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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성극 아카이브 Jan 05. 2020

55:45

결혼 이야기

결혼 이야기(Marriage story) 2019.12.06

노아 바움백

스칼렛 요한슨, 아담 드라이버

  


찰리는 끝까지 니콜을 과소평가했고 니콜이 뭘 하고 있는지, 뭘 하고 싶어 하는지 관심이 없었다. 찰리에게 니콜이란 자기 집에 있는 소파나 아니면 극단원 중 하나였다.


  폭력적인 성향은 찰리가 그렇게 싫어했던 찰리의 아빠와 다를 게 없었다. 니콜은 이 결혼으로 인해서 찰리의 부속물 중 하나가 되면서 어떻게 시간을 뺏겼고, 고향을 잃었고, 무수한 기회들을 날려야 했고, 겨우 잡은 기회가 왔을 때 남편한테 어떻게 지지받지 못했는지, 그리고 그 파일럿 급여마저 극단 예상으로 쓰자는 소리를 듣고 남편에게 자기 전화번호를 물었을 때 그걸 몰랐더라. 이런 얘기를 한다.

  그에 비해 찰리가 고작 하는 말은 내가 너무 어릴 때 결혼을 했는데, 그때 나는 상도 받고 잡지에도 실린 젊은 연출가였고, 누구나 와 잘 수 있었고 대시도 많이 받았고 기회도 있었지만 나는 널 생각해서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그때 결혼할 마음도 없었는데 너무 일렀는데 네가 결혼하자고 했다. 이거다. 어떻게 이 구대를 같은 선상에 둘 수 있을까? 이건 무게가 다른 말이다. 찰리는 그저 불쌍한 나에 취해 징징대고 있고, 니콜은 10년간의 생활에서 진정한 자신의 삶을 찾지 못했는데도 니콜 자신보다 찰리를 동정한다.

  니콜의 말대로 이 결혼 자체가 childish marriage였다. 결혼 이야기는 곧 니콜의 값비싼 인생수업이었다.

  찰스는 품위를 지키고 싶어 하고 점잖고 싶어 한다. 그.. 예술충 특유의 품위를 잃지 않겠다는 고집스러운 의사를 표현하지만 하는 행동은 억지 어리광에 불과하다. 애는 무조건 뉴욕으로 데려가야겠단다. 헨리가 뉴욕에 있어야 할 이유도 사실 없었다. 그냥 본인이 자수성가한 곳이 뉴욕이니까. 거기에 모든 가족 - 니콜과 헨리- 그게 안된다면 헨리라도 데려다가 두겠다는 의미밖에 없다.

   니콜의 원래 성은 나오지도 않지만.. 지금은 찰리의 성을 따르고 있다. 여성이 남편의 성을 따라가는 것. 니콜의 삶은 그것과 같다. 찰리의 성을 쓰기 시작하면서 니콜은 찰리의 '부속물'이 됐다. 공동계좌를 개설한 이유? 니콜의 계좌가 따로 있을 이유가 없어서였겠지.

   니콜은 찰리와 LA에 가서 살아보기로 약속했었다고 하지만 찰리는 그 '약속'을 가구를 옮기거나 아이의 학교를 옮기는 수준의 의견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찰리는 명절마다 LA의 집에 가는 걸로 자기 자신이 모든 걸 하고 있고 잘하고 있다고 믿었던 거지.. 어쩌다 한 결혼의 대가 치고는 니콜이 포기한 게 너무 컸다.

  니콜 말대로.. 찰리는 가정을 진정하게 사랑하는 게 아니라 가정 안의 역할을 사랑한다. 아빠인 게 아니라 being a dad가 되는 순간들을 '좋아한다.' 그 짧고 단편적인 순간들을 사랑한 철부지밖에 되지 않는다.


  나는 찰리를 보면서 저 결혼의 형태가 네이트 판에서나 보는 전형적 한국 결혼가정의 모습과 다를 게 없어서 찰리의 모든 감정선이 우스웠고 비웃 겼는데 의외로 찰리를 동정하는 관객이 많더라. 왜지? 아담 드라이버가 연기를 잘하긴 했는데 배우도 캐릭터 딱히 동정하진 않는 거 같은데.

  그리고 영화에서도.. 찰리에게 동정의 여지를 줬나? 얼마나 찰리가 우습냐고. 잭나이프를 사준다는 약속에 대한 변명을 하기 위해 물어보지도 않은 잭나이프 일화를 말하다가 지가 지 팔을 긋는다. 이게 지금 찰리의 모든 행동을 상징한다고... 완전 자승자박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상황을 더욱더 나쁜 쪽으로 몰아넣고 본인 얼굴에 본인이 먹칠 중이다.


  그리고 둘이 말싸움하다가 찰리가 벽을 부수고.. 니콜한테 결국 저주를 퍼붓는 모습.. 좀 짠하려고 하다가도 그 장면 보면 정나미가 뚝 떨어지지 않나.


  더군다나 영화 안에서는 찰리가 명예를 챙길 수 있는 지점이 이미 여러 번 있었다. 첫 번째는 니콜한테 잘못했다고, 기회를 달라고 빠르게 말하는 거였다. 니콜은 찰리를 사랑(이게 과연 사랑일까? 내 기준에서 사랑은 아니지만 어쨌든 니콜은 찰리를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음.)하는 만큼 극단을 꽤 소중하게 여겼고 뉴욕의 삶을 견뎠다. 하지만 찰리는 니콜에게 용서를 구하고 설득하는 대신 '너 갑자기 왜 그래'로 축약될 수 있는 말들을 하더라. 이게 바로 니콜이 말하는 가스 라이팅이다. 두 번째는 첫 번째 변호사의 말을 듣는 거였다. 첫 번째 변호사가 결국 아이를 위하는 게 이기는 거고, 법원까지 가면 당신의 재산보다 더 많은 변호사 선임 비용을 내며 진흙탕 싸움을 할 거라고 미리 점잖게 경고하지만 찰리는 진흙탕 싸움을 선택한다.

