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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초이 Aug 17. 2021

의자의 예술 가능성

조셉 코수스, 알레산드로 멘디니, 르 코르뷔지에

기지개를 켜고 하루를 시작할 때, 다른 자리로 이동하거나 활동하는 순간을 제외한다면 눈꺼풀이 다시 내려앉는 순간까지 우리는 쉬고, 먹고, 배설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모양뿐만 아니라 기능을 두루 갖춘 의자 위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지요. 


의자는 하루 24시간 중 상당 부분을 우리와 함께합니다. 정식 의학용어까지는 아니지만 ‘의자병’이라는 단어가 생긴 것을 보며 인간은 과거보다 의자에 앉아있는 빈도가 확실히 늘었습니다. 출근길 자가용 혹은 대중교통에서도 의자와 상관되어 있고 창작 혹은 업무 시에도 의자와 밀접해 있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의자와 밀접한 관계를 맺습니다. 


의자만큼 사람의 정체성에 영향을 미치는 가구를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의자는 과거 권력의 상징이기도 했고 모양과 형태에 따라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심지어 작품 속 의자가 놓인 방향까지 갖은 뜻을 파악하려고 합니다.


일상생활과 긴밀하게 얽히고설킨 관계는 예술적 관점에서도 특히나 매력적인 듯합니다.

예술가들에게 의자란 심미적, 기능적일 뿐만 아니라 의자가 주는 전달력, 대중성도 갖고 있으므로 다양한 실험적인 시도를 하게 됩니다.     



<하나이면서 셋인 의자>, 1965 / 조셉 코수스


 

<하나이면서 셋인 의자>는 뒤샹의 영향을 받은 미국의 개념미술가 조셉 코수스의 작품입니다. 여기에는 실제 의자, 실물 크기의 의자 사진, 의자의 사전적 정의가 적힌 종이. 이렇게 세 가지를 놓고 관객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의자’는 무엇인지 말입니다. 실물 일지, 재현된 사진일지, 정의 일지를요. 


사물(의자), 이미지(사진), 정의(개념)는 뒤샹으로 인해 한 차례 균열하여 있던 기존 미술 개념을 전복시켰습니다. 작품을 직접 만나고(사물) 시각적으로 판단하고(사진) 그 작품을 감상(개념)하는 것. ‘예술이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하는 조셉 코수스로 하여금 의자 하나로 세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하나이면서 셋인 의자>는 어떤 의미로든 자기 생각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술가들은 왜 의자의 기능을 배제한 앉을 수 없는 의자를 만들기도 하는 걸까요? 2015년도 DDP(동대문 디자인플라자)에서 개최한 <알레산드로 멘디니 – 디자인으로 쓴 시> 전시회에서 작가의 작품을 관람할 때 작품들 속에 작은 의자부터 큰 의자까지 만났던 기억이 납니다.     



좌 - <Lassù(Up there Chair) 저 위>, 27x27x35cm, 1983 / 알레산드로 멘디니 / 우- <프루스트 의자> 시리즈, 300x300x300cm, 2002 / 알레산드로 멘디니     



작은 크기부터 큰 크기까지 한 사람의 손을 거친 기능이 배제된 의자, 건축가이자 디자이너인 알레산드로 멘디니의 <저 위>와 <프루스트 의자> 시리즈인데요. <저 위>는 가장 단순한 모양의 의자를 피라미드 위에 배치해 권위를 가지고 군림하는 이들을 비판하려는데 비롯되어 만들어진 작품입니다. 


<푸르스트 의자>는 시리즈로 많이 파생된 작품이지만 <알레산드로 멘디니 – 디자인으로 쓴 시>에서 만나 본 카르티에 재단 소장품인 이 의자는 3m의 크기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기능에 최적화된 크기를 가지고 있는 사물에 반대되는 변화를 주게 되면 사물은 낯설어집니다. 사물의 기능이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임에도 사람들의 관심을 받게 됩니다. 상식의 반대는 기존의 질서를 전복시키기 때문입니다.           


예술가들이 시도하고 경험하는 실험은 더는 새로운 경향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의자는 예술가들의 많은 소재 중 일부가 되었고요. 

작가들은 의자를 부수거나 쓰러뜨렸고, 앉기 불가능한 재료와 크기로 의자의 개념을 전혀 다른 맥락으로 바꿔놓기도 했습니다.

의자는 자신의 환경에 가장 밀착한, 자신의 세계를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이상적인 매체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건축가들이 만든 의자 또한 이제 생소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의자 역사에 건축가의 이름을 제외한다면 미술 근현대사 한 장을 같이 제외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겁니다.     



“미술과 건축의 차이를 말하자면 뒤샹이 어느 인터뷰에서 얘기한 것처럼 배관이 있고 없고의 차이지요. 건축은 배관이 있는 조각입니다.”

-조셉 코수스(ⓐ)     

<LC3>, 1928 / 르 코르뷔지에


우리가 알고 있는 스티브 잡스 또한 건축가의 의자를 사랑했습니다. 목을 덮는 검은색 티셔츠, 청바지, 회색 993 신발, 그리고 LC3. 이것들을 조합해 보면 자연스레 스티브 잡스가 떠오릅니다. ‘스티브 잡스 의자’라고 인터넷에 검색하면 스티브 잡스가 프레젠테이션 무대 위에서 LC3에 앉아 아이패드 시연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LC3는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 스튜디오에서 근무했던 건축가 샬로트 페리앙, 사촌 피에르 자네레와 함께 디자인한 것입니다. 사각의 형태를 구성하고 있는 의자의 강철관이 군더더기 없이 모양을 잡아주고 있습니다. 


최소한의 디자인으로 깔끔함을 추구하는 스티브 잡스 디자인 철학과 왠지 모르게 어울리는 의자이지요. LC3 의자는 스티브 잡스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사물 중 하나로 자리 잡았습니다.     



사물이란 본연의 기능 외에도 예술가의 개념과 철학을, 그리고 정체성을 대표하는 의미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현대 건축을 뒤바꿔 놓은 ‘르 코르뷔지에가 디자인한 의자’라는 수식어보다 ‘스티브 잡스 의자’라고 불리는 게 예외적으로 흥미로운 대목입니다. 

의자뿐만 아니라 생활 곳곳에서 예술의 재료가 되는 사물과 개념들. 의자가 주는 예술 가능성은 우리에게 어떤 즐거움을 줄지 앞으로도 기대가 됩니다.




ⓐ 조셉 코수스 인터뷰 본문 발췌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3616772

위 본문은 예술 플랫폼 아트렉처에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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