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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니엘라 Nov 28. 2024

2화) 어머님 전상서

어머님께 전달하지 못한 편지

어머님의 기억력을 흐릿하게 만든 치매, 그 시작점은 어디쯤이었을까?

한 해 전인 2023년 봄이었던가, 아니면 2022년 가을쯤이었던가.

어머님은 정서적인 쳐짐과 함께 공황장애를 호소하셨다. 어머님의 불편함을 가장 먼저 접한 건 큰아들인 우리 남편이었다. 매일 출퇴근길 하루에 두 번씩 엄마에게 전화를 드리는 큰아들은 어쩌면 당신의 남편 보다 더 많은 대화를 나누는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아들이었을 것이다. 그랬기에 가장 먼저 이상 감지를 하고 무거운 이야기를 접한 것도 역시 남편이었다.



어머님은 종종 우울감을 느끼시고, 때론 작은 걱정이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불어나 어머님을 집어삼킬 것만 같은 커다란 공포가 되기도 한다고 하셨다.


2년 전 가을쯤의 일이다.

당시 시부모님은 우리 집에 오셔서 나흘쯤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되어 있었고 이틀째 되던 날 오후, 어머님은 첫째 아이가 학원에서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밖에 나가 아이를 기다리고 계셨다. 그런데 아이가 도착 예정시간보다 약 10분쯤 늦게 도착하였고, 어머님은 아이가 도착하지 않는 10분간 크데 불안에 떨며 걱정을 하셨다.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아이가 길을 잃은 건 아닌지... 온갖 상상을 하시며 커다란 공포감에 뒤덮여 어쩔 줄을 몰라하셨다. 그땐 어머님이 왜 그렇게까지 걱정을 하시는 건지 이해할 수도 공감해 드릴 수도 없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때 즈음이 치매라는 길고 지루한 여정의 시작점이 아니었나 싶다.

우울감과 불안감 그리고 그로 인한 소화 기능 및 배변 기능의 약화.



어머님은 큰아들의 권유로 동네 병원을 찾으셨다. 신경쇠약 및 우울감에 대처하기 위한 약간의 약을 처방받으셨다. 그러나 그 약마저도 혹시 몸에 나쁜 영향을 끼칠까 아껴 아껴 드셨더랬다. 의사 선생님이 아무리 괜찮다고 이야기해도 어머님은 약을 믿지 못하셨다. 그렇게 어머님의 병세는 조금씩 깊어져 갔다.



신경 쇠약을 시작으로 기억력 감퇴가 찾아왔다. 자꾸만 깜빡거리시고 기억이 잘 안 나신다고 하셨다. 사소한 것들이었다. "그게 뭐였더라." 정도의 우리가 흔히 말하는 건망증 증세를 나타내시는 횟수가 늘어났다. 갑자기 아파트 공동현관 비번이 생각나지 않는다 하실 때도 젊은 사람들도 한 번씩 분주하다 보면 그럴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웃으며 넘겼다. 어머님과는 농담처럼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맞아요 어머님! 저도 어제 고구마 찐다고 올려놨다가 깜빡하고 냄비 다 태웠잖아요. 그나마 인덕션 타이머 덕분에 그 정도로 끝났지 가스 불이었으면 냄비뿐만 아니라 온 집안을 홀라당 태웠을 거라니까요. 제가 이렇다고요 어머니~ 호호호."



그러나 어머님은 기억의 흐릿해짐이 잦고, 깊어진다는 것을 감지하시고 결국 큰 병원을 찾으셨다.

알츠하이머라는 질병과 관련된 검사를 받으셨다. 그리고 약간의 증상은 있으나 확진은 아니며 경계에 머무르고 있는 정도라는 진단을 받으셨다. 가족들은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지만, 알츠하이머의 경계에 있다는 것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이해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로부터 1년 후 어머님의 알츠하이머인지 치매인지 하는 병은 확연히 깊어졌으니 말이다.



어머님이 병원에 다녀오시고 나서

어머님께 썼지만 전달하지 못한 편지가 한 통 있다. 지역 새마을 문고에서 주최하는 글짓기 대회에 편지글로 응모하고 수상까지 한 글이지만, 정작 어머님께는 전달하지 못했던 글이다.

어머님 전상서를 아래에 붙임 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어머님 전상서.

