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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취생 Apr 07. 2024

출장 중 사색 (3)

좋아하는 일 그리고 해야 하는 일

 출장 중 묵고 있는 호텔 라운지에는 피아노가 한대 있다. 피아노를 보면 한 번씩 연주를 해보고 싶어 진다. 나는 음대를 준비하는 고등학생이었다. 하지만 공대를 졸업하고 지금은 그냥 회사원이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 좋을까?


 경험해보지 않은 일이라 궁금했었다. 가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가 있다. 그들의 속사정은 알 수 없지만 대체로 겉으로 드러나는 그들의 모습은 행복해 보였다. 


 나의 삶은 항상 호기심은 많지만 깊이가 없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분명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있을 것이라 믿어 왔지만 못 찾았다. 나의 행동반경은 점점 좁아지고 있으며, '무엇이든지 해봐야 나에게 맞는지 안다.'라는 나의 인생 모토는 '지금까지 못 찾았으면 앞으로 못 찾을 확률이 더 높다.'로 바뀌었다. 


 어쩌면 이제 인정할 시점이 왔다. 불혹이다. 난 세상에는 아직도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이 있을 것이라는 유혹을 떨쳐버리고 해야 하는 일과 하지 말아야 하는 일만 생각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요즘 딸이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한 번씩 화상 전화로 자신이 연습한 피아노 연주 실력을 보여준다. 우리 딸은 피아노에 재능이 없는 것 같다. 물론 딸에게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 그냥 열심히 연습하는 모습을 응원할 뿐이다. 딸은 나에게 피아노 연주는 재미있다고 말했다. 딸을 보며 내가 피아노를 그만두던 그 시절을 반추한다.


 어느 순간 피아노 연주도 작곡도 재미없어졌다. 좋아하는 일이 잘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였다. 많은 사람들이 재능과 노력에 대해 이야기한다. 나는 어느 선에 올라선 사람들은 노력에 따라 차이가 드러나지만 기본적으로 어느 선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재능은 필수라고 생각한다. 만약 누군가 노력만으로 어떤 분야의 일류가 되었다고 이야기한다면 그것은 겸손의 미덕으로 하는 이야기지 재능 없이 노력만으로 해낼 수 있다고 믿으면 안 된다. 그 사람이 일류가 되었다면 그 사람은 충분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심지어 노력도 재능이라는 말도 있다.


 동생은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쳤고, 작곡을 전공했다. 그래서 나도 피아노 소리를 많이 들었다. 중학교부터 음악을 듣고 몇 곡을 따라 치기 시작했다. 배우지 않고 친 것에 대해 재능이 있는 줄 알고 잠시 착각했었다. 결론적으로 나는 재능도 없었고 음악을 시작하는 나이도 늦었었다. 그래서 고등학교 1학년 음악을 하겠다고 했을 때부터 부모님은 나의 종착지를 이미 보셨을 것이다. 다만 내가 너무 원했기에 말리지 못하셨을 뿐이다. 


 작곡과를 준비하는 고등학교 2학년, 내 방에 들어갈 침대를 샀다. 침대를 설치해 주시던 기사님이 나의 작업물을 보고 혹시 누가 음악을 하냐고 어머니에게 물어보았다. 어머니는 아들이 음대를 가려고 준비하고 있다고 이야기했고, 그 기사는 자신의 경력을 우리 어머니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대구의 국립대학에서 작곡과를 졸업했고, 취업이 안 돼서 지금 이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아들 음악시키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는 말을 남기고 그는 돌아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분은 참 인류애가 넘치는 사람이다. 생판 남인 나의 앞날까지 걱정해 주었으니 말이다. 어찌 보면 자신의 경험이 전부인양 편협한 시각으로 말하는 꼰대처럼 보일 수 있지만, 결과론적으로 기억 속의 그분은 인류애가 넘치는 사람이 분명하다. 솔직히 나이를 먹어 보니 그분이 왜 그랬는지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그분이 다녀 간 후 나는 일주일 만에 음대 진학을 포기하였다. 부모님의 설득도 있었지만 사실 나도 어느 정도 체감하고 있었다. 주변에 예체능을 업으로 준비하거나 업으로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예체능으로 유명한 사람은 없었다. 유명한지 안 한 지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사람이 해야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이 돈벌이인데, 전공을 살려 돈을 버는 사람이 없었다. 당시 나와 같이 예체능을 하던 친구들은 나를 제외 모두 음대 혹은 체대로 진학했다. 하지만 그중 자신의 전공을 지금까지 유지해서 돈 버는 친구는 한 명 밖에 없다. 그는 지금 피아노과 교수를 하기 위해 해외에 유학 중이다. 정말 나의 삶에서는 그때 기사님의 이야기가 맞았던 것이다.


 잘하는 일이라는 것은 비교 평가 대상이 필요하다. 그리고 돈 버는 일은 잘해야 한다. 다시 말해 다른 누구보다 좋은 성적을 내야 돈을 벌 수 있다. 이는 회사생활 내에서도 해당되고 자영업에도 해당된다. 난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번 적이 없다. 돈 벌어야 하니 싫더라도 일을 하고 있다. 


 사실 지금 좋아하는 일도 내가 잘해서 좋아하는지 아니면 그냥 그 일을 하는 자체로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게 되는 건지 고민해 보는 것이 좋다. 비교 평가는 발전적인 부분도 있지만, 그 반대의 영향도 무시할 수가 없다.


 30대 후반부터 사색하기, 글쓰기, 독서하기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 되었다. 그리고 이 세 가지는 앞으로도 계속 좋아하게 될 것 같다. 왜냐하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세 가지 일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 평가를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음악을 좋아했던 것은 내 주변 사람보다 잘한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실제 리그에 발을 들이고 내가 우물 안 개구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니 음악이 재미있지 않았다.


 나는 아마 인류애가 넘치는 사람 혹은 꼰대 비슷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 침대 설치 기사님이 나의 삶에 영향을 주었듯이 말이다. 누군가에게 그런 선 넘은 조언을 했을 것이고, 앞으로도 할지도 모른다. 내 경험이 묻어난 이야기들이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말이다. 


 분명 딸에게도 이런 이야기들을 해줄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한다. 이때 나는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것도 좋아. 다만 업으로 삼는 일은 웬만하면 네가 할 수 있는 일중 가장 잘하는 일로 했으면 좋겠어. 하지만 네가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겠다고 하여도 아빠는 언제나 너를 응원할게. 그런데 네가 가려던 길이 나와 맞지 않다는 확신이 든다면 그 시점까지 한 일은 빨리 잊고 다시 시작하기를 바래. 그것이 우리를 위해서 네가 꼭 해야 하는 일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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