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잊지 말아야 할 것들
쌍둥이 워킹맘, 좌충우돌 성장의 순간
왜 잊고 있었을까. 얼마 전 일이다. 아들이 영어 숙제를 하고 있었다. 「To 부정사」 문제지 2쪽을 푸는 학원 숙제였다. 내 눈에 보인 것은 첫 문제부터 오답. ‘to’ 다음에는 동사의 원형을 써야 하는데 ‘be’가 아니라 ‘is’를 적었다. 문법의 기초적인 개념도 생각하지 않고 답을 적었다는 사실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이게 정답 맞아? to 다음에는 동사 형태를 어떻게 써야 하지?”
내 목소리는 평소 말하는 것보다 커져 있었고, 답답함이 눈빛으로 흘러나왔다. 그 순간 아이의 말 한마디가 내 마음을 흔들었다.
“엄마, 왜 나를 지우개 보듯 봐”
“뭐? 지우개?”
손가락으로 가리킨 지우개 하나. 문제지 위에 아무렇게나 놓여있는 꼬질꼬질한 하늘색 지우개가 보였다. 손으로 잡는 부분의 종이 포장은 벗겨지고, 짓궂은 아이가 지우는 힘을 견디지 못하고 반쯤 부러진 지우개. 여기저기 흑연 가루의 흔적과 지우개 가루가 덕지덕지 묻어있었다.
“내가 널 꼬질꼬질한 이 지우개처럼 봤다고?”
“응. 그랬어. 이 지우개처럼 날 보잖아.”
지우개처럼 아이를 바라보던 내 눈빛은 무엇이었을까. 자꾸자꾸 곱씹게 되는 말 한마디. 엄마의 얼굴을 관찰하는 예리함에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했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 강가에 돌멩이 던지듯 툭 내뱉은 초등학생의 말 한마디는 그런 나를 불러 세웠다. ‘지금 이게 맞나요?’라는 메시지의 깜빡이 경고등 같았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사랑해”,“괜찮아”라는 서로에 대한 응원과 격려보다는 “숙제했니?”“빨리빨리 해야지”“이것밖에 못 했어?”라는 실망의 재촉과 확인이 많아졌다. 주어진 숙제는 그날그날 끝내야 한다는 엄마의 단호한 선언에 자주 말다툼하게 되고, 피곤한 눈을 비비며 늦은 시간까지 숙제해야 했다.
사실 내 맘도 편하지 않았다. 함께 책을 읽고 하루 동안 있었던 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던 일상의 소소한 추억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어서다. 잠들기 전 엄마가 읽어주는 책을 참 좋아했던 아이였다. 퇴근 후 지쳐 오디오 북을 틀어주려고 하면 단호하게 외쳤다.
“오디오 북 싫은데. 그냥 엄마가 읽어주면 안 돼?”
전문 성우가 들려주는 극적인 목소리보다 엄마가 읽어주는 담담한 목소리가 더 좋다고 했다.
“오늘은 여기 있는 책 다 읽어주기다. 알았지? 엄마”
침대 옆 수북이 쌓여있던 책을 바라보며 행복했던 꼬마. 오늘은 절대 잠들지 않겠다며 엄마가 밤새 책을 읽어주기를 바랐다. 그럴 때마다 나는 피곤함을 누르고 아이의 코 고는 소리가 들릴 때까지 책을 읽어주곤 했다. 자주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엄마는 네게 뭐야?”
“엄마?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내 고향!”
글자를 제대로 쓰기 시작할 무렵 시를 써서 내게 보여 주었다. 엄마 뱃속은 자신이 생겨나고 자란 '고향'이지만, 다시 뱃속으로 돌아갈 수 없다며, 자신의 표현에 굉장히 뿌듯해했다. 나 역시 아주 마음에 들어 여러 번 확인하듯 물었고, 변함없이 이렇게 대답해주었다. 나를 ‘고향’이라고 해주니 가만히 있어도 아이 옆을 함께 해주는 좋은 어른이 된 것 같고, 마음도 한없이 바다처럼 넓어졌다.
거실에 걸려있는 5살 때의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한 손에는 장난감을 들고 금방이라도 ‘까르르 깔깔깔’ 웃음소리가 터질 것 같은 환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12살이 된 아들은 그 시절 그 꼬맹이보다 행복할까. 자신이 없어진다. 정말 잊고 있었다. 일하는 엄마라 많은 시간 함께 해주지 못했고, 부족함이 많았지만 아이는 항상 무한한 지지와 사랑을 보내주었다. 나는 공부만 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엄마인데. 앞으로는 잊지 말아야겠다. 꾸지람은 하더라도 따뜻한 마음의 끈은 놓지 않는 엄마.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너른 품으로 품어주는 엄마. 우리의 마음속 고향이 늘 그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