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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치너머 Jan 27. 2021

나도 언제나 또다시 부족한 존재일 수 있음을

'권력형 성폭력과 젠더 불평등', 그 너머의 이야기

정치가 삶에 희망을 주어야 할 텐데,

요즘은 하나같이 암울한 일뿐이다.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힘겨운 성장통의 시간이라 하지만,

상처는 아물기는커녕 자꾸 곪아만 간다.

성장의 열매는 모두가 똑같이 나눠가지는데,
성장의 상처는 왜 취약한 소수에만 집중되는가.

어쩌면 그 '더 나은 세상'이라는 구호조차도
오늘의 상처를 정당화하기 위한
내일의 환상에 불과한 건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한결같은 그의 용기와 다짐에 감사하며,
그런 그의 용기와 다짐이 헛되이지 않도록,
질문을 함께 직시해 반드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그가 남긴 글귀를 내 가슴에 후벼파듯 아로새긴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가해자다움’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폭력을 저지르는 사람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현재 일어나는 성범죄의 98%가 남성들로부터 저질러지며 그 피해자의 93%는 여성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누구라도 동료 시민을 동등하게 존엄한 존재로 대하는 데 실패하는 순간, 성폭력의 가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가 아무리 이전까지 훌륭한 삶을 살아오거나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받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예외는 없습니다.

미투 이후의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앞에 놓인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토록 그럴듯한 삶을 살아가는 수많은 남성들조차 왜 번번이 눈앞의 여성을 자신과 동등하게 존엄한 존재로 대하는 것에 이토록 처참히 실패하는가. 성폭력을 저지르는 남성들은 대체 어떻게 해야 여성들이 자신과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마땅한 존재라는 점을 학습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이 질문을 직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답을 찾아야 합니다.

- 장혜영 국회의원 페이스북 게시글 중



오늘 하루 함께했던 모든 존재를
있는 그대로 동등하게 존엄한 존재로
충분히 대했는가.


오늘 하루 혹시라도 나의 둔감함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았을지
스스로를 반성적으로 되돌아보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나 또다시 둔감할 수 있는
부족한 존재임을 인지하고
더 낮은 자세로 내일의 자신을
엄격하게 다잡고 있는가.



오늘이 아무리 야속하더라도 내일까지 포기할 순 없다. 오늘의 이 글은 내 앞으로의 삶에 또 하나의 기준이 될 것이다. 함께 가주지는 못할 망정 누군가의 내일에 생채기까지 낼 수는 없다. 이는 분명 내 평생 가장 무겁고 지난한 다짐이 될 것이다.

나는 나를 배신하고 싶지 않다.

아니,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부디, 배신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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