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특별한 환희씨 Aug 23. 2021

나의 베란다가 나에게 바란다.

당신만의 공간이 있나요?

                                                                                                                                                                                                                                                                                                                                                                                                                                                                                                                        






오후 8시 50분. 지금 내가 앉아있는 이곳은 나의 베란다.


나는 이 베란다에서 나의 안전거리를 유지하고 조절한다. 




이곳을 잠시 설명하자면,


바닥 타일에 앉아있는 나를 기준으로 왼쪽에는 3단 선반으로 횡이 나누어졌으며 양문을 가진 깊은 창고가 하나 있고, 창고형 붙박이장 앞에는 나의 30대 시작을 알리던 너무 커서 버리기 남사스러운 마지막 웨딩사진액자가 이케아에서 산 철제캐비넷 위에 놓여져있다. 웨딩사진액자를 가리고 싶어서 그 앞에는 나의 결혼식 때 친구들이 찍어준 웨딩트리와 임신 때 그렸던 diy유화 그림이 있는데 마르크 샤갈의 “에펠탑의 신랑 신부”이다. 그리고 내 머리 위에는 조도를 담당하는 하나뿐인 다운라이트를 가리는 천장형 빨래건조대가 위치해 있다.  




여기까지는 자체 필터 처리하고 지금부터가 내가 보고싶고 온전히 누리는 나만의 공간이다.

사심이 들어간 공간이니 조금 과장해서 풀어보자면, 

내 앞으로는 창문 밖으로 보이는 푸르땡오 아파트, 풍땡채 아파트와 너무나 잘 어우러지는 4개의 작은 화초들이 푸른 풍경을 담당하고 있으며, 오른쪽에는 가성비 최고 극락의 편안함을 주는 이케아 암체어가 나의 선반과 적재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신혼 때 집안 인테리어를 위해 샀던 일관된 취향을 가지지 못해 어디서도 어울리지 못하는 스탠드들은 바닥에 널려있다. 

예상 밖의 결과가 빚은 모순이나 부조화에서 오는 편안한 나의 베란다가 당신의 머리속에 그려지는가? 

여기는 종종 아니 자주 혼맥의 장소가 되고, 에어팟의 노이즈캔슬링 기능 덕분에 나만의 콘서트장이 되기도 한다. 되도록이면 이 곳에서는 나만을 위한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데, 이 글을 쓰기 전 나는 이곳에서 나만을 위한 쇼핑을 했다.




나의 뒤편 가려진 암막커튼 뒤로는 라자매가 곤히 잠들어있다. 빗소리 백색소음을 틀어놓고.



요즘 아주 애정 하는 책이 하나 있다. 박현주 번역가의 “당신과 나의 안전거리”이다. 운전과 사람 간의 거리를 비유하여 쓴 에세이다. 당연히 이 책은 이 베란다에서 읽었다. 


마음속 안전거리는 운전의 안전거리보다도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46cm를 지킨다고, 그보다 더 멀어진다고 안전해지는 것이 아니었다. ‘앞 창문 너머로 뒷바퀴가 보일 만큼’이라는 공식도 없고, 옆에 오는 차들을 지켜볼 수 있는 사이드미러도 없었다. 차 사이에서는 뒷바퀴 타이어가 보일 수 있는 거리, 신체 사이에서는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 46cm. 수없이 많은 사람과 스치듯 살아가며 최소한으로 지켜야 할 거리가 있다. 마음에도 그런 거리가 있다. 어떤 날은 가까워지고, 어떤 날은 멀어진다. 어떤 날은 더욱더 멀어져 습지로 들어가고 싶을 때가 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거리가 안전했고, 고독이 완전했다.”






나는 이 베란다에서 나의 안전거리를 유지하고 조절한다. 



어느 날은 신랑에게서, 또 어느 날은 라자매에게서, 슬픈 날에는 세상에게서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서. 

나에게 안전거리란 나를 가다듬고, 나를 찾아가는 나의 보호장치이다.

결혼을 해서는 나의 열정을 잃어버린 듯했고, 육아를 하면서는 나의 젊음을 잃어버린 듯했다. 

내가 좋아했던 것이 뭐였더라? 내가 싫어했던 것이 뭐였더라? 항상 입에 붙이고 사는 말은 “그냥, 뭐든지, 나는 상관없어.” 선택의 주체로 서려고 하지 않았다. 책임이 무서웠다. 나의 의견은 항상 책임으로 돌아온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렇게 운 없고, 비관적이며, 이기적인 나는 내가 너무 싫어서 더 망각하려고 노력했다. 대면하기가 두려웠다.




이런 나를 나의 베란다가 불렀다. 그리고 나에게 바란다. 




법을 대표하는 상징물로 정의의 여신상이 있다. 정의의 여신상 오른손에는 저울을, 왼손에는 칼이 쥐어져 있다. 그리고 눈은 두건으로 가리고 있다. 저울은 공정함을, 칼은 엄격한 법 집행을, 그리고 눈을 가리고 있는 두건은 사사로움에 혹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한다. 




나를 보호하는 상징물로 나의 베란다가 있다. 나의 베란다 오른쪽에는 표현자가 , 왼쪽에는 웨딩사진이, 뒤쪽에는 잠든 라자매가 있다. 표현자는 자아실현을, 웨딩사진은 상호보완을, 라자매는 고해성사이다.




나의 베란다가 나에게 바란다. 

이 공간에서 안전하라고. 따스하고 따스한 나의 베란다.                                               




당신에게는 당신만의 장소가 있나요? 

당신을 보호하고, 안전할 수 있는 당신만의 장소를 공유해주세요.

당신의 장소에서 당신이 가장 안전하기를 소망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DNA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