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즐거움』 | 히로나카 헤이스케 | 방승양 옮김 | 김영사
초등학교 6학년 아이가 종종 묻는다.
“엄마, 학교는 왜 가야 해?”
“사람은 배워야 하니까.”
“그러니까 왜 배워야 하냐고.”
더 이상 궁색한 대답조차 떠오르지 않는다. 뭐라고 설명하고 싶지만 설교가 될까 싶어 입을 닫는다. 배우는 것에 대한 호기심도 의지도 없이 아이들은 학교에 다닌다. 사실 배움보다는 학교라는 체제가 싫은 것 같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가두고 옥죄는 학교는 답답하기만 하니까. 생각해보면 나도 학창 시절에는 학교가 그렇게나 싫었다.
학교나 수능, 취업을 떠나서 배움에 대한 궁극적 이해를 돕기 위해 이런 책은 어떨까. 『학문의 즐거움』이란 다소 따분한 제목은 21세기 어떤 마케팅으로도 독자 공략에 실패할 것 같지만 일단은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한 분야(수학)에서 이름을 떨치며 성공한 이의 이야기라면 귀를 기울여볼 만할지도.
저자 히로나카 헤이스케는 1970년, 수학계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을 수상했다. 최근 (2022년) 우리나라 최초로 같은 상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가 언급해 재조명된 이름이기도 하다. 『학문의 즐거움』은 저자의 자서전 격인데 단순한 일대기가 아니라 그야말로 ‘학문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실패담과 성공담을 잘 섞어 흥미롭게 들려준다.
저자는 줄곧 자신은 대단히 평범하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배움의 자세’로 천재들의 전유물과 같은 업적을 쌓을 수 있었다니 솔깃하다. 그는 부모와 스승, 친구들과 같은 주변인들에게 배울 점을 골라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반드시 호기심을 해결하려는 끈기와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회복탄력성이 자신의 가장 큰 장점이었다고 회고한다.
흡수력, 끈기, 회복탄력성은 저자의 활동 시기였던 20세기 중반에는 ‘혁신’으로 다가갔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들은 지난 십수 년 간 쏟아진 자기 계발서에 빠지지 않는 화두였고, 이제는 최소 상식으로 자리 잡았다. 문제는 실천이다. 운동을 꾸준히 해내기 어렵지만 성공한 몸짱을 보면서 대리 만족하거나 각오를 새롭게 하듯, 저자의 이야기는 분명 귀감이 된다.
진부한 이야기가 될 법도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새겨볼 만한 지점이 있었다. 바로 수학의 추상성을 불교의 참선과 연결한 지점이다. 학문 역시 수련의 일종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과업을 쌓는 것도, 그리하여 성공에 이르는 것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면 그 사람의 됨됨이가 그 결과의 주춧돌이 된다는 철학적 귀결로 말이다.
곧 100세를 앞둔 노 수학자의 무용담은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며 듣는다면 꽤 감동적인 이야기일 것이다. 그가 자신의 지인들에게서 배울 점을 찾아내 새겼듯이 21세기에 그의 책을 읽는 독자들 역시 그와 같은 자세로 이 책을 읽는다면 좋겠다. 어려운 수학이론과 저명하다는 수학자들의 이름 빼고는 아주 쉽게 읽히는, 두껍지 않은 책이니 도전해볼 만하다.
#학문의즐거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