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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초이 Sep 14. 2021

해골을 예찬하라

담배를 문 해골과 프랑스 대사들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오고 있습니다. 숨 쉬는 것만으로도 나의 존재가 신기해 가끔 숨을 참을 수 있을 만큼 참아 죽을 수 있는지 성공하지 못할 시험을 해 보기도 합니다. 죽음이 어디까지 닿을 수 있을지, 억누를 수 있을 만큼의 본능의 욕조에 빠지게 되면 점차 많은 생각이 듭니다. 

생각들은 뇌로부터 바로 톡, 톡 터지는 바람에 수면에 뇌가 잠기긴커녕 헐떡거리며 깊은숨을 토해냅니다. 우리는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지 전혀 예측하지 못하는 지금, 숨을 쉬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죽음에 대해 얼마나 생각을 하게 될까요? 저는 죽음에 대해 고민한 적이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떠오른 건 해골, 피 따위와 같은 직접적인 잔상들이었습니다. 온갖 상상이 난무하는 형상들. 팽창하고 쪼그라들며 토해내거나 혹은 삼켜내고 이지러지고 기우는 부정적인 시각들.


예술가들은 죽음을 포착하여 하나의 정물화로 길이 남겼습니다. 죽음은 언제까지나 시각화될 수 없겠지만 우리는 구체적인 물체들로 하여금 추정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과거의 인간들은 오랫동안 전쟁으로 하여금 사람이 죽어 천국으로 가는 것만이 길이 아님을 깨닫게 되고 그 덧없음과 허무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죽은 인간의 몸은 썩어 뼈만 남는 참상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삶의 덧없음을 많은 이들이 느끼게 되고 예술로 승화합니다.


17세기 네덜란드와 플랑드르 지역에서 바니타스(Vanitas)라는 정물화의 한 장르가 피터르 클라스로 하여금 유행하기 시작합니다. 특히 중세 말에는 흑사병, 종교 전쟁과 같은 인간에게 잔혹하리만치 잔혹한 비극적인 일들이 많았기에 죽음은 삶을 표현하는 한 장르인 예술에서도 빠지지 않고 등장했습니다. 

바니타스에는 해골, 촛불, 꽃과 같은 정물이 특징입니다. 오늘은 기이하게도 해골의 예찬을 시작할 것인데요. 예술가들은 생로병사와 같은 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고찰을 하게 되는데 그로 인해 자주 등장하게 된 정물이 해골입니다. 

해골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렇게 무거운 의미를 가진 직관적인 해골은 20세기 들어서 문화 현상으로 활용되기 시작합니다. 하나의 패션, 하나의 기호로 말입니다.



<담배를 문 해골>, 32.5x24cm, 1885 / 빈센트 반 고흐

반 고흐도 해골 자화상을 그렸습니다. 타는 담배를 문 해골을 말입니다. 반 고흐가 십 대 시절부터 흡연을 시작해 동생 테오에게도 담배를 권유할 만큼 담배 애호가였습니다. 담배를 문 반 고흐의 자화상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타는 담배를 문 해골>은 담배와 죽음의 이미지를 결합시킨 어둡고 무거운 작품이라는 해석이 존재합니다. 나는 <타는 담배를 문 해골>을 볼 때 유쾌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침 전자의 해석에 동의할 수 없던 나는 후자의 해석Ⓐ을 보고 이것이 나의 마음에 더 다가왔습니다.


반 고흐는 한 때 안트베르펜의 왕립 미술 아카데미를 다닌 적이 있습니다. 안트베르펜에서 인체 소묘 수업 중 해골 소묘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 그리게 된 것 같다는 말을요. 아카데미 교육은 워낙 보수적이라 반 고흐에게는 그러한 교육이 지루할 뿐만 아니라 배울 게 없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이런 생각을 자화상처럼 풍자적으로 담아냈을 테고요. 죽은 해골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물체로 남게 되지만 반 고흐의 작품에서는 담배도 물고 어찌 여유로운 표정도 엿보이는 듯합니다. 해골이 진짜 살아있는 사람처럼 행동해봤자 살아있는 사람이 될 수 없는 것처럼, 아카데미 교육도 결국 덧없는 것이 되고 말 거라는 의미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합니다.



<프랑스 대사들>, 207x209.5cm, 1533 / 한스 홀바인

해골 정물화는 인터넷에 검색만 해도 무수히 쏟아져 내리는 소재입니다. 그중 아주 친숙한 한스 홀바인의 <프랑스 대사들>을 여지없이 빼놓을 수 없었습니다. 

이는 해골을 자신의 작품에 그려놓은 방식이 흥미롭기 때문인데요. 한스 홀바인의 작품은 아주 세밀한 필치로 소품과 인물 등이 묘사되어 있기 때문에 구글 아트에서 확대를 해 보아도 선명하게 질감 등이 도드라집니다. 

게다가 당시 시대적 상황을 추측할 수 있게 하는 많은 장치들이 있어 소품 하나하나를 찬찬히 뜯어보며 즐길 수 있는 작품입니다. 한스 홀바인이 살았던 르네상스 시대는 예술뿐만 아니라 문학, 항해술, 과학 등이 발전했습니다. 



<프랑스 대사들>, 207x209.5cm, 1533 / 한스 홀바인

해골만 놓고 보자면 작품 중앙에 그려진 기괴한 각도가 잘못 그려진 것은 아닌지 의아하기 마련입니다. 이 해골만 심하게 왜곡되어 일그러져 있어 무엇인지 분간을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 해골은 정면에서 보는 것이 아니라 옆에서 비스듬하게 바라보아야 정확한 해골의 형태를 보여주는데요. 

그 당시 유럽은 뛰어난 광학 기술을 선보였습니다. 기술은 자연스럽게 예술에도 녹아내렸고 그렇게 상을 왜곡시켜 그린 초상화가 유행하게 됩니다. <프랑스 대사들>에서는 그러한 시대 상을 담아냈을 뿐만 아니라 유희와 지식과 기술을 과시하는 역할을 겸하게 된 것입니다Ⓑ.



해골은 인간이 죽고 남기는 유일한 신체의 일부이기에 그 존재가 무섭고 섬뜩하게 다가오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과거와 다릅니다. 해골이 수 놓인 소품으로 자신을 치장하거나 신체의 일부에 새기는 타투 마저 상당수가 해골을 차지합니다. 브랜드 상표들도 해골을 소재로 다양한 상품으로 이득을 얻고 있습니다. 

예술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해골 스카프를 두르든, 해골에 다이아몬드를 박든 어쨌든 간에 해골은 지금, 하나의 인기 있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예술가들에게 해골은 무한한 창의적인 영감을 줍니다. 

인간의 희로애락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다 보면 우리의 끝은 항상 죽음이었습니다. 

죽음은 남녀노소 모든 조건, 제한에 전혀 굴하지 않고 어떤 방법으로든 찾아옵니다. 

우리는 뼈를 가지고 태어나 유일하게 뼈 만을 남기고 흙이 됩니다. 

우리는 뼈가 되었을 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죽음을 피하지 말고 삶을 예찬하며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죽음은 언젠가, 반드시 오게 되니까요.



Ⓐ 출처 https://gallery.v.kakao.com/p/premium/art6/AnRk7tQ7hn 

Ⓑ 출처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74966&cid=46720&categoryId=46801

위 본문은 예술 플랫폼 아트렉처에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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