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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슬기 Jul 26. 2023

나 소크라테스 응원가 부르고 싶었네?

야구라는 기쁨과 고통 10: 올스타전을 가다

2023년 7월 15일 토요일


올시즌 전국 9개 구장으로 야구를 보러 다니겠다는 야심찬 계획에도 불구하고, 일찌감치 KBO 올스타전 직관은 포기했었다. 나라고 티켓팅을 시도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수많은 야구팬들이 손에 땀을 쥐어가며 핸드폰이나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노려보고 있었을 7월 5일 오후 2시, 나도 열심히 핸드폰을 주물럭거렸다. 그러나 접속하자마자 6***번째 접속자라는 대기화면이 뜨더니, 한참을 기다려 맞이한 예매 화면에는 전석 매진이 떠올라 있었다. 사실 놀랍지도 않았다. 애초에 별 기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WBC에서의 부진, WBC 기간 내 도쿄에서의 음주 의혹, 미성년자 성범죄 혐의로 방출된 선수, FA 과정에서 선수에게 금품을 요구한 단장까지 별별 악재가 다 겹쳤지만 코로나19 이후 최대의 흥행을 기록하고 있는 KBO다. 게다가 올시즌 승승장구하는 롯데의 홈 사직에서 하는 올스타전이니, 나같은 티켓팅 쪼렙이 기적을 만들리 만무했다. 


그러고 일주일이 지난 7월 12일. 도서관에 들러 이 글 저 글을 쓰다가 머리를 식히러 인스타그램에 들어갔다(가 아니라 극심한 집중력 저하로 늘 인스타를 왔다갔다거린다). 팔로우하고 늘 들여다보는 NC다이노스의 팬 계정의 스토리에서 올스타전 자리 2석을 양도한다는 글을 봤다. 30분 전에 올라온 글이었다. '설마' 하는 마음에 DM을 날렸다.


"혹시 표 양도 가능하실까요?" 

빠르게 답장이 왔다.

"네네 응원석 쪽이긴 한데 필드석 2장입니다. 3루 내야필드석이고요."


그 30분 새 누가 채가지 않았나 싶었는데, 그 자리는 거기 그대로 있었고… 거기다 그 분은 이른바 '플미' 없이 정가인 장당 25000원에 표를 양도하겠다고 했다. 게다가 일기예보에 따라 우취(우천취소)가 예상되는 상황이니, 입금은 경기 당일에 해달라는 얘기와 함께… 자리도 비교적 앞쪽(10열)인데다 통로석이어서 통행도 편하고, 그리고 뭣보다도 NC가 속한 나눔팀 응원석이 3루쪽이었다. 거기다 연석. Y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Y, 올스타전 갈래?"

"어? 표 생겼어?"


불과 일주일 전 예매해 실패한 것을 알고 있는 Y가 놀라며 대꾸했고, 내가 하늘에서 표가 떨어진 사실을 알리자 Y는 무조건 가겠다고 했다. 우리는 일사천리로 올스타전이 열리는 사직 근처(라곤 하지만 대중교통으로 30분 거리에 있는 센텀시티쪽으로) 호텔을 예약하고 왕복 KTX표도 예매했다. 그리고 매일매일을 네이버 검색창에 '사직 날씨'를 치면서 비가 오는지 안 오는지, 강수 확률은 얼마나 되는지를 체크했다.


올스타전 당일은, 밤새 잠을 못 잤다. 집에서 가까운 KTX 행신역에서 오전 6시 차였기에, 일찍 잠들겠다고 밤 10시부터 침대에 누웠지만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불 다 끄고 눈 감은 상태로 2~3시간을 그냥 보내는게 고역이었다. 부산에서의 동선을 머릿속으로 그려보기도 하고, 올스타전 풍경을 상상해보기도 하다 그 풍경에 내가 좋아하는 NC의 손아섭, 이용찬이 없음에 낙담하기도 하고, 그래서 만에 하나 올스타전이 '노잼'이지 않을까 하는 염려와 만약에 부산까지 내려갔는데 올스타전이 우천취소되면 어떻게 하지 하는 걱정까지(이것은 정말 상상조차 하기 싫은 일이긴 했다.) 온갖 생각들이 뒤범벅됐다. 같은 생각들로 나와는 32km 떨어진 곳에 사는 Y도 잠못 이루고 있었다. Y는 '수학여행 전야' 같다고 했다.