  이유는 하나. 노라가 기분을 상하게 해서. 찰리의 궁극적 목표는 가족을 잃지 않는 건데 그 목표를 위해서 가족 구성원의 의지는 상관이 없다. 찰리에게 가정이란.. 그저 하나의 지표이고 자기를 백업하는 도구였던 거지.. 찰리 본인도 지가 이렇게 끔찍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자각하진 못할 테지만 모든 상황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아이의 의지와 상관없이 뉴욕에 있어야 한다고 억지를 부리고 '일단 뉴욕에 돌아가서 얘기하자.'라고 말하는 그것들이 ㅋㅋ 으.. 네이트 판..

  변호사를 바꾸면서 찰리는 품위를 챙길 모든 기회를 날리고 그냥 우스워진다. 산지 얼마 안 된 집에 식물을 렌트해서 데려다 놓고 아들이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고 서운해한다. 찰리가 변호사를 바꿔온 순간 찰리는 바닥을 찍은 거다.  변호사의 말대로 이건 공간의 싸움이 아니다. LA이냐 뉴욕이냐는 이 부부의 모든 걸 대변한다. 여태까지 찰리의 태도, 그리고 니콜이 참아왔던 모든 것들. 그것들을 대변한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찰리는 완벽하게 졌다. 명분과 명예조차도 얻지 못하고.

  변호사가 찰리한테 이런 말을 한다. 억울하시죠? 근데 이게 다 이혼을 선택하는 여성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그 여성이 니콜이었다.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가 여성에게 불리하고, 그럭저럭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던 니콜도 사실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당했다. 심지어 니콜도 그걸 행복이라고 생각했고.


  니콜의 엄마의 태도도 흥미로웠다. 좋은 엄마는 아니지만 노라의 엄마는 찰리를 좋아했던 게 아니라 노라의 남자(남자 친구던 남편이던)를 좋아했던 것일 뿐. 이 말의 의미는 뭘까? 찰리는 '내 가족'을 지킨다고 본인의 밑바닥을 보였지만 어디에도 찰리의 가족은 없었다. 왜냐면 찰리 본인이 가족을 만들 수 있었던 기회를 다 날려버렸기 때문에. 니콜 말대로 이기적인 태도가 몸에 체화돼서 본인이 이기적인지도 몰랐어서.


  그리고 니콜의 명예는 놀랍게도 노라가 챙겨준다. 55:45로. 누가 봐도 남편 측 과실이 확실한 상황에서 이무도 니콜 탓을 하지 않도록 말이다. 니콜은 원하지 않았던 거지만 궁극적으로 그렇게 됐다. 덕분에 마지막 장면에서 니콜은 찰리한테 '배려'를 이어갈 수 있다. 이건 꽤 중요하다.

  노라는 니콜 같은 여자를 기백명 만나봤을 거고 이미 알았을 거다. 니콜이 50:50의 시간도 한 번쯤은 찰리한테 양보할 거라고. 50:50에서 45:55가 되는 것과 55:45에서 니콜의 배려로 50:50이 되는 건 전혀 다르다. 그 한 번의 양보를 위해 노라는 55:45를 맞춘 거다. 다시 말하지만 니콜은 찰리의 결혼에서 탈출하면서도 찰리를 동정하니까. ㅋㅋ 마지막에 헨리가 니콜이 썼던 찰리의 장점을 읽는 건.. 찰리가 놓친 모든 것들을 다시 상겨시켜주는 것임. 니콜은 이 정도로 찰리를 사랑했다. 그래.. 쓰고 보니 뭐 사랑은 했네. 그리고 니콜은 극단뿐만 아니라 자신의 커리어에도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적어도 그 정도는 받을 수 있는 결혼을 원했다. 니콜이 원하는 건 소박했다고. 니콜은 연출에도 소질이 있었고 연기도 좋았고.. 니콜을 잘 모르는 촬영 스태프들이 찰리보다 니콜의 재능을 더 알아준다. 니콜은... 하고 싶은 게 있었고 그걸 찰리와 같은 길을 걸어 나가면서 만들고 싶었지만 찰리가 니콜을 가둬만 두고 극단 부속물 취급한 걸 어떡함.

  니콜은 돌아갈 생각 없음. 다만.. 아직도 찰리를 연민할 뿐임. 모든 여자들이 더 많은 희생을 하고서도 이혼 '당한'어떤 남자(아들 아는 남자 남편 어찌 됐던)를 불쌍히 여겨주듯이 ㅋㅋ


  왜 찰리가 가장 잘 풀릴 때는 니콜이 숨죽여 옆에 있었고 니콜은 찰리와 이혼하고 나서 커리어와 인생의 전성기를 찍었는지를 알려주는 영화였음.


아 맞다. UCLA교수직 받은 거 ㅋㅋ 진짜 끝까지 구질구질함. 찰리 진짜 너무 네이트 판임 ㅋㅋ 그렇게 쉽게 올 수 있었던 걸 이혼 전에는 '안'했다는 거지. 그렇고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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