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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취생 Apr 14. 2024

출장 중 사색 (4)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성장할 수 있다.

 출장을 와보니 과거 나의 직장 생활이 다시 떠오른다.

 첫 직장 생활의 마지막 기억은 무기력함이었다. 그래서 첫 직장을 그만두었다.

 

 나는 무기력한 첫 직장생활을 한 이유가 성장의 부재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첫 직장을 구하기 전까지의 삶들은 이렇게까지 무기력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그 전의 삶은 무기력하지 않았다고 기억할까? 그것은 아마도 그전까지의 삶은 신체적 성장과 정신적 성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성장한다는 느낌은 나에게 어제보다 나은 사람이 되고 있다는 희망을 주었고,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어도 내일의 상황은 다를 것이란 믿음을 주었다.


 하지만 첫 직장 생활에서 어느 순간 그런 믿음이 사라졌다. 내일의 상황도 오늘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나의 하루하루가 무기력해졌다. 그랬다. 나의 성장이 멈추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신체적인 성장은 이미 멈춘 지 오래고, 정신적인 성장도 더 이상 없었다. 그저 매일매일 지금까지 모아 놓은 성장의 결과물들을 계속 소모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첫 직장을 그만두고 카페를 운영하며 독서를 시작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백수 생활이 길어질 때도 경제적인 압박으로 인한 초조함은 있을지 언정, 무기력하지는 않았다.


 다시 직장 생활을 시작했고, 몇 개월만 있으면 곧 일한 지 2년이 된다. 그런데 출장 중 무기력함이 슬금슬금 올라온다. 나는 성장이 멈추었다고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독서를 하며 정신적으로 성장한다고 느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조금씩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독서를 통해 과거 경험들의 의미를 찾기 시작했고, 주변의 존재와 나의 관계에 대해 조금씩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나는 관계 속에서 성장을 경험하는 유형이었다.


 관계라는 것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인간의 실존 문제 위에 세워졌다. 이는 마치 양자역학의 이론처럼 관계도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양자역학에서 어떤 입자를 관측하는 것은 확률의 문제이고, 이것은 일상에서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것 또한 확률 문제처럼 보였다. 인연들과의 만남은 모두 확률적으로 서로를 관찰한 결과였다. 그리고 관계의 뚜껑을 열었을 때, 가벼운 관계(파동)가 아닌 무게가 있는 관계(입자)만이 나에게 성장한다는 느낌을 주었다.

 

  출장지에서 맺는 대부분의 관계는 무게가 없었다. 그래서 쉽게 휘발되었다. 그런데 하루의 대부분 시간을 회사 안에서 보내니 출장지에서 나의 일상은 점점 무게가 없어진다. 이미 가져온 책은 읽었고, 회사에서도 무게가 없는 관계만 지속되고 있다. 그래서 무기력해지고 있다.

 

 회사에는 방향 없이 혁신 혹은 개선과 같은 주제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대체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과 나는 무게가 있는 관계를 맺지 못한다. 그들은 항상 환경을 개선하여 자신을 맞추던지 자신을 개선하여 환경에 맞추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는 심플하다. 어느 한쪽을 다른 한쪽에 맞추라는 이야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우리의 삶을 잘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 어느 쪽도 완벽할 수 없기에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며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환경을 인식할 때는 어떤 안경을 끼고 있다. 그럼으로 내가 보는 사과의 색깔과 어떤 누군가 보는 사과의 색깔이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나는 이번 출장에서 법인이 표준에 대해 잘 준수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준수하지 못하고 있는 항목들을 준수하게 만들어야 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그런데 직접 현장에 들어가 보면 이 표준이라는 것이 실제 법인의 환경과 어울리지 않는 부분들도 보였다. 그리고 나는 이런 사실들에 대해서 상사의 방향과 조금 다른 결과를 작성하여 보고했다.


 그리고 자주 겪는 관계가 가벼워지는 시간이 찾아왔다. 나의 상사는 나에게 화장실에는 휴지가 있는 것이 기본이 아니냐는 이야기를 했다. 화장실에 휴지가 없으면 휴지가 항상 있도록 만들라는 말이었다. 물론 정말로 화장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것은 아니다. 그냥 나의 보고를 듣고 한 비유로 그가 한 말이었다.


 그리고 나는 "한국과 달리 이곳은 화장실에 휴지가 없는 곳이 더 많았습니다. 기본이라는 것은 상황에 따라 다른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했다. 회의 분위기는 싸해졌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하여 모로 가도 서울로 가면 된다는 말을 하지만 간혹 과정에만 집중한 나머지 과정이 결과를 가리는 경우도 있다. 결과만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도 문제지만 과정만 기지고 이야기하는 것도 문제다. 앞서 말한 방향이 없는 개선은 이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표준을 잘 준수해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과연 무엇을 이루기 위해 개선 활동을 하는지도 잊지 말아야 한다.


 회사 생활에서 사람 관계는 대체로 상호 보완적이기보다 일방적인 관계가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러니하게 서로가 서로를 부품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무게감 없는 존재끼리 만나니 관계도 무게가 없어 바람에 날려간다. 그리고 그런 무게 없는 관계를 만날수록 나의 성장은 멈추고 무기력해진다.


 계속 무기력해질 수는 없기에 첫 직장을 그만두고 지금까지 실천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내 옆의 존재에게 당신은 대체할 수 없는 존재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이는 무게를 가진 관계로 발전할 확률을 높여준다. 다만 이곳은 너무 정신없이 바쁜 곳이라, 무게가 있는 관계로 발전하기에 모두가 대체로 마음의 여유가 없다.


 결국 무기력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성장해야 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

 결국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성장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마음의 여유를 찾기 위해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한국에 잠시 다녀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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