결국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다 오전 4시부터 일어나 전에 없는 부지런을 떨었다. 나 없는 동안 내 새끼들(두 마리의 고양이들)이 밥 굶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그릇에 사료를 그득그득 채우고, 엉망진창인 책상 위를 치우고, 무려 냉장고 청소까지 했다. 5시 30분. 집을 나서고 보니, 안개가 자욱한데다 비까지 부슬부슬 내렸다. 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는 비지스(Bee Gees)의 '홀리데이'가 흘렀다. 마음이 절로 비장해졌다.


6시를 조금 넘겨, 행신역에서 KTX를 탔다. 서울역에서는 Y가 탔다. 꼭두새벽부터 출발을 한 데는 간만에 부산을 가는 김에, 올스타전 앞뒤로 여행을 해보자는 살뜰한 계획에서였다. 3시간여를 달려, 부산에 도착했다. 구 진해 현 창원 출신인 나와 통영 출신의 Y에게, 부산은 '근처 대도시' 정도로 친숙한 곳이지만 서울 살이를 시작한 스무살 이래로는 특별한 곳으로 바뀌었다. 서울 친구들이 갖는 바다나 국밥 같은 부산에의 로망을 보며 '거기가 그렇게 특별한 곳이었어?' 라면서 새롭게 되새기는 곳이기도 했다. 막상 오면 '그냥 뭐 부산이 그렇지' 싶은 곳이지만.


드디어 도착한 붓산.


부산역에서 내려 돼지국밥집으로 향했다. 역시 부산에서 조식은 국밥이다. 아침 일찍부터 문을 여는 부산역 앞의 여러 국밥집 중에 가장 접근성이 좋은(대로변에 위치한) '새삥해뵈는' 국밥집으로 향했다. 아침부터 캐리어를 잔뜩 든 관광객들이 부글부글했는데, 틈바구니에 끼어 국밥을 원샷했다. 서울식처럼 순대가 많이 들어가지 않고, 비계가 많이 붙은 머릿고기 위주의 부산 국밥이다. 정구지(부추)를 듬뿍 넣어 와구와구 퍼먹었다. 젓갈이 듬뿍 든, 짜고 비린 맛의 겉절이가 '취저'(취향 저격)였다.


아침 댓바람부터 고깃국으로 그 어느 때보다 든든해진 배를 안고서 이번에는 카페인을 수혈하겠다고 카페를 찾았다. 내게는 2017년부터 부산 여행을 오면 늘상 들르는 역전 카페가 있다. 오래된 병원을 개조한 카페인 브라운핸즈백제. 부산역 바로 건너편, 도보로 4분 밖에 안 걸리는데다 부산 최초의 근대식 병원인 백제병원을 개조한 오래된 벽돌 건물에서 주는 어둑하면서도 잔잔한 정취가 있는 곳이다. 안에 들어가면 사위가 조용해지고, 밖이랑 분절된 듯 아늑하다. 출장 중에 혼자서도 왔고, 여행 중에 친구와도 왔지만 Y와 오는 건 처음이었다. 사이좋게 아이스 카페라떼를 하나씩 시켜 창가에 앉았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밖은 구름이 짙은데, 빨간 벽돌의 건물 내부는 붉은 빛이 따스해서 악천후 속 산장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전 11시쯤 되니 하늘이 갰다. 일어나야할 때였다. 간만에 온 부산이니까 경기 시작 전 뭐라도 더 해야 했다. 역에서 가까운 국제시장에 가기로 했다. '빈티지'에 환장하는 내가 들르고픈 빈티지샵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려서 사소한 지병으로 1년에 한 번, 엄마와 부산에 있는 큰 병원에 건강검진을 하러 왔었다. 진료가 빨리 끝난다 치면, 나는 엄마를 붙잡고 늘 남포동에 가자고 칭얼댔다. 거기서 맛난 냉면도 먹고(삼대째 내려오는 원산면옥을, 나는 좋아했었다) 엄마와 함께 빈티지샵을 구경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빈티지샵에서 보물을 찾는데 탁월했는데, 바이크족이 입을 법한 락시크 무드의 티셔츠랄지 라이더 자켓을 싼 값에 곧잘 득템했다. 그런 기억이 남아서인지 지금껏 나도 엄마가 좋아하던 락시크 무드를 좋아하고, 빈티지에 환장한다. 여행지에 오면 씀씀이가 더욱 너그러워지는 법이니까, 뭐 하나는 건져볼 요량이었다.


