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사월글방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월달 april moon Jan 22. 2024

사월글방 - 마음편지 6

여행 중에 삶을 바꾼 질문을 만나 본 적이 있나요?

<짐을 덜어내는 자유로운 회귀>

대학 시절 여행 동아리 활동을 했습니다. <술, 도박, 혼숙> ‘금지’라는 규칙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동기를 비롯해 선후배 모두 순박한 사람들이라 참 건전하게 지냈다고 소회합니다. 보통 1박2일 일정으로 월 1회 여행을 가는데 주로 국내 이름난 산을 다녔습니다. 아무래도 등산이라는 목적이 있으면 금주에 당위성이 생기고 어설픈 게임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명색이 여행 동아리인데 우리들 중 누구도 소위 여행에 목숨 건 사람이 없었습니다. 산을 오를 걸 알지만 청바지나 반바지, 샌들을 착용하는 친구들도 꽤 있었거든요. 물론 그들은 다음 등산에 그런 복장으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누가 왈가왈부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술, 도박, 혼숙> 금지 말고는 그 어떤 불허도, 권장도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분명하게 인지하지 못했지만 지나고 나니 그것이 일종의 존중이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우리에게는 여행 자체가 중요하지 여행의 형식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집을, 지역을, 일상을 떠나서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 즐겁고 재밌었던 것입니다. 그 시절을 떠올리다 문득 의문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자유로운 공동체가 만들어졌을까?

떠나고 돌아오는 과정을 통해 우리(선배들 역시)는 여행의 의미를 각자에게 맡기게 된 것 같았습니다. 공부가 됐든, 추억이 됐든 말이지요. 여행은 그런 것입니다. 10명이면 10명이 같은 곳을 다녀와도 전혀 같은 여행이 되지 않는다는 것. 선배들은 이미 그것을 깨달았고 나 역시 여행의 선물 같은 의미를 스스로 체득했던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보이는 짐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짐도 떠맡기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개인적으로도 짐을 덜어내는 일을 여행(동아리활동)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신입생 자격으로 처음 여행을 떠날 때는 커다란 등산 배낭과 보조 가방에 옷가지와 생필품을 잔뜩 챙겼습니다. 4학년을 앞둔 마지막 여행에는 작은 배낭 하나면 충분했습니다.

친구들 역시 대개 잠옷은 따로 챙기지 않았습니다. 양치는 해도 세수는 따로 안 하거나 머리를 감지 않고 모자로 해결하는 게 당연했습니다. 등산을 하는 날에는 체크아웃을 해야 하니 숙소에 따로 짐을 맡겨놓을 수 없었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때문에 가지고 간 짐을 오롯이 들고 메고 산을 올라야 했기 때문입니다.

여행자는 예쁘게, 멋지게 꾸밀 틈이 없습니다. 떠나는 자는 객체가 아니라 주체니까요. 남에게 나를 보이는 게 아니라 내가 무언가를 보려는 길 위에서 당연히 짐은 줄어들게 마련입니다. 그때 우리들 역시 여행길에 수많은 타인을 마주쳤지만 철저하게 여행자로 보이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떠난다는 약간의 설렘과 돌아온다는 안도의 소중함을, 우리는 알고 있었습니다.

회귀의 종착은 다시 그 자리입니다. 하지만 돌아온 뒤 서 있는 ‘나’는 이전의 내가 아닙니다. 나는 여전히 여행을 ‘낭만’하거나 ‘배움’하지 않습니다. 그냥 합니다. 그리고 돌아온 나를 응시합니다. 짐을 버리고 마음을 비우는 청년 시절의 여행을 통해 ‘나’를, ‘과정’을, ‘자유’의 뜻을 다시 세워볼 수 있었던 덕분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월글방 - 마음편지 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