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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일희 Dec 29. 2023

용주골의 급박했던 한 해가 저문다


‘연말 우울증’ 중이다. 연초마다 올 한 해는 지난해보다 덜 부끄럽게 살아야지 다짐하지만, 매면 허탕을 치고 연말 우울증을 앓는다.     


‘파주시청은 위법한 CCTV 설치와 용주골 강제 폐쇄를 멈추라’       


미군 기지촌 유산으로 70년 동안 유지된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의 종사자들을 하루아침에 내쫓겠다는 파주시의 폭압에 대한 분노와 종사자들의 매일의 불안에 애면글면하다 연말을 맞았다. 용주골 종사자들과 이들과 연대하는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가 올해 마지막이 될 기자회견을 한다기에 찾아갔다.      


연초 ‘무조건 연내 폐쇄’를 내걸고 종사자들을 압박하던 파주시는 얼마 전까지도 이들을 집요하게 괴롭혔다. 지난 11월 28일 화요일 새벽 6시 30분, 파주시청 직원 등이 집결지 내 CCTV 설치를 시도했다. 마을 입구를 피해 집결지 인근 논을 가로질러 크레인을 몰고 기습했다.      


이를 발견한 종사자 A씨가 항의하자, 파주시 공무원과 용역 직원은 이를 무시하고 설치를 강행했다. A씨가 CCTV를 달려던 전봇대를 맨몸으로 타고 올라 크레인 삽 안으로 들어가자, 크레인 운전자가 A씨가 타고 있는 삽을 위아래로 움직이며 공무집행 방해라며 위협했다. 


A씨가 위협에 굴하지 않자, 크레인 운전자가 삽으로 이동 A씨의 머리를 두 다리 사이에 끼고 희롱하며 작업을 이어갔다. 종사자들이 이를 알고 크레인 쪽으로 모여들어 항의하자 CCTV 설치를 중단했고, A는 삽에서 겨우 내려올 수 있었다.      



새벽 이른 시간에 마을의 통로도 아닌 논을 경유해 몰래 들어온 것은 야비하고 명백한 불법이다. A씨는 이 사건 이후 공포와 불안으로 불면증과 공황 증세를 겪고 있고 허리를 다쳐 치료 중이다. A씨는 파주시청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김경일 파주시장을 직권남용죄, 당일 CCTV 설치를 시도하며 A씨를 압박한 파주시청 공무원과 용역 직원을 특수협박죄, 특수폭행치상죄, 강제추행죄 등으로 고소하면서 고소장을 제출하기 전 이를 알리기 위해 파주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피해 당사자 A씨가 기자회견 장에서 밝힌 심경이다. 

“...저도 성노동자 이전에 사람이고 여자입니다. 성적 수치심을 느낄 수 있고, 협박과 폭행에 공포를 느끼는 당신들과 같은 사람입니다. 법을 어기고 사는 성노동자가 무슨 인권이고 법적 대응이냐 하시겠지만, 저는 너무나 억울합니다. 애초에 용주골이 왜 만들어진 겁니까? 파주시 책임자들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용주골을 관리하고 용주골로부터 이익을 얻으면서도 아무 처벌도 받지 않았습니다. 왜 힘 있는 사람들은 법을 어기고도 당당합니까? 왜 저희 같은 사람들은 이렇게 불법적으로 탄압해도 괜찮다고 여겨지는 겁니까?...”    

 

맞다. 파주시는 대체 왜 이러는가? 이들은 왜 이렇게 CCTV 설치에 혈안일까?      


A씨 사건이 있은 후 12월 21일 새벽, 또다시 CCTV 기습 설치 시도가 있었다. 새벽 6시 영하 19도의 날씨에 논 쪽으로 크레인을 몰고 기습하는 것을 감지한 종사자들은 다급한 나머지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하고 뛰어나와 CCTV 설치를 저지하기 위해 크레인 삽 안으로 뛰어들었다. 크레인을 몰고 온 시청 직원들은 다시 CCTV 설치에 실패하고 돌아갔지만, 혹독한 추위와 언제 다시 들이닥칠지 모를 위협으로 공포에 떤 이들은 얼마나 놀라고 분했을까.     

