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코끝찡 Nov 15. 2021

아버지에게 여자 친구가 생겼다고 한다...

바랐던 일인데 왜 이렇게 슬프고 화나고 눈물이 날까? 



 밤 아홉 시,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아버지 가게가 마쳤을 시간이긴 한데, 보통 아버지가 전화하시는 타이밍은 아니다. 보통 아버지는 한 잔 하시고 늦게 자는 나에게 11시나 혹은 더 늦게 12시쯤 전화를 건다. 나는 그 전화를 빠짐없이 받는다. 내가 전화를 받지 않으면 아버지는 술주정을 받아줄 사람이 그 시간 때엔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전화로 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을 표현한다. 아버지는 아픈 어머니께 최선을 다하셨다. 아버지는 본인의 신장까지 어머니에게 이식했었고 그 누구보다도 어머니를 사랑하고 사별하신 후 힘들어하셨다. 그 어떤 사람보다도...


 밤 아홉 시, 아버지가 술을 드신 목소리이긴 하다. 그런데, 취한 목소리는 아니다. 무언가 하실 말씀이 있는 듯하다. 아버지가 꽤나 뜸을 들인다. 


 "아들~ 아빠가 오늘 어디를 다녀왔는데..."


 평소 아빠답지 않게 말을 뺑뺑 돌린다. 미사여구가 길어진다. 그래도 잠자코 아빠 말을 듣는다. 


 "아빠 아는 사람 뭐 통해서 누굴 좀 만났는데... 아빠랑 가끔 뭐 만나기로 했어." 


누굴 만났는데 라는 말을 했을 때부터 허벅지를 꼬집고 눈치채고 있었다. 아버지는 여자 친구가 생겼다는 말을 뺑뺑 돌려서 나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머니가 떠난 지 4년 하고도 한 계절이 지났다. 아버지에게 여자 친구가 생겼단다. 왠지 모르게 서럽게 눈물이 난다. 이상하게 화도 난다. 그런데 난 이 순간 바라기도 했었다. 묘하게 여러 감정들로 복잡하다. 나는 최대한 내 감정을 숨기고 아버지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어떤 분이냐 호기심 어린 다섯 살 내 조카처럼 물어본다. 


 "어떤 분인데?"

 "저 사는 곳은 저기 조금 먼데... 차로 가면 한 시간... 그렇게 멀진 않아..." 

 "나이는?"

 "아빠보다 다섯 살 어리다." 

 "그분은 남편은?"

 "그분 남편도 엄마랑 똑같이 같은 병으로 세상 떠났대."


더 이상 물어보지 못하고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최대한 허벅지를 세게 꼬집었다. 


 "그냥 아들한텐 먼저 말해야 할 것 같았어. 아들 괜찮지?"

 "그럼. 뭐 어때서..."

 "그냥, 심심할 때, 말동무하는 사이하자고 했어."


 아버지 걱정 말라고 살짝 들어라는 식으로 피식 웃었다. 내 피식 웃음소리가 전달이 되었을까? 아버지는 안심하고 전화를 끊으셨다. 끊고, 얼굴을 감싸고 이게 도대체 무슨 감정인지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분명 화도 나고,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원망스럽기도 하고, 눈물도 나고, 서럽기도 하고, 웃음도 나고, 허무하기도 하고, 이 복잡한 감정은 처음이다. 


 엄마가 돌아가신 직후 할머니는 나에게 아버지 주변에 참한 아줌마 없냐며 알아봐 주란 말 한마디 때문에 할머니에 대한 모든 애정이 다 사라졌었다. 엄마는 할머니 병시중 다 들다가 할머니보다 먼저 떠났는데, 엄마 돌아가시고 한단 소리가 고작 그 소리라니... 할머니에겐 엄마라는 사람은 그저 며느리라는 소모품이었다는 생각에 너무 화가 나 더 이상 할머니를 보지 않았다. 그리고 엄마의 보살핌이 없어지니 거짓말처럼 할머니의 병세는 악화되었고 석 달 뒤 할머니도 돌아가셨었다. 할머니의 그때 그 말 때문이었을까? 할머니의 장례식 땐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회사 어른 분 중 한 분은 나에게 여자는 혼자 버텨도 남자는 오래 못 버틴다면서 아버지 빨리 여자 친구 만들어주란 말을 했었던 적도 있었다. 그냥 농담조로 하신 이야기였지만 나에겐 큰 상처였다. 이후 회사에서도 그 분만 보면 그 말 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그 분과 대화하는 것 마저 두려웠다. 


 할머니도 회사의 어른 분도 아버지가 걱정되어서 했던 말이다. 사실, 나도 늘 아버지가 먼저 걱정이었다. 그들의 말도 사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실밥부터 떼려고 했다. 나도 언젠간 아버지 옆에 새로운 분이 옆에 오길 바랐다. 그건 아마 어머니도 바랐을 것이다. 그만큼 아버지는 힘들어하셨고 어머니를 사랑하셨으니까...


 그런데 뭔가 서럽다. 진정으로 엄마가 사라진 느낌이다. 엄마에게서부터 남편을 잃은 느낌이다. 결국 아빠도 남이었나?라는 느낌이 든다. 할머니가 했던 말처럼, 결국... 엄마는... 엄마는 소모품이었어?라는... 못되고도 쓸데없는 생각이 들면서 서럽게 눈물이 나기도 시작한다. 얼마나 울었는지, 두통까지 왔다. 뭔가 결국 혼자 생존자를 구하지 못한 가족은 나밖에 없는 느낌이다. 이런 깊은 우울감에 또 빠져들고 만다. 결국, 아버지를 걱정했지만 결국 가장 우울했던 건 나였나 싶다. 나도 4년 동안 연애 못했는데 아버지가 낫네! 싶다는 생각에 또 피식- 정신이 요란하다. 아무래도 지금 난 제정신이 아니다. 마치 길 잃은 겨울의 길 고양이 같다고 할까? 어디 가야 할지 모르겠고, 화는 나는데 원망의 대상이 없고, 슬픈데 슬퍼해야 할 명분도 슬슬 희미해져 가 서럽기까지 한데 더럽게 슬퍼서 눈물만 주룩주룩 난다는 게 짜증 난다. 알 수 없다...


정답은 있는데... 정답으로 향해야 할 길이 너무나 험난하고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내 감정과는 별개로 아버지에게 여자 친구가 생긴 것만큼은 너무 감사하고 그분에게도 또 감사하다. 하지만, 아주 얄팍한 심정이지만, 아버지도 아직은 엄마보다는 덜 사랑하셨으면 좋겠고, 그분께서도 먼저가신 남편분 보다는 아버지를 덜 사랑하셨으면 좋겠다. 아직까지는...







 


매거진의 이전글 이사 후, 이케아에서 만난 반갑고 그리운 사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