 보니 내게는 '지붕이 없는 집에서 자야 한다거나, (이건 생각해 보니 나름 낭만 있다) 한 달에 한번 엽떡 먹을 돈이 없는 것(이건 진짜 서러울 것 같다)' 정도였다. 그러니 새로운 도전에 뛰어들어야 하는 순간에는 역시 뛰어들어봐야 아는 것이었다.
그런 마음을 안고 노량진의 학원에서 인강강사로 강의를 시작하리라는 계약서에 도장을 쾅쾅 찍었다. 지금은 본격적으로 강의를 시작하기 전 또 골방에서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교재를 쓰고 있다. 치앙마이나 우붓에 가서 교재를 쓰고 싶었는데 막상 강의를 앞두고 보니 치앙마이고 뭐고 비행기 타러 갈 에너지도 아까울 지경이다. 내 교재와 내 강의를 할 생각을 하니 약간 두렵고, 또 설렌다.
진심으로 잘 해내고 싶은 일이 생긴 나는 요즘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강의와 교재 생각을 한다. 어떤 동기부여되는 이야기를 해줄까, 어젯밤 정리하다 잔 그 개념은 어떻게 설명하면 가장 직관적이고 재미있게 와닿을까, 어떻게 풀어야 이 문제가 제일 쉽게 풀릴까.
모든 일이 그렇듯 당연히 즐겁지만은 않다. 교재를 쓰는 일은 미치도록 부담된다. 공부와 마찬가지로 쓸 때보다도 안 쓰는 시간에 안 써서 스트레스받는 게 더 크다. 그럼에도 매일 열정을 쏟을 수 있어 행복하다.
3년 후의 나는 지금의 목표대로 일타강사가 될 수 있을까?
5년 후의 나는 여전히 작가라는 꿈을 안고 내 책을 누군가의 손에 쥐어줄 수 있을까?
뜬구름 잡는 일만 전문으로 하며 살아온 이상주의자인 나도 만 서른 살 생일을 3달 앞두고 보니 이제야 꿈꾼 대로, 계획대로 되는 일보다는 실패하는 일들이 훨씬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꿈꿀 수 있고 실패할 수 있는 기회까지도 인생이 주는 기회라는 것도, 가끔은 실패하고 들어선 길이 더 좋은 길일 수도 있다는 것까지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인생에 감사할 뿐이다. (그리고 십분 후에는 또 머리를 쥐어뜯으며 교재를 쓰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