아직은 옷 가게가 장사를 시작하기엔 이른 낮 12시라 문을 연 상점이 드물었다. 미리 영업시간까지 확인하고 온 상점들도 닫힌 곳이 많았다. 여기저길 기웃거리다가 네이버 블로그에서 자주 언급됐던 '엄마의 서랍장'이라는 가게에 갔다. 내가 좋아하는 레트로풍의 그래니룩(granny look)을 주로 취급하는 곳이었다. 과장된 카라와 어깨의 자켓, 잎이 너울거릴 것만 같은 복고풍 꽃무늬의 블라우스 등 내가 좋아하는 것 천지였다. 대체적으로 취향이 다르나 최근 부쩍 하나의 취향으로 수렴하고 있는 Y도 이곳에서 눈이 돌아가는 모양이었다. 뭐 하나는 사겠다는 필사의 마음가짐으로 좁은 매장을 여러바퀴 둘러보았다. 개중에 어깨가 직각으로 떨어지는, 흡사 치파오와 비슷한 모양의 민트색 원피스가 눈에 들어왔다. 비빈들이 즐비한 청나라를 소재로 한 중국 사극에서 본 것 같은 실루엣의 원피스가 나의 심장을 저격했다. 누런 얼굴에 민트라니… 하며 반신반의했지만, 입었더니 의외로 얼굴이 사는 것만 같았고(매장 언니도 그렇게 얘기했다) 결국엔 결제했다. 왕진 가방 마냥 각이 진 블랙의 미니백을 계속 만지작거리던 Y도, 나올 때는 어깨에 그 가방을 맨 채였다. 우리 야구 보러 다니다 같이 파산하겠노라고… 서로의 얼굴을 보며 허허 웃었다.


오후 1시를 넘어서자, 지체없이 사직으로 향했다. 야구장 근처에서 밥 먹고, 선수들 출근길도 챙겨 들어가기 위함이었다. 맛집은 사직에서 오랜 세월 나고 자란, 전에 다니던 회사 선배를 통해 급구했다. 서면역에서부터 여러 갈래의 유니폼 무리를 만날 수 있었다. 사직역에서 내릴 때는 유니폼 안 입은 사람을 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홈팀인 롯데를 시작으로 기아와 삼성 유니폼을 입은 젊은이들이 거리를 수놓고 있었다. 부산에서 가장 가까운 홈구장을 가진 NC팬들은 생각보다 보기가 어려웠다. '역시 뒤늦게 창단한, 프로야구의 9번째 심장이라 그런가' 하면서도 아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다.


얼른 식당 가서 밥 먹고, 유니폼으로 환복해야겠다고 다짐하며 야구장 앞 횡단보도를 건널 때였다. 20대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손을 내밀며 '와락' 나에게로 뛰어들었다. '무슨 일이지?' 순간 머리로 백만 개의 물음표가 지나갔다. 그 여성은 나에게 "저기요"라고 했던가 "옷"이라고 했던가 아무튼 다급한 목소리로 말하며 손으로 내 가슴께를 가렸는데… 알고 보니 그때껏 입고 있던 내 빈티지 블라우스의 단추가 위로부터 하나, 둘까지 다 열려 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소싯적 청소년들이 옥상에서 바락바락 고함지르는 컨셉으로 유명했던 예능 프로그램 '영파워 가슴을 열어라' 마냥 가슴을 시원하게 열고 사람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사직 근처를 배회했던 모양이다. 일부러는 절대 아니었고, 오래된 블라우스의 단추가 항상 헐거웠는데 그것이 기어이 사고를 친 모양이었다. 너무 당황한 한편으로, 나를 걱정하는 그 여성의 눈빛이 너무나도 따수버서 순간 당황한 마음과 따수운 마음이 물과 기름 마냥 분리돼 내 가슴을 떠다녔다. 황급히 앞섶을 추스르고, 그 분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잰 걸음으로 자리를 떴다.


