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피해자들은 이겼다』 / 김승섭 / 난다
통상 ‘이겼다’는 건 싸움을 전제로 했음이다. 아직 상정되지 않은 미래의 피해자들은 어떻게 승전보를 울릴 수 있을까? 천안함 사건을 다뤘다는 정보를 접한 바 있었다. 읽어야 할까? 주저했다. 그래도 김승섭 작가니까 선택했다. 몇 년 전 만난 그의 저서 『아픔이 길이 되려면』은 그해 내가 꼽은 최고의 책이었기 때문이다. 심신의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 어떤 사회적 방임에 놓여 있는지를 보여줬던 보건학자의 거시적 안목이 돋보이는 저작이었다. 아픔이 길이 되어 미래의 피해자들이 이겼다는 환희를 기대하며 책을 펼쳤다.
사건 발생 8년이 지나서야 <천안함 생존장병 실태조사>가 시작됐다. 한겨례 신문사와 김승섭 교수가 나선 일이었다. ‘어뢰’, ‘보수진영’ 정도로 밖에 떠오르지 않는 천안함 상흔의 현재는 피폭 당시만큼이나 참혹했다. 무려 12년이 지났지만 생존장병 58명의 삶은 지옥이었다. 트럭이 지나가는 진동만으로도 숨 쉬기 힘들다는 트라우마를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것도 모자라 패잔병으로 낙인찍는 2차 피해까지 이어졌다. 책임회피에 여념이 없었던 군 당국에 화가 났고, 이해득실로 이용했던 정치인들에 치가 떨렸다.
책은 네 줄기로 뻗어간다. 첫 번째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 세월호 사건이 PTSD를 알렸다고 하지만 질환의 이해도나 치료의 접근은 여전히 무지한 상태라는 것이다. 두 번째, 극심한 차별에 노출되는 여성, 트렌스젠더, 그리고 패잔병으로 낙인찍힌 천안함 생존장병 등 군 내부의 소수자를 조명한다. 세 번째는 피해자를 특종으로만 바라보는 언론의 미개함과 피해자에게 선택적으로 공감하는 사회적 편견을 다룬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천안함 사건을 산업재해로 규정하며 후진적인 대한민국 산업재해의 좌표를 정확히 찍어 보인다.
아픔이 길이 되는 길은 여전히 멀고도 험한 것일까? 그 길에 놓인 ‘욱여넣은’이란 단어에 시선이 멈췄다. 스스로 고통을 욱여넣은 피해자와 피해자들에게 치료를 욱여넣은 프로그램이란 ‘억지로’ 피해를 개인화하고, 개인을 시스템화 하는 현실인 것이다. 이쯤에서 욱여넣기를 거부한 이들이 세상을 바꿨음을 떠올린다. 인권을 위해 분투했던 노동자들,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학생들, 미투에 나선 용자들. 과거의 피해자들이 놓은 돌다리가 하나하나 이어져 개울을, 시내를, 끝내 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가 된 게 아닐까. 이것야말로 한강의 기적 아닐까.
아니, 기적이라고 말하지 말자. 그것은 피, 땀, 눈물의 응어리다. 이제 알겠다. 미래의 피해자들인 우리들이 어떻게 이겼는지를! 물론 지금까지도 패배자가 승리자를 돕는 이 기막힌 싸움은 멈춘 적이 없다. 재해나 사고 피해의 원천봉쇄는 불가능할지 모른다. 천안함과 세월호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던 순간 양수 속에서 유영하던 나의 두 아이들 역시 미래의 피해자일 수 있다. 그리하여 지금도 미래의 피해자를 위해 싸우는 천안함, 세월호, 곳곳의 소수자 및 산업재해 피해자들. 더 이상 이들이 외롭지 않도록 부디 이 책이 길잡이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