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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일희 Jan 22. 2024

이거, 아이 낳으라는 건가요, 자궁을 담보 잡는 건가요

(아이 낳을 때마다 대출금 탕감해 준다는 저출생 지원금 공약에 부쳐)

   

조앤 윌리암스 미 캘리포니아 명예교수가 0.78명인 한국의 출산율에 너무 놀란 나머지 한국 망했다는 발언을 한 게 꽤나 회자되었다.     


이 때문은 아니겠지만 총선을 앞두고 국민의 힘과 민주당이 저출생 공약을 발표했다. 국민의 힘이 연간 3조 원을 책정한 반면 민주당은 28조 원을 공약했다. 민주당은 국힘당에 비교가 되지 않는 큰 예산을 책정했다. 윤정부의 부자 감세로 쪼그라든 세수에 어떻게 재원을 마련할 건지도 모르겠고, 현금 공세로 저출생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보는 몰이해도 한숨~~~     


국힘당과 민주당 세부 공약은 제쳐두고, 민주당 공약 중 진짜 이상한(사실은 빡침!) 공약은 이거다. <출생 지원금 공약 중, 신혼부부에 1년 만기 1억 원 대출을 주고, 1자녀 출생 시 무이자 전환, 2자녀 출생 시 50% 탕감, 3자녀 출생시 전액 탕감> 공약이다.     

 

이 공약의 문제점은 첫째, 여성을 출생 도구로 간주하고 있다. 둘째, 선 지급 후 아이를 낳을 때마다 원금을 탕감해 주는 방식은 너무 저열하다. 3 아이에 1억이면, 결국 1 아이당 약 3천 3백만 원의 가격을 매긴 건데, 그럴 바엔 출생 장려금으로 한 아이 낳을 때마다 3천3백씩 지급하는 게 심플하지 않나? 빚을 주고 이를 까는 방식을 쓰는 것은 결국 채무자(신혼부부)에 목줄을 걸겠단 심산 아닌가. 

     

물론 1억을 준다고 아이 셋을 빡세게 낳을 부부가 얼마나 있을까마는, 그럼에도 나는 이런 찜찜한 상상을 하게 된다. 나쁜 남자가 장애, 이주, 폭력 등으로 심신이 취약한 여성과 혼인 신고 내지 결혼을 한 후 1억을 땡겨 받고, 아이 셋을 임신 출산하게 한 후 이혼 내지 나 몰라라 먹튀하는.. 과대망상일까?      


나는 이런 피해가 반듯이 생길 거라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여기서 ‘남혐’(이런 건 없습니다) 이런 소리 하지 말고요. 악랄한 남자들은 도처에 있고, 나쁜 여자가 1억에 눈이 어두워 일을 벌일 수는 있겠다. 결국 이렇든 저렇든 피해는 취약한 여성과 태어난 아이가 고스란히 받을 게 불 보듯 뻔하다. 뭐 이딴 괴상한 방식을 정책이라고 내민단 말인가. 한심을 넘어 화가 난다.      


저출생은 여성들의 출산 파업이다. 우선 결혼을 안 하는 게 가장 큰 원인일 테고, 결혼해도 아이를 안 낳으려는 게 다음 원인일 것이다. 의원님들, 여성들한테 왜 안 낳으려는지를 들어보라구요. 해괴하게 ‘빚주고 애 낳으면 까줄게’라는 말도 안 되는 짓 좀 하지 말고 말입니다!     

 

얼마 전 밥상 머리 해프닝을 전하며 빡친 글을 마무리하겠다. 연애에도 관심 없는 23살 딸애에게 남편은 결혼해서 손주 낳으면 엄마가 키워줄 테니 걱정말라는 기함할 말을 했다. 나는 순간 쌍욕이 튀어나올 뻔했다. 나도 일하며 딸애 독박 육아하느라 엄마 손이 아쉽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지만, 엄마는 친손주만 관심 있었기에 언감생심 맡긴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고, 노년까지 어린애 보라는 건 인권 침해다. 엄마 손이 아쉬웠던 거야 엄마의 손주 육아가 당연해서였겠나, 안심하고 맡길 곳이 없어서지.  

   

그렇게 눈물 흘려가며 발 동동 굴러가며 어찌어찌 키웠으니 당연히 둘째 낳을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유아기를 지나니 산 넘어 산, 학교를 다니면서도 아이 키우는 게 참 힘들었다. 아이를 공부 기계로 만들려는 학교나 사회에 공모하지 않으려 나름 발버둥 쳤지만 쉽지 않았다. 아이 교육은 전적으로, 뭐 이런 불공정한 관습이 있나 모르겠는데, 엄마 몫이고 초중고 올라갈수록 다들 시키는 걸 안 시키다 보니 엄마들 사이에서 나는 뭘 모르는 사람이라는 눈치도 꽤 받았다.      


아이를 취학시키면 엄마들 정신은 아이 교육과 돌봄에 꽉 붙들린다. 뭔 요망한 주술에라도 걸린 것처럼 정신없이 학교와 학원 보내고, 공부와 학원 스케줄 짜고, 학교 학원 픽업하고. 지극정성 도시락 마련하고, 아이 비위 맞추고 그러다 무슨 정신에 틈틈이 SNS에 어디서 뭘 먹고 뭐 하는지부터, 무슨 컨설팅했다, 몇 점 맞았다, 몇 등이다, 오늘 뭘 먹였다....      


나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다시 돌아가라면 1억? 쳇 10억 줘도 다시 안 한다.(ㅎㅎ 10억이면 흔들리나요...). 그건 당신이 무능해서 그런 거지 하면 대꾸는 안 하겠지만, 내 무능 나무라기 전에 처참한 한국 교육 현실과 무능부터 따져봅시다. 어쩌다 출생 지원금 얘기하다 여기로 흘렀는데, 여튼 내 경우 애 키우고 교육시키는 게 너무 큰 스트레스여서 다시 안 한다는 거고, 이런 부조리를 너무 잘 알아버린 여성들이 독박 육아하면서 ‘엄 걸릴’ 온갖 스트레스 안 받고 안 하겠다는 거다.    

  


다시 결혼 지청구가 벌어진 우리 집 식탁으로 돌아와서, 나는 쌍욕이 튀어나오려고 했고, 딸애는 아빠를 외계인 보듯 바라보더니 한다는 말, “아빠, 결혼해서 탁월하게 좋은 점 세 가지만 얘기해 봐. 들어보고 설득되면 생각해 볼게.” 내 독박 육아 동안 남편은 놀 거 할 거 다하며 암 생각 없이 돈만 벌어오면 다인 줄 알고 살아왔는데, 무슨 수로 그럴듯한 세 가지를 대겠는가.      


“그냥 좋아. 안정이 되잖아.” 참 옛날 사람다운 말이죠? “아빠 안정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해 봤어? 그거 다 엄마가 제공하는 거잖아. 아(짜증 섞어), 나 안 해. 남자는 안정되고 여자는 불안정해지는 그런 거 난 안 해. 아빠는 세 가지도 못 댔고 나를 설득 못 했어. 다시 결혼 말 꺼내지 마.” 종결자 딸애의 변에, 나는 쌍욕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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