고심 끝 고른 점심 메뉴는 선배의 강추대로 낙곱새였다. '오륙도낙지'라는 이름의 식당이었는데, '사직야구장 맛집'으로 이름난 곳 답게 색색의 유니폼들이 앉아 식사를 하고 있었다. 낙곱새가 1인분에 만원 밖에 하지 않았다. 2인분에 공기밥도 2개를 시켜 야무지게 싹싹 비벼 먹었다. 전골 마냥 국물도 자작하고, 양념도 간이 세지 않아서 속에 부담이 없었다.


3시에 가까워 야구장에 도착했더니, 야구장 앞은 여러 갈래의 줄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올스타 굿즈샵에 들어가려는 사람들, 경기 전 이벤트에 참여하려는 줄, 경기장 입장을 기다리는 줄 등 목적도 가지각색이었다. 우리는 유니폼으로 환복한 김에 구장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나는 내가 갖고 있는 여러 NC 에디션 중, 가장 새 것(불과 며칠 전에 배송돼 온) 도구리 컬렉션을 입었다. 오늘을 위해 별러서 가져온 아이템이다. 도구리 유니폼은 네온에 가까운 핑크에 뒷면엔 너구리를 닮은 도구리 캐릭터가 큼지막하게 그려진, '저게 프로야구팀 유니폼이야?' 싶은 유니폼이다. 마킹은 59번 구창모. '최애'인 손아섭과 이용찬 유니폼은 이미 하나씩 갖고 있기 때문에, 다년 계약으로 NC에 가장 오래 남아 있을 투수인 구창모를 마킹했었다. 부상이 이어지며 경기장에서 얼굴을 통 볼 수 없는 게 아쉽고, '유리몸'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게 더욱 마음 아픈 선수… '유리몸'이나 '구크다스' 같은 지칭이 직관적이라곤 하더라도, 사람의 몸을 두고 함부로 그런 호명을 해선 안 되는 것 아니냐고 '구창모' 유니폼을 입은 NC 팬의 한 사람으로서, 언론계에 부르짖고 싶어졌다.


올스타전 굿즈샵은 줄이 너무 길어 감히 입장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어느 갈래의 줄에라도 편승을 해야할 것만 같은 혼란 속에서 침착하게 3루쪽 응원석으로 입장하는 줄을 찾아냈다. 선수 출근길 등은 여러 NC팬들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보니 이미 끝난 거 같아서 포기한 지 오래였다. 초등학생 때 아빠와 함께 사직을 찾았다던 Y의 기억 속과 달리, 사직 구장은 오랜 전통이 느껴지는 외관과 달리 내부는 쾌적했다. 짙은 초록빛 의자가 우릴 반겼는데, 잠실처럼 아래로 꺼지지도 않은 불펜이 바로 시야 앞에 보여서 신기했다. 3루는 나눔팀(한화, LG, 키움, NC, KIA) 응원석이었는데 여기서는 NC팬들이 많이 보여 적이 반가웠다.


야구장 안에서는 사전 행사로 팬사인회가 진행 중인 가운데 비가 오다말다를 계속 했다. 나와 Y도 우산을 폈다 껐다를 계속 했다. 설마 이러다 우취(우천취소)가 되는 건 아니겠지? 저 멀리서 거대 파라솔을 든 NC의 김주원이 여러 프레스들에 둘러싸여 질문 세례를 받고 있었다. 사인회 탁자에 앉아 팬들을 맞이하는 키움의 이정후 주위에도 기자들이 많았다. '광저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유격수, 진격의 스위치 히터인 우리 주원이한테 관심이 집중되는구나' 싶어 어깨가 으쓱하면서도, 팬사인회 행사에서까지 중간중간 기자들이 접근해 질문을 하는 건, 팬들과의 소통에 방해가 되겠다 싶어 못마땅해졌다. 질문은 사인회가 끝난 후에 해도 될 것이고, 적어도 팬사인회는 프레스를 위한 시간은 아니다. 멀리서 '워크에식 논란'으로 최근 2군에서 뛰고 있는 우리의 3번 타자 박건우가 보였다. 박건우가 '최애'인 Y는 그를 보러 오기도 한 길이었다. 1군에서는 볼 수 없는데 올스타전에서는 볼 수 있는 선수인 그를 보자 나도 심경이 복잡해졌다. 