 

이에 그치지 않는다. 파주시는 내년에도 용주골 폐쇄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17억 원이 넘는 예산을 책정했다. 이 돈이면 백여 명도 되지 않는 종사자들의 이주비를 지원하고도 남을 테다. 성매매 적발 시 그간 받은 돈을 모두 토해내야 하는 실효성 없는 자활 조례 지원금을 방패 삼지 말고, 종사자들이 원하는 이주대책 지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이들의 인권을 훨씬 존중하는 태도가 아닐까. 대체 언제까지 종사자들의 일상을 위협하는 CCTV 설치를 끝도 없이 시도하고, 받지도 못할 조례 지원금을 생색내며 억지를 쓸 텐가?      



이날 기자 회견장에는 특별한 연대자의 발언이 있었다. 아시아 이주 성노동자를 위한 풀뿌리 공동체 Red Canary Song의 국제 활동가인 라윤(Yoon Grace Ra)의 발언이었다. 그는 인큐(Yin Q)와 공동 감독으로 아시아 이주 마사지 노동자와 성노동자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Fly In Power>를 만들었다.   

   

2017년 중국 마사지 노동자 송양 씨가 경찰 단속을 당하다 마사지 업소 2층에서 떨어져 사망한 애통한 사건이 있었다. 미국 경찰은 아시아 마사지 노동자들의 노동을 불법으로 치부하고 폭압적인 단속을 벌이는 것으로 악명 높다. 송양 씨 사망 후 가족들은 진상 규명을 요구했지만 묵살됐고, 지금도 같은 처지의 아시아 마사지 노동자나 성노동자는 불안한 환경에서 위태롭게 일하고 있다.      


미국에서 마사지 노동이나 성노동으로 살아가는 아시아 이주 여성들은 대부분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위험한 일을 한다. 이들이 이렇게 위험하게 벌어 송금한 돈이 가족을 먹여 살리고 국가 경제를 돌게 만든다. 실상 가족뿐 아니라 마을과 국가 경제를 견인하는 셈이다. 


1960년대  한국 노동자들이 해외에서 벌어들인 돈이 당시 경제의 버팀목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보라. 먼 과거만이 아니다. IMF 시기나 2천 년 초반 이들이 미국에서 벌어 한국으로 송금한 돈이 그들의 가족을 먹여 살리고 국가 경제를 뒷받침했다. 라윤이 만난 한국인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가족을 곤궁에서 벗어나게 한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이들의 자부심과 달리, 이들의 출신국과 언어 장벽은 양질의 일자리를 얻는데 큰 장벽이다. 이런 이유로 비교적 진입 장벽이 낮은 마사지 노동이나 성노동으로 생계를 잇고 가족이 있는 고국에 생활비를 송금한다. 그들을 불법이라 욕하고 체포하기 전에, 그들이 이런 불안한 노동에 종사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상황을 바꿀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용주골 종사자들도 마찬가지다. 이들 대부분 가족을 부양하며 살아간다. 결코 쉬운 돈을 벌기 위해, 사치하기 위해, 일을 하지 않는다. 가장인 이들에게 고작 일인 가구나 먹고 살 정도인 100여만 원의 조례 지원금이 탈성매매를 유도하는데 얼마나 효용이 있을까.   

  


라윤은 이곳 용주골이 미군 기지촌이었던 역사를 짚는다. 한때 달러의 화수분으로 애국자라 칭송받았던 기지촌 여성들은 미군이 떠남과 동시에 버려졌다. 극소수는 미군 남편의 ‘전쟁 신부(War Bride)’로 도미해 아메리칸드림을 꿈꾸었으나 모두의 꿈이 실현된 것은 아니었다. ‘전쟁 신부’가 낙인으로 작용해 한국인 공동체로부터 배척당하기도 했다. 

     

<전쟁 같은 맛>을 쓴 그레이스 M. 조의 어머니도 ‘전쟁 신부’였다. 그의 어머니는 누가 뭐라건 사는 내내 자신의 삶과 가족과 자신이 살던 마을에 입양되어 온 아이들을 돌봤다. 한국 음식을 해먹이며 그들의 영혼을 달랬다. 이렇듯 미국에 온 ‘전쟁 신부’들은 외롭고 죽고 싶을 때마다 한국 음식을 나누며 몸과 영혼의 허기를 달랬다. 라윤이 만든 다큐멘터리 <Fly In Power>에도 한국인 성노동자가 한국 음식을 푸짐하게 만들어 나누어 먹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들에게 고국의 음식은 단순한 음식 이상이었다.   