어머니, 큰 며늘입니다. 오래간만에 감사를 담아 몇 자 적어 올려드립니다.

더운 여름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신지요?

그래도 며칠 새 아침저녁으로는 조금씩 선선한 바람이 느껴지기 시작하니 참 다행입니다.

어머님, 아버님께서 늘 궁금해하시는 세 명의 손주 이삭, 요한, 이든이는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삭이와 요한이는 이 더운 여름에도 틈만 나면 운동장에 나가 축구를 하며 땀을 흘리고 들어온답니다. 덕분에 아이들은 밥도 맛있게 먹고 잠도 잘 자며 건강한 여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귀여운 막내는 오빠들과 눈만 마주쳐도 생글거리며 소통이라는 걸 시작했답니다.

다가오는 추석 연휴 때는 걸음마를 시작할지도 모르겠네요. 두 분을 다시 뵐 날이 오기를 온 식구가 기대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실은 최근에 어머니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었어요. 어머님께서 요즘 몸이 약해지시고 마음도 약해지셔서 어려움을 호소하시곤 했지요. 그럼에도 저는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고 생각을 해 왔던 것 같아요. 그저 병원에 다녀오셨는지 여쭤보고 힘내시라는 말 밖에는 달리해 드린 것이 없었지요.

아마 저 또한 약해지시는 어머님을 뵈며 마음을 졸이고 걱정만 키워갔던 것 같아요. 어머님의 약해짐 앞에서 더 흔들리고 더 작아졌던 건 제가 아닌가 싶어요. 늘 건강하고 밝은 모습만 보여주실 거라 생각한 어머님께서 어느 날 갑자기 정신과 육체의 어려움을 호소하셨으니 저로서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네요. 제가 가장 의지하고 있던 분이 어머님이기도 하셨으니까요. 이제 더 이상 마음 편히 기댈 곳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걱정을 뛰어넘어 공포에까지 다다랐으니까요.

그런데 시간을 두며 생각해 보니 사람의 약해짐은 제가 원한다고 해서 조절을 할 수 있거나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더라고요. 어머님의 약해지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어떻게 하면 조금 더 편안해지실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해 보는 편이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보다 더 자주 연락드려서 삶을 나누고, 아이들을 통해 기쁨을 얻으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일이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이라고 여겨집니다. 또한 언제든지 어머님의 마음에 귀 기울일 수 있도록 마음 밭을 건강하고 널찍하게 가꾸는 일 또한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느껴집니다.

앞으로 다가올 날들, 제가 조금 더 애쓰며 어머님을 잘 섬겨드리기로 약속드릴게요. 부족한 며느리지만 믿고 지켜봐 주세요.

결혼한 지 11년이 된 지금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면, 철없고 서툰 저의 모습에 이해와 사랑을 얹어 주셨던 어머님의 모습이 가장 많이 떠오릅니다.

명절이면 가족들이 먹을 만큼의 음식을 준비하는데 저희가 오기 전 항상 한 두 가지는 먼저 준비하셔서 ‘짜잔!’ 하며 웃으며 내밀어 보이시는 어머님의 모습이 제게는 너무도 낯설고 인상적이었습니다. 저와 동서가 음식을 미리 준비해서 가는 것이 오히려 당연한 것일 텐데, 아이들 키우느라 애쓰는데 어찌 음식까지 해 오냐며 며느리들의 손을 덜어주려 나서 주시는 모습에 참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머님은 항상 먼저 행동으로 보여주시는 분이십니다. 이런저런 말씀으로 저희의 행동을 바꾸려 애쓰지 않으시고 그저 묵묵히 먼저 솔선수범하시며 저희가 깨닫고 움직이게 하시는 지혜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명절 음식 장만 역시 이제는 아이들이 많이 자랐고 동서와 저도 스스로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겨 이번 추석 연휴 때부터는 어머님께서는 조금 더 편안한 명절을 보내시도록 돕기로 했습니다. 음식은 우리가 명절에 늘 먹는 음식들을 위주로 갈비와 소고기뭇국, 녹두전, 새우튀김, 대구 전, 샐러드 정도로 준비해 보려고 합니다. 이번 명절부터는 어머님께서 미리 음식을 장만하시느라 고생하지 마시고 저희들이 준비하는 모습을 지켜봐 주기만 해 주세요. 맛이 부족하고 어설프겠지만 조금은 편안한 마음으로 바라봐 주시고 기대해 주세요.

