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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운엽 Sep 18. 2024

공원 속의 도시 싱가포르

수많은 배가 대기하고 있는 싱가포르 외항


공원 속의 도시 싱가포르


'해피 라틴' 호는 잔잔한 말라카 해협에 들어섰다. 싱가포르까지 약 500해리 정도로 이틀 남짓 항해하면 도착한다. 협수로라 많은 배가 스쳐 지나간다. 선원들은 싱가포르에 가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도시 경치가 좋고 전 세계 오만가지 상품을 면세에 가까운 가격으로 팔아 가족, 애인들에 선물할 게 많아서이다. 선주도 싱가포르에서 값싼 면세 기름이나 주부식, 선용품을 실으려고 거기 도착할 만큼의 기름과 주부식을 싣고 가게 한다. 급유와 선용품을 보급받는 동안 선원들은 2개 조로 나누어 통선을 타고 주롱 포트로 상륙한다. 그 서너 시간 안에 육지 바람을 쐬고 피플스 파크에서 쇼핑하고 맥주도 마시면서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이 사람 사는 냄새를 맡고 떠난다.


싱가포르는 서울보다 조금 더 큰 면적에 오륙만 명이 살아 인구밀도가 아주 높은 도시 국가이다. 성공한 도시 국가 모델로 공원 안에 도시가 있다고 자랑할 정도로 잘 단장되어 있다. 자원이랄 게 없고 주변 큰 나라에 영향을 받기 쉬워 국민 통제가 심해서 잘 사는 북한이라고 말할 정도로 강력한 경찰국가이다. 하지만, 캐나다처럼 질서 잡힌 통제가 혼란스러운 민주주의보다 낫다는 말도 있다. 싱가포르에선 길거리에서 쓰레기를 버리거나 껌 씹다 버리면, 외국인이고 뭐고 예외 없이 거액의 벌금을 내야 한다. 벌금의 나라라고 할 정도로 도시를 더럽히는 행위와 질서 유지에 엄격하다. 교통법규가 보행자 우선이고 구급차, 소방차의 길을 터주지 않거나 음주 운전을 할 경우 살인미수에 준하는 중죄인 취급하여 엄청난 벌금과 함께 빠따를 맞는다. 아주 잘하는 일이다.


싱가포르인들은 불친절한 데다가 못 사는 나라에 가면 깽판 친다는 소문이 많이 나 있다지만, 겪어보면 준법정신이 강하고 외국인에 예의 바르고 친절하며 정직한 사람이 많다. 특히 중국계의 경우는 젊은 층 매너가 거의 영국 젠틀맨과 비슷하다고 한다. 말레이계나 인도계 등도 외국인에게 바가지요금이나 등쳐먹진 않고, 대부분의 싱가포르 사람은 한국인에게는 엄지 '척' 하며 대우해 주는 편이다. 싱가포르는 우루과이처럼 여자가 많은 국가란다. 이 나라에선 여자가 국제결혼 대상을 찾는다고 하니 영어 좀 하는 한국 노총각이 싱가포르에 가서 사는 것도 생각해 볼만하겠다. 싱가포르 공무원은 청렴하여 부정부패가 적고 상대적으로 연봉이 아주 높다고 한다. 한국 교민 아이들은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고 친구들과 중국어, 말레이어, 인도어로 대화하기에 웬만하면 한국어를 포함해 5개 국어를 말할 수 있게 된다.


싱가포르는 네덜란드의 영향권에 있던 빈 땅이었는데 19세기 동인도 회사의 래플스 경이 천여 명밖에 살지 않는 깡촌 센토사섬을 항구도시로 개발해서 동남아시아의 대표적 무역항이 되었다. 싱가포르를 지나갈 때마다 장보고 할아버지가 한때 중국해에서 방방 뜨고 다닐 때 사람이 별로 살지 않던 여기까지와 깃발을 꽂고 만세를 불렀으면 우리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하는 아쉬움이 항상 든다. 래플스 경은 리콴유 수상과 함께 싱가포르에서 그를 모르면 간첩이라는 인물이다. 이후 동인도 회사에서 해가 지지 않는다는 대영제국의 공식적인 식민지가 되어 영국의 동남아시아 거점 도시가 되었다. 도시 건설을 위해 중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왔고 화교 상인들도 돈 냄새를 맡고 몰려와 원주민보다 중국인 수가 훨씬 많아졌다. 같은 시기 인도인 죄수들도 도시 개발을 위해 끌려오면서 이들도 같이 정착했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 영국이 일본에 깨지면서 애먼 화교들이 일본군에게 많이 학살당했다고 한다. 종전 후 말레이시아가 영국에서 독립하면서 싱가포르 또한 말레이시아의 한 주로 독립하였다. 싱가포르는 주변의 대국들 사이에서 새우 등 터질까 봐 말레이시아 연방에 들어가 삐대려고 했으나 합병 이후 말레이계 우대 정책에 갈등이 깊어졌고 말레이시아는 국가 안정을 위해 싱가포르를 연방에서 나가라 했다. 그래서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에서 분리 독립을 당했다. 연방에서 쫓겨나는 것을 결사반대했던 당시 싱가포르 주지사인 리콴유가 원치 않게 독립하면서 앞으로 국민들과 먹고살 걱정에 눈물을 흘리며 인터뷰할 정도였다고 한다. 세계사에서 드물게 원치 않은 독립이 된 경우이다. 리콴유는 모래밭밖에 없는 조그만 섬인 싱가포르가 발전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 당시에도 싱가포르는 항구로서 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말레이시아에 속한 조호르 지역이 후방에서 받쳐줬고, 말레이시아와 정치적으로 통합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싱가포르 자체적으로 식량이나 식수 자급이 불가능한 작고 척박한 땅이었다.


