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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엘라 Oct 30. 2024

어머니 오늘도 좋은 아침이에요.

내가 매일 아침 시어머님과 통화하는 이유에 대하여.

매일 아침 막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돌아오는 길이면 양가 어머니께 전화를 드린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또는 연락처 목록에서 먼저 눈에 들어오는 분의 번호를 누른다. 결혼 생활 11년, 이젠 너무 당연하고 익숙한 일이 되었다.


엄마와 딸은 하루에도 몇 차례씩 전화 통화를 한다. 저녁 준비를 하다가 양념이 궁금해도 전화를 걸고, 걷다가 갑자기 생각난 일 때문에도 전화를 건다. 사소한 5초짜리 통화도 어렵지 않고 자연스럽다. 그리고 한 번씩 대화에 시동이 제대로 걸리면 한참을 깔깔거리며 대화를 이어간다. “그래요 엄마, 들어가세요.”라고 했다가도, “아 맞다 엄마!” 하면서 금세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거나, “그래 딸~ 끊을게.” 했다가도 “아 맞다, 저기 있잖아 그거 뭐더라?” 하면서 전화기 내려놓을 기회를 서로에게서 박탈하기도 한다. 엄마와 딸의 대화는 친구와의 그것과 다름없이 길고 재미있고, 때론 지루하며 반복적인 이야기가 오간다.


그렇다고 해서 시어머니와의 통화가 어려운가 하면, 꼭 그렇지도 않다. 당연히 친정 엄마와의 통화처럼 긴장의 끈을 완전히 풀어놓진 못하지만 어머님과 나 사이의 대화에는 나름의 즐거움이 있다. 우린 주로 일상을 나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웃음을 드릴 수 있는 아이들의 에피소드 한두 가지를 이야기해 드리고 날씨 이야기와 세상 이야기도 나누곤 한다. 그리고 가끔은 어머님이 보시고 들으시고 경험한 것 중 인상적이었던 일들을 나누신다.  마지막엔 꼭 축복과 감사의 인사를 주고받은 뒤 전화기를 내려놓는다.


사실, 이전엔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는 시어머님께 전화드리는 걸 잊기도 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하루라는 게 변수의 연속이다 보니 때론 아침 통화를 쏙 빼놓고 하루가 시작되기도 했다. 그런 날은 그런 날대로 서로가 이해하고 밀린 대화는 그다음 날 덧붙여하기도 했다. 그런데 올가을을 기점으로 아침 통화는  반드시 사수하는 중이다. 하루에 두세 차례 전화를 드리는 일도 잦아졌다. 통화가 잦아진 건, 어머님과의 대화가 몇 년 전에 비해 훨씬 더 재미있어졌거나 통화 출첵 이벤트 같은 게 있기 때문은 아니다.  


최근의 통화는 어머님과의 말동무가 되어 드리면서 안부도 여쭙고, 약은 잘 챙겨드셨는지 그리고 마음은 괜찮으신지를 살피는 일이 보태졌다. 지난해부터 약간의 공황장애 유사 증상과 알츠하이머 전조증상이 나타나 검사를 받으시고, 지난가을부터는 관련 약을 복용하기 시작하셨다.

약을 드시고 계셨고 라이프 스타일에 큰 변화도 없었지만, 지난 1년간 어머님의 병세는 급격히 나빠지셨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치매라는 녀석이 어머님의 삶에 파고 들어와 버렸다. 우리가 느끼기에는 정말로 괜찮으셨다가 추석 이전을 기점으로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신 것이다. 이건 순전히 멀리 살며 전화로 안부를 묻고 일 년에 몇 번 만나 뵙는 자식의 입장에서 느끼는 바다.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어머님은 분명 감지하고 계셨을 것이다. 점점 기억이 흐려지고, 헛것이 보이는 듯한 착각이 느껴졌다가 시공이 흩어지는 경험을… 어머님은 고스란히 홀로 온몸을 통해 받아내고 계셨던 것이다. 우리가 어머님을 만나 뵌 추석 때는 이미 녀석이 어머님께 허락된 하루의 절반 이상을 지배하고 있었다.    


어머님의 치매 발현은 가족 모두에게 당황스러운 ‘사건’이었다. 받아들일 시간이 별로 허락되지 않은 채 태풍을 몰고 오는 먹구름처럼 긴급하게 우리의 앞을 가로막았다. 나와 피를 나눈 엄마는 아니지만, 어머님은 이미 11년 전부터 나에겐 또 다른 나의 엄마였다. 마음을 나누고 정을 주고받고 기쁨과 슬픔을 오롯이 나눌 수 있는 그런 엄마였다. 어머님의 변화는 나를 참 아프게도 했지만, 며느리라는 서류상의 신분 때문인지 앞장서서 문제 해결과 대책을 소리 내기가 쉽지 않았다. 곁에 살며 일주일에도 여러 번 들락날락하며 어머님을 살필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기에 가족들의 이야기를 듣고 아버님의 향후 대책 앞에서 그저 동의의 끄덕임으로 반응하는 게 전부였다.


이렇게 어머님의 중증 치매는 2024년 9월부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전처럼 더 많은 마음을 나누는 일은 어려워졌지만, 여전히 어머님과 대화를 이어가고 매일 아침 목소리로 서로를 확인하는 일은 이어나갈 수 있음에 감사하는 중이다. 약을 챙겨 드셨는지 확인하는 일과 식사를 하시는 게 좋겠다는 연락을 드리는 일, 그리고 문득 별일이 없으신지 궁금해서 전화드리는 일을 지속하는 중이다. 종종 어머님의 걱정거리를 귀로 들어 드리고 같은 편을 들어드리는 일도 지금의 내게는 큰 기쁨이다.

어머님을 감싼 치매라는 녀석과의 동행을 어떻게 하면 더 가볍게, 그리고 무사하게 엮어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어머니와의 날들을 기록해 나갈 예정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날이 어떤 빛깔일지, 그리고 얼마나 더 많은 날들이 허락될지 그 어떤 것도 확실한 게 없지만, 지금 이 순간 어머니와 며느리로 연결되어 관심을 나눌 수 있음을 감사하려 한다.


기록의 힘을 믿고, 기록의 위로함을 믿으며 오늘도 절망보다는 희망에 무게를 실어본다.

사랑하는, 그리고 조금은 귀여워 지신 어머님을 기억하며.


    

매거진의 이전글 두 번째 책, 보통의 엄마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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