그리고 어머님, 언제나 자식들과 손주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일주일에 네댓 번씩 전화를 드리는데도 항상 밝은 목소리로 전화를 받아주시고 어떤 이야기에도 잘 반응해 주시는 어머님께 감사드립니다. 신혼 초, 두 아들을 모두 장가보내시고 적적하실 어머님이 자꾸만 생각나 한두 번씩 전화를 드리던 것이 어머님께서 너무나 잘 반응해 주시고 경청해 주시니 더 자주 연락을 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살아가는 이야기도 맛깔나게 들려주시니 친정 엄마께 전화드리는 마음으로 기대감을 담아 거의 매일같이 수화기를 들게 됩니다.

또한 저희 아이들의 이야기에도 관심을 기울여 주시고 응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들의 소소한 학교 이야기부터 친구들 이야기, 그리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화 캐릭터까지 종이에 받아 적으시며 기억해 주시는 어머님께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첫째가 벌써 초등학교 4학년이 되었는데도 할머니와 통화하는 것을 좋아하는 걸 보면 어머님의 사랑과 노력이 아이들의 마음에도 충분히 전달이 되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이 할머니 할아버지의 방문을 손꼽아 기다리고 두 분을 잘 따르게 해 주시는 것 또한 감사드립니다. 조부모님과 손주의 관계도 결국은 존중과 사랑에 바탕을 두는 것이 맞다는 생각을 어머님, 아버님 두 분을 보며 하게 됩니다. 사랑으로 품어 주시고 아이들을 아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세 아이를 낳는 동안 출산의 때에 곁을 지켜 주신 것 또한 감사드립니다.

첫째 때는 출산 후 아기의 퇴원 날짜를 기다리시며 저희 집을 한 번 더 소독해 주시고 아기의 가제수건을 한 장 한 장 다림질해 주시며 기다려주신 어머님을 기억합니다. 작은 것 하나도 다림질해 주시는 어머님을 보며, 그런 정성으로 아이를 키우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저에게 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쉽지 않은 인생 첫 육아였지만 ‘정성’이라는 두 글자를 기억하며 아이를 키우려고 애썼던 제 모습이 떠오릅니다.

또한 둘째와 셋째가 태어날 때는 하루 전에 몇 시간 거리를 달려와 주셔서 먼저 태어난 아이들을 저와 남편을 대신해 돌봐 주셨던 것 정말로 감사합니다.

특히나 셋째는 둘째와 터울이 커서 출산 당시 두 분께 아이들을 부탁하고 출산을 하러 가야 하는 제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습니다. 수년 만에 두 분께 또다시 고된 역할을 안겨드리는 것 같아 감사와 동시에 죄송한 마음도 컸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편안한 마음으로 출산하라고 “아이들과 관련해서는 아무 걱정 말아라.” 하시던 어머님의 모습에 조금은 홀가분하게 출산 길을 나설 수 있었습니다.


삶의 어렵고 아쉬웠던 고비고비마다 어머님께서 힘이 되어 주셨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저 말없이 손을 잡아 주시고, 안아주시던 어머님 덕분에 힘이 들 때면 든든한 지원군이 있음을 잊지 않았습니다. 어머님께서는 제게는 또 하나의 살아가는 힘이 되어 주셨습니다.

제 평생에 닮고 싶은 시어머님을 만나게 된 것이 제게는 큰 복입니다. 어머님이 저에게 주신 사랑과 존중의 태도를 저도 미래의 며느리들에게 그대로 전해주고 싶습니다. 보고 배울 수 있음에 감사하고 삶으로 보여주시는 선한 영향력에 감사드립니다.

받은 사랑이 너무 많아, 지금껏 받아온 사랑을 이제는 제가 갚아드리겠다는 약속은 감히 할 용기가 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어머님이 저에게 보여주신 사랑을 잘 기억하며 진심으로 어머님을 섬기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어머님께서 함께해 주신 날들만큼이나 찬란하게 빛날 앞으로의 날들이 기대됩니다.

사랑합니다 어머님.

다시 뵐 날까지 몸 건강히 계세요.

2023년 8월 20일 큰 며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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