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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cal editor Jul 29. 2024

추억은 방울방울. 말할수록 짙어지는 행복을 쓰세요.

Editor's Essay 글을 쓰는 일 / Editor. Cholog

우리가 만든 겨울 눈사람


“얼음 어는 강물이 춥지도 않니. 동동동 떠다니는 물오리들아.”

나이가 들어도 강가에 오리만 보이면 다 같이 입 모아 노래를 부른다. 아침마다 울리던 윤선생 영어교실만큼이나 우리를 깨우던 알람인 탓이다. 겨울 물오리를 부를 때면 저 멀리 잠겨진 기억 하나가 또르르 굴러온다. 크게 튼 동요와 밥을 짓는 소리, 베갯속에 머리를 묻던 나와 출근 준비에 분주한 아빠의 면도 소리. 굴러온 기억 하나에 달린 방울방울 추억들.     


“이번에 뭐가 제일 좋았어?” 

여행 끝 무렵에는 항상 같은 질문이 뒤따른다.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는지, 언제가 제일 좋았는지. 문장 하나로 시간을 거슬러 오른다. 장면을 곱씹는다. 씹고 또 씹으며 뽑아낸 기억을 우리는 앞다투어 말한다. 보색의 깔맞춤 옷을 입고 고라니처럼 뛰어다니던 눈길. 조물조물 하트가 아닌 조랭이떡을 만들던 길가. 사진을 찍어달라며 모자를 거꾸로 쓰고 입을 뿌우- 하고 내밀던 감자밭. 하기 싫은 포즈에 인상 쓰면서도 카메라를 대면 세상 귀찮은 표정으로 사진을 찍던 바다. 속도 내는 것이 두려워 영차영차 자전거를 끌고 오던 내리막길. 이어폰을 꽂은 채 푸른 새벽을 맞이하던 야간버스. 각기 다른 순간이 눈앞에 흩날린다.     


함께했던 길가에서


어렸을 때부터 혼자가 좋았던 나는 운동도 취미도 모두 개인의 영역이 지켜지는 곳에서만 움직였다. 뭐든 혼자이길 자처했던 내가 가족과 공동체에 대한 애틋이 생겨난 것은 쓰기를 시작하면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관찰이 필요한 일이었다. 자주 보고 살펴야 쓸 수 있었다. 나는 그들을 살필 때마다 쓰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시선을 옮기면 숨겨진 것들이 고개를 들었고, 희미하게 덮여있던 곳곳의 틈이 맑아졌다. 손을 잡았을 때의 온기, 웃음 짓는 눈가의 주름, 한껏 바른 로션 냄새, 허리를 잡으며 눈물 나게 웃던 표정들. 하나씩 닦아내 마음껏 되새길 수 있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옮기기 위해서는 몇 번의 되감기와 몇 번의 재생이 필요했다. 장면을 되새김질할 때마다 찰나는 점차 확장되었고, 지켜낸 기억의 영역은 점차 넓어졌다.      


여행을 다녀온 뒤 엄마가 써준 엽서


시간을 잃어버린 사람이 있었다. 나는 그것이 너무나 야속해 기억이 힘을 가질 동안 시간이 더디게 흐르길 바랐다. 입력된 장면이 사라질까 무서워 쓰고 또 썼다. 그리고 우리는 모여 기억을 나눴다. 산수에 밝아 퀴즈처럼 던지던 구구단을 나보다 잘 외우던 날, 조막만 한 아이들 두고 나가기 멋쩍어 용돈을 쥐여주던 날, 노래자랑에 나가 선풍기를 타오던 날, 피아노 학원을 땡땡이치던 나를 붙잡아 혼을 내던 날, 노트 하나 빼곡히 수학 문제를 내주던 날, 둘러앉아 기억을 나누던 그때조차 방울방울 추억이 된 날을 열심히 곱씹고 나눴다.   


삶이 팍팍하고 퍽퍽할 때면 나를 기억과 추억 사이에 데려다 놓는다. 박음질하듯 찰나를 엮고 엮어 수집한 그 사이로. 아름다운 순간이 나를 구하도록. 과거에 머물러 있는 아름다움이 여전히 존재할 수 있도록. 말하면 말할수록,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재생하면 재생할수록 짙어지는 순간에서 연약한 시간과 나를 지키기 위해.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라는 누군가의 말처럼. 되감기와 재생 그 사이 저는 쓰는 만큼 행복해지지 않을까요. 살피고 뜯어보며 곱씹는 시간 속에서 다시 겪어낸 장면이 만든 짙어짐으로 또 살게 되지 않을까요.


Local Editor Cholog 초록 씀.


+Editor's Music+

*김민기-그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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