비가 내리는 가운데, 끈덕지게 자리에 앉아 기다렸다. 신새벽부터 시작된 강행군에 지친 탓인지, 어느새 Y는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나는 셀카를 찍으며 부지런히 졸음을 좇았다. 사인회에 이어서는 어린이 팬과 가족들이 선수들, 구단 마스코트와 함께 달리는 '썸머 레이스'가 있었다. 운동회에서 자주 보던 장애물 달리기인데, 장애물이라는 변수에도 끝끝내 꼴찌를 하던 내게는 뒷맛이 좋지 않은 종목이었다. 그런데 참가자가 아니라 관중으로 보니, 이게 은근 재미가 있었다. 낙하산 레이스, 점핑 디딤돌, 오뚝이 허들 등 총 6개의 장애물 코스를 통과하는데 어린이들이 뛰다가 넘어져 시무룩해하거나, 그 운동신경 좋은 선수들이 미끄럼틀 앞에서 허둥대는 모습에 파안대소가 터져나왔다. NC에서는 페디가 낙하산 레이스를, 김주원이 미끄럼틀을 담당했는데 김주원의 막판 뒷심이 다소 아쉬웠다. 토너먼트 승부 끝 홈팀인 롯데가 우승을 거머쥐었다.


우중 팬사인회 개최 현장.

 

그리고 6시가 되어, 올스타전이 시작되었다. 날은 차츰 개어, 6시가 되어서는 비구름은 싹 몰려간 듯 보였다. 나눔팀 응원단장은 NC의 이범형 단장이었다. NC의 라인업송으로, 나눔팀의 응원은 시작되었다. "NC 다이노스 승리를 위해~ 오오오오 오오오~"로 시작하는 라인업송은 팀의 1~9번 타자들과 선발투수를 호명한다. 늘 부르던 '1번타자 손아섭' 대신 이번엔 '1번타자 김혜성'이었다. 2번타자는 '바람의 손자' 이정후고, 3번타자는 '올스타 홈런레이스 1등' 채은성, 4번타자는 1500타점의 최형우… 선발투수는 무려 '대투수' 양현종! 원정 응원 가서 상대 팀으로 만났을 때 오금이 저렸던 선수들이 우리 팀일 때 오는 안온함이 순간 나를 감쌌다. 물론 1번타자는 김혜성보다 손아섭이고, 7번 박건우와 9번 김주원이 더 반가웠지만… 이 라인업 그대로 우리 팀이면 진짜 한국시리즈를 씹어먹겠다 하는 전율이 나를 휘몰아쳤다.


1회 말, 나눔의 공격이 시작됐다. 이범형 단장의 진두지휘 하에 각 타자들의 등장곡과 응원가를 불렀다. 김혜성과 이정후는 내가 올시즌만 도합 세 번을 갔던 고척돔의 선수들이므로, 응원가가 귀에 살풋 익었겠지 싶긴 했지만 막상 노래가 나오자 생각보다도 더 잘 따라부르는 내가 있어 스스로에게 놀랐다. "김혜성! 히어로즈 김혜성~", "안타! 안타! 날려버려라~ 키움 히어로 이! 정! 후!" 무릎 반사 마냥 머리를 거치지 않고 혀에서 나오는 노랫 가락이었다. 5번 타자 소크라테스가 나왔을 때는 흥이 절정에 달했다. "뚜루뚜뚜~ 뚜뚜루뚜뚜~" 하는 트럼펫 소리가 울려퍼지자마자 나도 모르게 손이 'ㅅ' 모양을 만들고 목은 터져라 "타이거즈~ 소크라테스~"를 불렀다. 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는 기아팬들의 시뻘건 기세와 함께 공포 그 자체였던 노래였는데, 실제 내 입으로 불러보니 덩실덩실 흥겹기 짝이 없었다. '나 소크라테스 응원가 부르고 싶었네?' 하는 생각이 스치는 순간 Y와 눈이 마주쳤다. 함께 어깨동무하며 웃었다. 이 때 1회초 피칭을 마친 양현종이 마운드가 아닌 응원 단상에 올라 소크라테스 응원가에 맞춰 트럼펫을 불었다. '저것이 대투수의 품격이로구나' 하며 열심인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사실 이날 누가 홈런을 쳤고 삼진을 잡았고 하는 것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타석에 들어설 때 긴 머리를 하고 나온다든가(삼성 구자욱), 블랙핑크의 제니 춤을 춘다든가(롯데 김민석) 하는 올스타전 특유의 퍼포먼스도 있었지만 그것도 관심 밖이었다. 줄곧 내 시선은 응원 단상에 오른 이범형 단장과 나눔팀 소속 각 구단의 치어리더들을 향해 있었고, 그들을 따라 나눔팀 타자들 응원가를 율동 맞춰 열심히 불렀다. 경기장에 갈 때마다 느꼈던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과는 판이한, 알고 보니 '위 아 더 월드'였다는 동질감으로 한껏 솟았던 승모근이 느슨하게 가라앉는 이완의 현장이었다. 지독히도 승부의 세계를 좋아해서, '올스타전은 대체 무슨 재밀까' 하며 반신반의하던 마음이 쏙 들어갔다. 올스타전은 가히, 이런 재미였다. 