   

라윤은 용주골에 밀고 들어온 미군들과 이들이 관여한 한국 전쟁을 환기시켰다. 미국에선 공공연히 한국전쟁을 ‘잊혀진 전쟁(The Forgotten War)’으로 부르는데, 이는 그들이 한국에서 벌인 제국주의와 학살을 지우기 위해서다. 한국전쟁과 이와 잇대어 있는 기지촌을 지우고 싶어 하는 이들은 미국인만이 아니다. 기지촌을 회상하는 용주골 주민들 대부분은 언제나 기지촌이 있던 그때를 “좋은 시절”이라 말한다. 그 시절을 화양연화라 낭만화하면서, 그 때의 영광을 가능하게 한 기지촌 여성들에 대해선 냉담하고 언급을 피한다.      


전쟁 후 파탄 난 살림과 돈이 마른 나라에 어떤 곳에 돈이 돈다면 그곳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꼬이는 건 이상할 일이 아니다. 특히 전쟁고아처럼 오갈 데가 없는 미성년 소녀들의 경우라면 굶어 죽지 않기 위해 무엇을 팔 수 있었겠는가. 이것이 그들의 잘못인가.   

   


이들 헐벗고 가난한 소녀들을 돌보지 않고 오히려 달러벌이에 이용한 것은 국가였다. 미군들의 비틀린 성적 욕구를 해소하고 미군을 한국에 장기 주둔시키기 위해 한국 여자들이 희생되었지만, 사람들은 이를 자발적 매춘이라 혐오했다. 그들을 경유해 돈을 벌어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공부시켰으면서 아직도 뒤돌아 서서는 ‘양공주’라 험담한다.      


지난해 대법원은 기지촌 여성들에 대해 국가가 벌인 불법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지역 정치인이나 공무원 혹은 지역 주민 누구건 간에 대법원이 인정한 기지촌 여성 피해자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해하기라도 했던가. 과거 기지촌 여성에서 지금의 용주골 성매매 종사자들에 이르기까지, 이들에 대한 구조적 가해나 폭력은 묵과하고 이들을 눈앞에서 치우기만 하면 자신들의 과오가 없어진다고 믿는다. 


미국이 한국전쟁을 아무리 ‘잊혀진 전쟁’으로 망각의 강에 흘려버린다 해도, 이것을 잊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한, 그들은 결코 무죄가 될 수 없다. 한국 정부와 지방 정부 그리고 지역민들의 잘못과 책임도 마찬가지다.      

앞서 파주시를 고소 고발한 A씨가 CCTV 설치를 막기 위해 올라탄 크레인 등의 중장비에 관해 라윤은 흥미로운 정보를 제공했다. 현대의 건설 장비가 오랫동안 미국 제국주의 확산의 무기로 활용되었으며, 현대인프라코어 브랜드인 ‘Develon’이 현재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학살과 인종차별의 공모자라는 사실 그리고 이런 공모 기업들을 보이콧하고 압력을 가하는 국제적 움직임이 있다고 알려왔다. 용주골 종사자 A씨를 위협한 건설 장비가 전 지구적으로 약자를 위협하고 공격하는 도구였다. 

     


기자회견을 끝내고 A씨와 연대자들은 고소장을 전달하기 위해 파주경찰서 민원실로 이동했다. A씨가 자신의 고통과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작성한 고소장은 무사히 접수되었다. 공정한 수사가 이루어지길 바랄 뿐이다.



올 한 해 파주시와 싸우느라 고군분투한 용주골 종사자들의 연말은 춥고 시릴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다시  살아갈 결심을 한다. 이들의 억울함과 서러움을 녹일 파주 시민의 공감과 연대가 절실하다. 올 한 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님을 믿고 실행한 자작나무회와 차차에게 감사와 지지를 보낸다. 내년에도 파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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