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터 사이클로 유라시아> 와 <야생 속으로> 의 크로스 오버
안녕하세요, 그간 잘 지내셨나요, 금새 가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지금, 저는 잘 깎긴 얼음이 담긴, 보기에도 좋은 온더 락 한 잔을 곁에 두고, 조심스럽게 열린 아파트 샷시 창 너머에서 불어드는 기분 좋을 정도로 선선한 바람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물론 레코드에는 호레이스 실버의 블루노트 1500번대 언저리 오리지널 반이 위풍당당하게 얹어져 있고,<Blowing the Blues Away>의 앨범 중 'Melancholy Mood' 의 멜로디가 무언가를 써내려가기 좋은 아주 적당한 분위기 속에서 무르익어가고 있습니다... 라고 말씀 드리고 싶지만, 아쉽게도 제가 처한 현실은 늘 녹록치 않습니다.
그저 밝게 빛나는 모니터 앞에 앉아 늘 그렇듯 깜빡이는 커서를 쫒으며 이동하는 바쁜 눈과, 그저 그걸 쫒고있는 바쁜 손만이 있을 뿐입니다. 마치 델로니어스 멍크가 <Don't Blame for Me>를 연주하는 그 때 그 건반 위 손놀림만큼이나 리듬감 있는 키보드 타이핑 소리만이 방안에 울려 퍼지고 있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제 뒤로는 많은 일이 일어났던 여름의 잔상 같은 것들이 남아 있습니다. 어쩌면 그런 느낌은 스스로가 무언가를 맺어내야 하는 시기에 머물고 있기 때문에, 더욱이 그런 것도 같습니다. 이번 주는 그런 여름에 대한 제 이야기를 짧게나마 남겨봅니다. 그래서인지, 모두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역시, 편하게 읽어주시고 '세상엔 저런 삶을 사는 사람도 있군...' 정도의 반응이라도 보내주신다면 저로선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겠습니다.
"어느 하나 똑부러진 답을 쥐고 있지 못하는 상황이 속상했다. 모든 것이 나 개인을 초월하는 범위에서 이루어진다면 차라리 세상의 흐름에 불가지론적 태도를 갖는 것이 속 편한 선택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에서 몇 가지를 배웠다. 내 원점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 그리고 한계를 아는 것이 왜 중요한지 알았다. 적어도 시작점과 끝점을 알았으니 두 점을 잇는 문제가 남았다. - 모터사이클로 유라시아 (2016.손 현)
얼마 전, 지인으로부터 왜 이렇게까지 많은 일을 하려고 하는지에 대해 꽤나 진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에게 차마 답하진 못했지만, 지금 몸 담고 있는 업계의 특성상 유입의 경로는 좁고 무척이나 한정적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겨우, 그것도 아주 조금이라도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면 그것 조차도 놓치고 싶지 않다는 과한 욕심과 나름대로의 사정 그리고 젊은 오기 같은 것들이 정돈 안 된 덩굴처럼 한데 뒤엉켜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것들이 덕지 덕지 붙은 하루의 틈바구니 속에서 저는 고장난 온 오프 스위치 같이, 좀처럼 일이 아닌 다른 면으로서의 삶으로 스스로를 뒤집어 볼 여력조차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고, 그래서 똑부러진 답을 쥐고 있지 못하는 저 자신과 제가 놓인 상황 속에서 손현님의 문장처럼 무척 속상했습니다.
