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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취생 Nov 15. 2023

솜씨 좋은 목수의 연장에 관하여

공정하다는 착각

- 솜씨 좋은 목수의 연장 -


 속담 중에 '솜씨 좋은 목수는 연장을 탓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은 자신에게 적용하면 아주 좋은 속담이지만, 타인에게 적용하면 타인과 관계가 나빠지는 특징을 가진 속담이다. 그런데 이런 특징이 있음에도 이런 속담을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 자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바로 현재 내가 재직했었던, 그리고 현재 재직하고 있는 회사에서 꽤 영향력 있는 분들이다. 조직원이 현재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때 제약 사항에 대해 보고하면 그들은 종종 자신의 과거 성공담과 함께 솜씨 좋은 목수는 연장을 탓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 말을 하는 그들은 솜씨가 좋다.  좋은 연장을 가졌다고 누구나 솜씨 좋은 목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들의 솜씨를 인정한다. 다만 본인들의 솜씨 좋은 이유가 혹시 좋은 연장을 가졌기 때문은 아닌지 한 번쯤 되돌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할 뿐이다.  


 '솜씨 좋은 목수는 연장을 탓하지 않는다.'라 생각하는 사람들과 오래 교류해서 그런지 혹은 나도 원래 그런 사람인지 모르겠으나, 백수가 되기 전까지 나도 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내가 노력해서 들어갔다고 생각했던 회사를 그만두고 백수가 되어보니 나의 어리석음이 보였다. 지금까지 내가 이룬 모든 것은 나의 능력이 아니라 주변의 능력을 끌어와 이룬 것이 많았다. 모님의 경제적 지원과 주변 지인(친구, 형제, 동료)들의 도움(조언, 솔선수범) 없이는 지금의 나는 없었던 것이다. 난 왜 그런 착각을 하고 살았을까?   


-능력주의 그리고 성과주의-


 프랑스혁명 이후 개인으로서 자기를 확립하고 평등한 권리를 보유하기 위한 활동은 계속되어 왔다. 그 일환으로 능력주의 이념은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스며들었다. 과거 왕은 자신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종교를 가지고 왔다. 그리고 왕이 없어진 지금은 경제적 부를 가진 사람들이 돈을 가지고 와서 자신들의 권위를 높이고 있다. 그리고 왕이 자신의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활동했던 것처럼 부를 가진 사람들 또한 자신의 부를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했다. 그중 하나가 학력이다.


 마이클 센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하버드 입학생의 90%는 경제적으로 상류층 집안의 자제라고 한다. 사실 이런 결과는 국내도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미 뉴스와 신문에서 '개천에서 용 난다.'는 옛말이라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또한 샌델 교수는 책에서 해가 갈수록 자신들이 하버드에 입학한 것은 노력의 대가로 너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비율이 증가한다고 했다. 그들이 노력을 할 수 있는 환경도 그들의 노력 안에 포함되었다. 성과주의는 누군가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만들었다. 박탈감은 우리를 서로에게 잔인하도록 만들었다. 우리는 서로를 함께 상생하는 존재가 아닌 자신의 성과에 사용되는 부품으로 인식하게 된다.


 현재 능력주의는 성과주의와 유사하게 사용되고 있다. 능력주의는 1958년 <능력주의의 출현>이라는 풍자소설에서 처음 등장했다. 과거 왕권 중심의 사회에서 신분이나 계급의 세습이 아닌 개인의 능력과 노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를 분배해야 한다는 이념은 점점 '사회적 지위는 개인의 능력에 따라 분배되었다.'로 바뀌었다. 즉, 능력주의는 성과를 낸 사람은 그만한 능력이 있다고 인정하고 그런 능력이 있는 사람은 노력도 열심히 했다는 성과주의와 동일시된 것이다. 평등을 위해 만들어진 능력주의 이념은 성과주의로 변질되어 극단적인 차별을 만들었다. 성과를 낸 사람은 모든 것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들의 말은 도의적으로 옳지 않더라도 옳은 말처럼 사용되고 있다.


 고객사에서 근무할 때 협력사 제품의 품질이 좋지 않았고, 그들이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노력한다면 제품의 품질이 좋아질 텐데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협력사와 회의를 할 때 '솜씨 좋은 목수는 연장을 탓하지 않는다.'를 남발했다. 나는 협력사에 어떻게 하면 제품의 품질이 좋아지는지 설명했고, 고객사에서 근무하는 나의 관점에서 부품 품질 개선을 요청했다. 하지만 개선은 항상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인식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백수가 되고 마음의 여유를 찾은 후, 과거 품질 개선을 요구했던 협력사에 입사하여 품질 개선을 요구받는 입장이 되었다. 만약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나는 그때 나의 행동을 지우고 싶어졌다. 협력사에 와보니 이곳에서 일하는 동료들도 고객사에서 일하는 나의 옛 동료들만큼 열심히 일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전 직장에서 품질 관리를 잘하기 위해서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배웠다. 이는 사실 개인이 회사 생활을 잘하기 위해 중요한 것이지 실제 제품의 품질 관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회사의 규모였다.   


- 인생 품질 관리에 유리한 사람들과 제품 품질 관리에 유리한 회사들-

 

 살다 보면 남들보다 출발 선이 빠른 사람들을 만난다. 더 빨리 달리고, 빨리 이해하고, 부모님이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등등...... 그들은 확실히 인생 품질 관리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 경제학적으로 바라보면 자본 시장은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세금이라는 제도를 사용해 출발선을 조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의 인생은 시장 경제와 비슷한 측면도 있지만 다르다. 실제 우리 인생은 출발선을 조정할 방법이 없다. 자본 시장에서 소요되는 물건은 공급과 수요에 따라 가치가 바뀌며 가격을 찾아가지만 우리들 인생은 공급과 수요가 항상 1대 1이다. 결국 내 인생의 판매자도 나이고, 구매자도 나이기에 결국 우리 모두의 인생의 가치는 동일해진다. 우리의 인생은 서로 가치가 다른 것이 아니라, 특징이 다를 뿐인 것이다.