각양각색 유니폼이 뒤섞인 나눔팀 응원석.


기억에 남는 홈런이나 삼진은 없지만, 단 하나 기억에 남는 안타는 있다. 9회 2사 1, 3루에서 타석에 등장한 삼성의 투수 뷰캐넌이 친 안타다. 상대는 나눔의 마무리 고우석이었고, 시속 150㎞ 강속구를 뿌렸으나 뷰캐넌이 이를 기다렸다는듯 받아쳐 시원한 중전 안타를 날렸다. 3루 주자 김상수의 홈인으로 이어져 타점까지 얻은 소중한 안타였다. 이날 뷰캐넌은 드림팀의 3루 주루코치이자 우익수이자 타자이자, '하입 보이'를 기깔나게 추는 댄서이자 탑건(그는 클리닝 타임 때 미국 공군 파일럿 코스프레를 했다)이었다. 베스트 퍼포먼스상을 못 탄 것으로 말이 나올 만한, 전천후 활약이었다.


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위 아 더 월드' 기조는 더욱 강화됐다. 나눔팀 응원석에서 상대 드림팀의 피렐라 응원가도 울려퍼질 수준이었다. 나중 가서는 경기 자체는 10개 구단 선수들의 응원가를 부르기 위한 빌미 정도로 느껴졌다. 경기는 4-8 나눔팀의 승리로 끝났는데, 마지막 이닝인 9회초가 되자 야수들이 일부러 에러라도 했으면 싶어졌다. 이대로 경기가 끝나면 아쉬우니까. 우리들의 노래는 계속돼야 하니까. 


경기가 끝나고 사직의 밤하늘에 폭죽이 펑펑 터졌다. '돌아와요~ 부산항에~' 하는 구슬픈 곡조와 함께. '꽃피~는~ 동백섬에~'가 느릿느릿 '펑~펑~'하는 폭죽 장단에 맞춰 울려퍼지자 온 세상이 슬로모션이 걸린 듯 0.8배로 재생되는 듯 했다. 오늘을, 이 밤을 평생 잘 잊지 못하겠구나. 올스타전은 올스타전대로, 그런 의미가 있구나. 앞으로는 NC와 붙는 상대팀 선수들을 봐도 이전처럼 도깨비로는(?) 안 보이겠구나, 하는.


돌아와요~ 부산항에~


구장 근처에서 깃발을 흔들며 돌림노래처럼 응원가를 부르는 인파들을 헤치고, Y와 나는 근처 빵집으로 가 망고빙수를 하나 시켰다. 당을 보충하지 않고는, 숙소 찾아 움직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냉동 망고를 설컹설컹 씹으며, 올스타전이 의외로 매우 재미있었으며 안 왔으면 매우 후회할 뻔 했으며 표를 양도한 B님께 매우 감사하다는 얘기를 여러번 했다. B님도 B님이거니와, 서울에서 부산까지 꼭두새벽부터 이 부산한 여정을 함께한 Y가 있어 더욱 감사한 하루였다. 서른 중반인 우리에게 느닷없이 찾아온, 이 여름방학 같은 시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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