독립 후 싱가포르는 재빠르게 영연방에 가입하였다. 그리고 싱가포르의 국부인 리콴유는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강제 독립을 당한 후에는 공산권 국가들과도 친하게 지냈다. 현재 북한 대사관이 제대로 돌아가는 경제 강국 중 한 나라이다. 그런 관계로 북미정상회담이 싱가포르에서 열리기도 했다. 독립 초기부터 리콴유는 사회주의식 자본주의로 갔고 말레이시아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으며, 다행히 동남아시아의 공산화 바람이 사라지고, 가장 큰 위협이었던 인도네시아와도 잘 지내게 됐다. 화교가 다수임에도 중화권이 아닌 동남아시아의 일원임을 주변 국가에 적극적으로 알리면서 살아남아 지금처럼 번성하게 됐다.




그런데 싱가포르를 식민지로 삼았던 해가 지지 않던 나라, 대영제국의 막강한 군사력이 일본에 힘도 못 쓰고 수만 명이 포로가 된 사건은 역사적으로 큰 의문이었다. 일본은 말레이시아 일대를 장악하여 동남아 진출의 발판과 싱가포르에 영국이 만들어 놓은 각종 시설을 날로 먹으려 했다. 일본 육군은 중립을 표방한 태국의 비행장을 강제로 접수하여 육군 항공대를 동원해 말레이 지역의 비행장을 기습 공격해 영국 공군을 박살 내버렸다. 일본군은 얍삽하게 선전포고도 없이 진주만을 공격하는 등 비겁한 기습 공격의 선수였다. 이에 영국은 함대를 꾸려 지원에 나서는데 아군 전투기의 엄호를 받을 수 없어 말레이 해전에서 일본 폭격기의 공격에 힘도 못 쓰고 죄다 가라앉았다.


결국 일본군은 말레이반도에 별 피해 없이 상륙하였는데 시간을 끌면 끌수록 불리했다. 그 이유는 일본군의 병력이 영국군보다 훨씬 적었고 정글을 지나는 싱가포르까지 거리가 800km를 넘을 뿐 아니라 보급을 현지 조달해야 하는 나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국군은 이미 제공권을 잃었고 정글에서는 전차 같은 게 필요 없다고 말레이반도에 전차를 배치하지 않았던 반면 일본군은 구식 전차나마 밀어붙여 보병 위주의 영국군이 밀렸다. 훈련된 영국군은 이미 유럽 전선으로 배치되었고, 남아있는 병력은 훈련도 부족했고 실전 경험도 없는 무늬만 군인이었다. 게다가 싱가포르의 해군 기지를 지키던 해군 병력은 지들만 살겠다고 육군에게 알리지도 않고 철수해 버렸다. 희극이 따로 없었다.


승기를 잡은 일본군은 자전거 부대까지 만들어 전진했다. 결국 영국군은 급히 후퇴하느라 수많은 병력과 물자를 잃고 싱가포르로 퇴각했다. 이때 얼마나 많은 물자를 빼앗겼는지 말레이 전쟁 당시에 일본기가 영국제 기름을 넣고, 영국제 폭탄으로 영국군에게 폭격했고 넘어간 쌀은 수만 명의 병사가 몇 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어마어마한 양이었다고 한다. 영국군은 싱가포르 방어에 들어가지만 사기가 높은 일본군이 상륙하여 격전 끝에 이겼다. 이후 아서 퍼시발 장군 등 영국군 지도부는 결국 일본군에 항복, 개전 60여 일 만에 9만 명에 가까운 영국군이 포로가 되었다. 일본군 병력은 고작 3만 명 남짓했다는데....


항복 회담 당시 통역관이 버벅대자 답답한 일본군 장군이 통역에게 "복잡하게 말하지 말고 항복할 건지 아닌지 '예스냐, 노냐?'로 간단히 물어봐라."라고 말했다는데, 이게 매스컴에서 '예스까, 노까?'라는 말로 국민에게 회자하였다. 퍼시벌 장군의 항복으로 영국이 전 세계에서 수 세기 동안 지켜온 위신은 다 망가졌다. 이 패배로 영국은 싱가포르와 말레이반도 주변의 식민지를 잃고 처칠 수상은 대영제국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패배라고 인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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