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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초이 Oct 14. 2021

우리가 사는 이 세상, 관계 예술

이불 <히드라>, 리크리트 티라바니자 <무제(무료/여전히)>

우리 모두 각자의 세계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사소한 대화와 중요한 회의 사이의 다른 점은 없습니다. 누구를 만나고 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테니까요. 


생애 얼마나 많은 관계를 맺는 그 수치는 재단할 수 없고 바람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순리와도 같았습니다. 모든 영역에서 접하는 관계는 무의식 중에 행해져 인지하지 못할 때가 많지만 관계를 의식하면 흥분과 설렘의 연속성을 느끼기도 합니다. 새로운 환경 속으로 진입하는 짜릿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경험이겠지요. 우리는 평범한 일상의 관계에 대해서 깊이 관여하는 편은 아니지만, 예술은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예술은 고유의 세계를 통해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의미를 전달할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됩니다. 사람과 사람이 모여 만나는 지점인 예술. 우리가 서로를 만나지 않는 행성에 살고 있었다면 예술은 의미 자체가 없어져 영영 알 수 없게 되었을 겁니다.


사람은 다른 사람과 공존하고 경험을 공유해 상호작용함으로써 사회를 구성해 왔습니다.     

예술도 마찬가지입니다. 미술관 혹은 갤러리와 같은 관객과 만나는 장에서 작품을 감상하게 하고 때론 작품에 참여할 수 있게 유도하고 그렇게 일부가 됩니다.


벽에 걸려있는 그림 혹은 바닥에 놓여 있는 조각을 조용히 바라보는 것도 일부가 되지만, 최근에는 음식을 나누어 먹고, 작품을 만지고 함께 그리며 작품을 완성하게 합니다.


이렇게 작품과 관계되는 예술은 프랑스 큐레이터인 니콜라 부리요가 1996년에 제시한 용어로 1998년 <관계 미학>이라는 책을 출판했습니다. 니콜라 부리요는 큐레이터이기도 하지만 미술평론가로서 전 세계에 수많은 전시회와 비엔날레를 기획했습니다. 이와 동시에 이론적인 작업을 수행하면서 현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유럽의 큐레이터로 자리 잡았습니다. 특히 1996년 <Traffic> 전시를 기획하면서 작가들의 작업을 설명하고자 “관계 예술”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관계 예술은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관객이 참여하고 관계되는 그 순간 작품이 완성되는 순간들은 주최자와 참여자 모두에게 즐거운 경험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새로운 미술 역사에 한 걸음 내딛는 발돋움과도 같을 겁니다.



<히드라>, 1000x700cm, 1996/2021 / 이불 / 사진 : 홍철기 –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2021년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이불 작가의 개인전 <이불-시작> 전시가 있었습니다. 프레스 투어에서 참석자들이 펌프를 밟아 공기를 주입해 조각을 완성하는 <히드라> 작품이 관계 예술을 생각하게 했는데요. 개막 당시 작품은 힘없이 푹 꺼져있는 상태였으며 관객들이 펌프질해야 작품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전시 담당자의 설명이 따르면 관객들이 적어도 4만 번 이상 발로 펌프질을 해야 작품이 직립한다고 합니다. <히드라> 작품은 전시 10여 일 후에 우뚝 솟아날 수 있었습니다. 


“관객의 반응이 작품의 프로세스에서 작동하며 ‘함께 만들어 가는’ 성격은 이불 퍼포먼스에서 주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전시가 지속하면서 관객의 참여로 점점 부풀어 오르는 작품의 모습은 유머러스하게 다가오며, 퍼블릭 공간에서 관객이 함께 ‘기념비’를 세우는 공공미술 같은 경험을 제공합니다.”

-서울 시립 미술관(ⓐ) 



<무제(무료/여전히)>, 2011, 음식 대접 프로젝트 / 리크리트 티라바니자

 

관계 예술은 관객의 절대적 참여로 형태를 비로소 완전히 취하게 됩니다. 그들이 없으면 작품의 의의도 없고 작품이 없으면 그들이 참여할 수 없게 되지요. 과거와는 달리 보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만나고 소통하며 완성되는 것들이 우리의 흥미를 더욱 이끌게 하는 주요한 요소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리크리트 티라바니자 작가는 갤러리 일부에 부엌을 설치해 관객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작품을 진행했습니다. 태국 전통 음식을 방문객에게 나누어 주면서 어느덧 공간에 함께하는 일종의 정거장이 되어 소통을 만들게 했습니다. 음식을 접대하는 것이 예술이라 말하기 모호할 정도의 아주 평범한 일상이기 때문에 리크리트 티라바니자만의 고유한 작품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태국 전통 음식을 맛보며 참여한 관객들은 이 자체를 예술로 인식하게 시작했습니다.     


“2년 뒤 첼시의 303 갤러리 전시 <공짜 Free>에서는 팟타이 대신 그린 카레가 등장했다. 제대로 된 냉장고와 간이 주방, 주문을 받는 테이블까지 갖춘 전시는 95년 같은 장소에서 <여전히 Still>이라는 명칭의 앙코르 전시로까지 이어졌다. ‘여전히’ 음식은 무료로 제공되었다.

- 이지은 <감각의 미술관>     




1990년 뉴욕 폴라 알랜 화랑에서 리크리트 티라바니자의 첫 개인전 <팟타이>에서 처음 시작된 음식 접대 시리즈는 그야말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딱딱할 것만 같은 전시회장에서 예술가가 요리하는 음식을 먹는다니 상식 밖의 행위 같지만, 관객들은 환호했습니다. 엄숙한 미술관의 분위기에 벗어나 함께 요리를 먹고 대화하는 촉매제가 되었으니까요.      


비물질적 만남이 관계를 만드는 방식에 미학적으로 받아들여져 예술이 되는 만큼 이제는 형태로 예술의 가치를 운운하는 것이 과거와 다르게 받아들여집니다. 특히나 코로나 19로 인한 비대면 시대에서 관계 예술은 가뭄에 내리는 단비와 같은 촉매제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사회에 유기적으로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두운 시간이 지나고 수많은 사람과 다시금 관계할 수 있는 거리와 공간 등이 모두의 곁으로 돌아오기만을 바랍니다.     




ⓐ 출처 https://www.khan.co.kr/allthatart/art_view.html?art_id=202103262136001

위 본문은 예술 플랫폼 아트렉처에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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