그래서인지 한 동안은 그 어느 것으로부터도 방해받지 않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딘가로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이유는 아마도,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어쩌면 무언가를 일정 정도 내려놓고, 멀리서 유유자적 스스로를 돌아보며 그저 적당해지고 싶다는 안일한 마음 같은 것도 컸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런 마음 탓이었는지, 그러던 중 손현님의 저서 <모터사이클로 유라시아> 과 숀 펜의 <인투 더 와일드> 영화 원작이 되는 존 크라우어의 <야생 속으로> 를 다시 집어들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저는 이 두 책으로부터 '스스로의 명확한 한계를 알아야하는 이유'에 초점을 맞추어 읽어내려갔습니다. 두 저서의 줄거리를 이곳에서 일일이 언급할 순 없었지만, 여행을 떠나고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없는 한계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결해내야 하는 고난에 봉착했을 때의 마음가짐, 태도, 이 모든 걸 지탱하는 스스로의 의지와 동기,가치의 중요성을 곱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덕에 스스로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하는 것, 그리고 그 사이에서 해볼만한 것들을 명확하게 파악하는 과정을 가져보았고, 그렇게 구분해내는 일의 중요성과 필요성이 현재 상황에서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또 좋아하는 것과 잘할 수 있는 것, 단순히 호기심에서만 그쳐야 하는 것들에 대한 경계나 기준을 명확하게 만들어가야하는 이유 또한 고민해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통상적으로 저는 무리하게 밀어붙이며 일하는 스스로의 방식이 장기적으로 지속 불가한 잘못된 방식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나름 변명 같은 걸 해보자면 조금 무리해서라도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가는 것이 언젠가는, 어렷품이 그리던 '좋은 미래' 앞에서 스스로가 정직하고 당당하게 마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일을 맡고 하나씩 마무리 해내는 과정에서 몰려드는 피로나 책임감 그리고 기타 등등의 압박감 등으로부터 스스로가 때론 분명히 늘어난 나일론처럼 맥 없이 풀려있던 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일'들을 거치고 그렇게 마무리지으며 나름대로의 많은 의미와 잊지 못할 경험들을 찾았던 건 사실입니다.
표면적으로 '일'은 생계를 위한 경제적 수단의 일부지만, 삶의 가치와 의미에서 완전히 무시하거나, 더욱이 망각하고 살아갈 수도 없는 요소입니다. '일'은 삶의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만큼, 일을 대하는 가치와 태도는 자연스럽게 삶을 대하는 방식에서도 무척이나 중요한 가치이자 의미로 들어나게 되기 때문인데, 어쩌면 그렇기에 삶과 일의 가치들을 향한 욕심이 무리하게 일을 쌓아갔던 스스로의 방식들을 묵인했다고도 생각합니다.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삶과 일에서 지녀야 할 가치들 중 분명한 하나를 정할 수 있도록, 그래서 더 이상 해메이지 않고 어서 빨리 무언가를 찾고 결정 지어두고 싶었던 젊은 오기와 조급함 등은 스스로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는 오만함 같은 것에서 비롯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일을 많이 해야하는 이유에 대한 지인의 질문을 곱씹으며 때로는 가짓 수 많은 경험과 그에서 비롯되는 의미에만 집착하며 놓치게 되는 것들도 꽤 많았구나 라는 생각도 뒤늦게 들었습니다. 올해 여름의 스스로처럼, 한계를 망각하고 조급함에 욕심을 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것도 이번에 제가 얻은 것 중 하나였습니다. 시도하는 것 만큼, 스스로의 한계를 파악하고 설정하는 현명함과 충분한 이성적 판단을 바탕으로 현실감을 유지하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쩌면, 삶을 반짝이게 하는 것은 '어떤 경험을 얼만큼 경험해보았는지' 에서보다도, 내 자신을 얼만큼 이해하고 스스로에게 적합 한 것들로 납득하며 다져가온 시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런 내실 있는 축적으로부터 만들어진 궤도를 따라서 빛나는 응축된 빛이라면, 당장에 밝지 않더라도 조금 더 오래도록 은은하게 삶의 곁에서 스스로를 비춰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마무리 합니다.
이 글은 몇 주 째 참여하고 있는 자유 글쓰기 클럽 <구.주.이.배> 에서 서로가 품고 있는 고충들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남겼던 자리에서의 제 이야기로, 이를 다듬고 정리해 분량을 조금 더 늘리는 과정을 거친 나름대로의 업데이트 본입니다. 왠 TMI 인가 싶으실 수도 있지만, 24살인 스스로에게는 어쩌면 의미 있는 글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의 이 시간이 지나 조금 더 미래에 지금의 글(들)을 되돌아본다면, 분명 어딘가 멋쩍은 기분이 들 수도 있겠지만, 24살 지금의 자신을 관통하고 있는 것들이 아마도 미래의 어떤 지점에서의 자신에게 어떤 방향으로 변화하고 기울어가고 있는지 그 궤도를 알아보는데 솔직하고 좋은 척도 같은 것이 되어주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이렇게 구구절절 기록해 남겨봅니다. 긴 글 읽어주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