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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법은 조변 Dec 05. 2024

12년 전, 경찰에 붙잡힌 적이 있었다.

공권력에 붙잡혀 본 경험을 말씀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나만 몰랐던 민법', '박사는 내 운명', '조변명곡', '조변살림&조변육아'를 쓰고 있는 조변입니다.


오늘은 '12년 전, 제가 경찰에 붙잡힌 경험'을 말씀드립니다.


2012년 겨울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제가 법무법인 바른에서 1년 차 변호사로 일을 배우며 일을 하던 때였습니다.


토요일 저녁에 반드시 마무리해야 할 자문의견서가 있어서 전 여자친구(현 아내)와의 데이트도 미루고 김밥을 먹으며 일을 했습니다. 밤 11시가 넘어서야 겨우 의견서 작성을 마치고 파트너 변호사의 컨펌을 받고 퇴근을 할 수 있었습니다.


토요일에는 변호사도 편안한 복장으로 출근해서 일을 합니다.

저도 후드티와 점퍼, 청바지를 입었습니다. 조금 더 편하게 일할 수 있었습니다.


토요일 밤이라 회사에는 저 혼자 있었습니다.

제가 일하던 방에 불을 끄고, 복도 불도 끄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위에 보이는 테헤란로 92길 골목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위 지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왕복 2차선 소방도로로 좁고 어두운 길입니다.


피곤한 몸으로 대명중학교 근처에 있는 원룸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검은색 스타렉스가 전조등을 끈 상태에서 저를 따라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 스타렉스는 제가 걸어가면 따라오고, 제가 멈추면 따라서 멈추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경보를 하듯이 조금 빠르게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그 스타렉스도 제 속도에 맞춰서 조금 더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위험하다는 생각에 뛰었습니다. 그 순간 "저 새X 잡아!"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검은색 스타렉스에서 건장한 아저씨 3명이 내려와서 저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필사적으로 뛰었습니다. 그런데 그 건장한 아저씨들은 저보다 빨랐고 저는 붙잡혔습니다.


"이렇게 납치당하고 감금당해서 죽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양팔을 붙잡힌 채로 스타렉스로 끌려갔고, 제 손목에는 수갑이 채워졌습니다.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이 아저씨들은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변호사입니다. 저를 왜 붙잡습니까? 풀어주세요."라고 했습니다.


"이 새X야! 거짓말을 쳐도 좀 그럴듯하게 쳐라."라는 말로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왜 현행범 체포를 하면서 미란다 원칙* 고지도 하지 않느냐고 따졌습니다.

(*당신은 변호인은 선임할 수 있고, 불리한 진술을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알려주어야 하는 수사 원칙)


한참 동안 실랑이를 한 후, 그 경찰 수사관은 오해였다고 미안하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렇게 공권력에게 아무 이유도 없이 붙잡힌 경험을 했습니다.


근처에 성폭행범 수배자가 있는데 닮은 것 같아서 붙잡았다고 했습니다.

제가 빠르게 걸어가다 도망가니깐, 그놈이다 싶어서 붙잡았다고 했습니다.


저는 제 신분증과 변호사신분증, 법무법인 바른 사원증을 보여주면서 겨우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도망가니깐 붙잡을 수밖에 없었다는 핑계 아닌 핑계도 들었습니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도망가다가 붙잡혀서 스타렉스로 끌려갔던 기억은 강렬하게 남아있습니다.

제가 변호사가 아니었다면, 저에게 변호사 신분증이 없었다면 더 특별한 경험을 했을 것 같습니다.


공권력이 발동되는 그 순간에는 그 공권력이 항상 옳지 않을 수 있습니다.

공권력이 발동되는 그 순간에는 그 공권력이 항상 정의롭지 않을 수 있습니다.


"포고령 위반자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계엄법 제9조(계엄사령관 특별조치권)에 의하여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으며, 계엄법 제14조에 의하여 처단한다."


지금은 무효인 12월 3일에 발표된 계엄사령부 포고령의 문구입니다.

"영장 없이 체포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는 계엄 상황이 아닌 평상시에 경찰에 붙잡혔다가 현장에 바로 풀린 케이스였지만,

계엄 상황에서는 경찰도 아닌 군인에 의하여 누구나 영장 없이 현행범으로 체포될 수 있습니다.


계엄 상황에서는 누구나 특별한 이유도 없이 체포되고 구금되며 압수수색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위법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헌법상 기본권이 침해될 수 있습니다.



국가기관과 국가의 공권력은 국민을 위하여 존재하여야 합니다.

문제는 그 공권력이 발동되고 행사되는 그 순간에는 "적법성"의 판단이 모호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국민이 국가의 공권력을 두려워하지 않고,

국가의 공권력이 국민을 두려워하여야 합니다.




제가 쓴 매거진과 브런치북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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