  다른 글에서 4M이라는 용어를 간단하게 설명했었다. 4M은 Man, Machine, Material, Method를 의미하는 약자이다. 제품의 품질에 영향을 주는 요인이 다양한데, 그 요인들을 표현하기 위한 일종의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기준을 사용하는 이유는 품질 좋은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어떤 요인을 관리해야 하는지 쉽게 파악하기 위해서이다.


 이 중 장비(Machine)와 재료(Material)는 마치 인생 품질 관리에 유리한 사람들이 가지게 되는 경제적 풍부함, 높은 지능과 유사하다. 대기업일수록 좋은 장비와 좋은 재료 확보에 유리하다. 물론 좋은 장비와 좋은 재료만 가지고 품질 좋은 제품을 100%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장비와 재료의 성능을 100% 내기 위한 사람과 방법(노하우)이 더 필요하다. 하지만 장비와 재료가 좋다면 동일한 품질을 유지하는데 들어가는 시간과 노력이 훨씬 감소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사라지는 겸손의 미덕 -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개인의 겸손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내가 공정하다는 착각에 빠져 겸손하지 못했던 것은 나의 모자람도 있지만 사회의 분위기도 어느 정도 영향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 시작된 성과주의는 직장에서도 여전히 이어진다. 겸손한 사람보다는 자신의 성과를 잘 표현하는 사람이 더욱 좋은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과연 그 성과가 온전히 자신만의 성과라고 말할 수 있을까?


 '벼 이삭은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처럼 과거 우리 선조들은 겸손을 미덕으로 삼았다.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겸손을 중요하게 생각했다는 것을 수 있다. 현자로 알려진 소크라테스는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것은 내가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라고 말했으며, 영국의 시인 윌리엄 쿠퍼는 "지식은 자신이 이만큼 배웠다고 하는 자랑이며, 지혜는 자신이 이 이상은 모른다는 겸손이다."  말했다고 한다. 지금의 우리는 과거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특정 지식을 배운 사람들은 특히 우리가 삶에서 겸손을 마주할 확률을 떨어 뜨린다. 그들은 돈이 되는 지식을 자랑하고, 그 지식으로 이룬 성과를 자랑한다. 그리그 그것들은 자수성가라는 말로 포장되어 누군가에게 더욱 상처가 되어간다. 확실히 물질 만능주의와 손을 잡은 성과주의에 겸손은 빛을 잃어간다.


 얼마 전 아내로부터 머리가 어찔한 이야기를 들었다. 요즘 학생들은 살고 있는 집, 부모님 직업과 재산이 얼마 있는지를 물어보고 그에 따라 차별을 두고 사귀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했다. 벌써부터 그들은 부모님의 재산 또한 자신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센델 교수가 말하는 근거가 더욱 사실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그 학생들이 자라서 일부는 일류대학을 갈 것이고, 그들은 이 모든 것은 자신의 노력 만으로 이루었다고 말할 것이니 말이다.



 - 긍정적 겸손에 관하여 -

 


 겸손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긍정적 겸손이고 하나는 부정적 겸손이다. 표면적으로는 겸손하게 보이지만 긍정적 겸손과 부정적 겸손은 다르다.


 회사를 나와 자영업을 시작했다. 코로나를 겪으면서 무력감을 많이 느꼈다. 그렇게 나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백수가 되었다. 그리고 백수가 되니 겸손해졌다. 나는 부정적 겸손을 먼저 경험하게 되었다. 자존감이 하락되니 세상에서 내가 가장 하찮게 느껴졌다. 이런 겸손은 일시적이다. 평소에는 겸손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 나를 무시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쓸데없이 나의 과거 이야기를 하며 자랑하게 된다. 그러면 점점 과거에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게 된다.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게 되면 결국 자존감이 하락한다. 부정적 겸손은 겸손해질수록 점점 현재의 자신을 부정하게 된다.


 여러 도움(독서, 명상, 타인의 위로 등)으로 마음의 여유를 찾고 주변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며 긍정적 겸손을 배우게 되었다. 나와 다른 존재에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니 타인과 나는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도 나처럼 매일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매일 흔들리지만 생존을 위해 중심을 잡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문득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내 옆에 있는 존재가 고마워진다. 왜냐하면 중심을 잡으며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데, 그대가 중심을 잡기 위해 나에게 손을 내밀어 중심을 잡고 그 손을 잡은 나도 중심을 잡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손을 내밀어 자신의 삶에서 중심을 잡고 있었다. 긍정적 겸손은 겸손해질수록 점점 현재의 자신을 긍정하게 된다.


 후회에서 시작하는 부정적 겸손과 다르게 긍정적 겸손은 감사에서 시작한다. 과거 데일 카네기의 <인간 관계론>을 읽고 좋은 이야기가 많지만, 나는 관계에서 감사함을 얼마나 잘 표현하는가가 그 책의 핵심이라 생각한다. 확실히 겸손은 쉽지 않다. 하지만 습관적으로라도 존재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하다 보면 조금씩 진심으로 존재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생길 것이고, 그런 마음이 생기면 지금까지 자신의 이룬 성과도 누군가의 도움이 없었다면 이룰 수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가 서로가 서로에게 감사함을 표현하다 보면 언젠가 모두가 평등한 능력주의를 경험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하는 상상도 해 본다.



 오늘도 에게 손을 내밀어 준 존재에게 감사하며......


 사진: Unsplash의 Elena Mozhvi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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