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을 사랑하고 배움을 갈망하고 우울함에 시달리기 때문에
지친 하루를 보내고 자신이 온전히 사랑하는 것을 좇는 시간. 나지막한 오후, 햇살을 차근히 받아들이며 이 또한 예술이라 찬양할 때 우리는 비로소 감정의 곳곳을 탐닉하게 됩니다. 나를 떠나는 시간, 다른 세상으로 여행할 수 있는 시간. 그 많은 순간 중 가장 우리를 빛낼 수 있는 곳은 바로 책을 읽는 행위가 아닐지 생각해 봅니다. 사색에 잠길 때, 마음이 지칠 때, 배움을 갈망할 때 바로 손에 잡히는 하나의 책이 나의 양식과 마음이 되어 단단한 토양이 되어줍니다.
“첫눈에 반한 사람을 두고 그냥 지나쳐 가거나 전혀 다른 사람을 좋아하려고 노력한다면 정말 이상하지 않을까? 책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좋은 책은 무궁무진하고 우리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읽기 싫은 책, 지금 나의 흥미를 끌지 않는 책을 억지로 읽으려 하지 말고 마음이 끌리는 책을 먼저 읽어라.”
<독서는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의 저자 사이토 다카시는 책 1권을 재미있게 읽어야 100권을 읽을 수 있다 했습니다. 책을 읽지 않으시는 분들이라면 추천 도서에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닌 ‘자신’이 끌리는 책부터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는 마음가짐으로 1년 100권 독서 목표를 정했고 현재도 진행형입니다. 감사(?)하게도 몇 년째 그 목표는 유지 중이고 살아 숨 쉬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한 이 목표는 계속될 것입니다.
나 역시 처음부터 책과 사랑에 빠지진 않았습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압박감과 이해하지 못했던 그들의 세계. 그 세계 속에 나라는 존재는 없다고만 생각했죠. 게다가 어렵기만 한 난해한 문장들.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그 순간들조차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내가 어느 순간, 몇 해 전부터 다독가가 된 이유는 명확히 다가왔습니다.
예술을 사랑했기 때문에, 배움을 갈망했기 때문에, 그리고 우울함에 시달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우울했기에 삶을 살고 찾고자 책을 집어 들었고 세상 배우지 못한 다양한 지식을 알고 싶기에 책을 펼쳤으며 예술을 사랑했기에 어느 순간 나를 돌아보니 이렇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렇듯 사랑하는 순간을 발견하게 되면 종류와 장르를 가리지 않고 그날의 기분에 따라 문학을 파헤치게 되는데, 언젠가는 로맨스 소설을 읽다가도 또 다른 날엔 하드보일드 소설에 빠져있게 된 나를 봤습니다. 고전을 읽다가 신작 수필을 읽기도 하고요.
반 고흐는 독서를 무척 사랑했다고 하죠. 반 고흐는 생전 남긴 편지 또한 유명한데 일부 지인들에게 쓴 편지에 200여 권이 넘는 책을 언급했다고 합니다. 책을 진정으로 사랑할 뿐만 아니라 문학의 감흥을 작품 동기로도 삼았습니다. 물론 모든 예술가가 책을 사랑한 것은 아닙니다. 피카소와 뒤샹 등은 책과 완전한 담을 쌓고 지냈다고도 하니까요.
문학을 담는 그릇 책 역시 그렇게 예술이 되었습니다. 사람의 감정을 흔드는 힘. 문학에 몰입하여 공유하게 되는 또 다른 현실 등이 우리의 삶과 매우 밀착해 있습니다.
책은 종종 부연설명을 위해 삽화를 넣습니다. 어릴 때 읽던 판타지 책의 삽화를 보고 나만의 세계로 삽화들을 옮겨와 얼마나 많은 상상의 나래를 펼쳤는지 모르겠습니다.
친구 집에 놀러 갔을 때 책장에 걸려있던, 책을 펼치면 그림이 툭 튀어나오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팝업 북은 어린 시절 충격이었고 이내 팝업 북을 갖고 싶어서 친구 책을 훔치는 망상까지 했었습니다.
나의 어린 시절 탐을 그렇게 냈던 로버트 사부다의 팝업 북은 몇 년이 걸릴 정도로 제작이 길고 까다롭습니다. 수작업으로 이루어지기도 하고 공정과정이 복잡하기 때문인데요. 이로 인해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지만, 독자들은 오랜 시간을 기다리더라도 소장하길 원합니다.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삽화들, 그림이 입체로 변하는 팝업 북, 재빠른 추세를 잡아넣은 잡지 등. 이쯤이면 전적으로 책은 예술과 필연이 된 것 같습니다. 특히 북아트(Book art)는 그사이를 연결하는 직접적 통로가 되지 않을까요.
팝업 아트(Pop-up Art)란 평면 상태의 종이 혹은 조형물이 펼치거나 당기면 원래 형태에서 입체로 재구성되는 예술이며 팝업 북이 대표적 장르 중 하나입니다.
팝업 북, 북아트의 시작은 중세로부터 시작되는데요. 일부 성직자를 제외하고 많은 사람이 문맹이었던 그 시절 종교의 이해와 확장 등을 위한 이유로 성서의 삽화가 북아트가 되기도 했고 점성술 분야에서 별자리에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판을 돌리는 형식으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20세기에 이르러 예술가들은 북아트에 관심을 가지며 다양한 북아트가 탄생합니다. 추상 주의, 초현실주의, 미래주의 같은 문학운동과의 조합은 모호하지만, 매력 있는 북아트로 표현되기도 했죠.
책 향수(Paper Passion)라는 ‘책 냄새’가 나는 향수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바로 책 향수(Book perfume). 매콤한 듯 막 인쇄한 책 냄새를 풍기는 이 향수는 인간의 몸에 뿌리는 것이 아닌 책에 뿌림으로써 책 향기가 다시 새롭게 나는 효과를 기대한다고 합니다. 작가의 느낌, 문학성에 맞춰 제작된 흥미로운 북 향수도 있을 정도로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많은 것 같습니다.
갓 인쇄된 책의 잉크 냄새가 세계 최고의 향수라는 게르하르트 슈타이들 또한 책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습니다.
게르하르트 슈타이들은 책 제작에 필수불가결 요소인 출판과 인쇄하는 과정을 예술의 형식으로 완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종이에 수놓은 듯 꿰어진 폰트의 아름다움, 손으로 만져 세상을 보게 하는 종이와 시각적 즐거움과 편안함을 제공하는 색채들까지, 이렇게 하나 된 예술을 바라보고 어루만지며 매일 밤 잠자리에 들고 싶습니다.
책은 예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소 로맨틱해 보이겠지만, 그것이야말로 시장에서 살아남는 가장 중요한 열쇠예요.
-게르하르트 슈타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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