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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일희 Feb 01. 2024

살기 위해 전봇대를 오르는 여자들

파주시 용주골 강제 폐쇄와 CCTV 기습 설치 현장에서


아침 7시경(1월 30일) 용주골로 들어서던 중이었다. 용주골 외곽 도로에 수많은 자동차들이 헤드라이트를 밝힌 채 주정차되어 있었다. 보통 겨울의 어둑한 이 시간대면 인적이 드문 용주골 외곽 도로가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대대적 기습에 앞서 대오를 정렬하고 있는 것일까.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새벽 7시, 용주골은 부산했다. 파주시가 용주골 성매매 집결지 폐쇄 행정대집행을 예고하고 집결지 내 CCTV 설치를 시도하려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파주시는 수차례 기습적 CCTV 설치를 시도했지만, 종사들의 강력한 저항으로 실패한 바 있다.    

  

파주시가 CCTV를 설치하려는 곳은 집결지 내 유리방 전방의 전신주다. 집결지 입구에 이미 성구매자 차단을 위한 단속 CCTV가 있는데, 굳이 종사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이 훤히 보이는 유리방 앞에 CCTV를 설치하겠다는 의도는 무엇일까? MBC 1월 30일 자 보도에는 시 관계자가 “안전사고를 우려해 CCTV 1대를 설치”하겠다고 하는데, 시 관계자가 말하는 ‘안전’은 도대체 누구의 ‘안전’인가? 

     

만약 시가 내 집 현관에 내 ‘안전’을 위해 CCTV를 설치하겠다면 그러라고 할 사람이 있을까? 명백한 인권 침해를 벌이면서 안전 운운하는 것은 염치없을 뿐 아니라 구매 차단을 위한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한다. 카메라에 찍혔다는 것만으로 어떻게 성 구매를 확정할 수 있나? 이는 종사자들의 심리를 압박하려는 수단 외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용주골 외곽에 불을 밝히고 있는 어마어마한 기세로 보아, 오늘은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다.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1월 29일부터 용주골 종사자와 연대하기 위해 꾸려진 농성장을 지킨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와 시민 연대자들은 새벽 6시부터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기습에 대기하고 있었다. 저마다의 손에 촬영을 위해 든 핸드폰 외, 싸움에 나선 모두는 맨손이었다.      



7시경 CCTV 설치를 위해 크레인이 진입한다는 소식에 빈 위장을 채우려던 연대자들은 밥그릇을 내던지고 달려나갔다. 시의 타깃인 두 전신주에는 이미 종사들 대여섯 명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대기하고 있었다.      


전신주 너머 들판은 겨울 논이라 텅 비어 있다. 대형 크레인이 들어오기 맞춤이었다. 논에 진입한 크레인을 보니 시의 결기ㅎㅎ가 엿보인다. 기능이 좋아 보이고 매우 튼튼해 빌딩이라도 제압할 수 있을 골리앗 크레인이었다. 고작 여성들 일상을 들여다보자고 이토록 거대한 크레인을 동원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CCTV를 달겠다는 김경일 시장이 딱하다. 시 예산을 이렇게 낭비하다니...     


크레인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키를 늘리더니 작업대가 펼쳐지고 그 위로 CCTV를 달 작업자 두 명이 탑승했다. 전신주 절반쯤 높이에 매달려 있는 종사자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크레인은 키를 점점 높여가더니 마침내 전신주 꼭대기에 이르는 것이 아닌가? 아니 저렇게 높이 달겠다고? 매수자 차단을 위해 달겠다는 둥, 누군가의 안전을 위해 달겠다는 둥 하더니, 저 높이에서 무엇을 찍겠다는 것인가?      


꼭대기에 도달한 크레인의 작업자들은 능숙하게 일을 시작했다. 이미 조립이 마쳐진 터라 CCTV 바를 전신주에 부착하기만 하면 되었다. 크레인이 전신주로 뻗어오기 시작하면서 종사자들과 시민 연대자들은 악을 쓰고 있었다.      


엄동설한에 전신주에 매달려 있는 여자들이 보이지 않느냐. 발이라도 헛디딘다면, 고압 전류에 스치기라도 한다면, 죽을 수도 있다. 죽음을 불사하고 매달려 있는 저 여자들의 울부짖음이 들리지 않느냐. 권력이 있는 자는 강제로 시민의 삶을 위협하고 침해해도 되느냐. 불법적인 CCTV 설치를 중단하라. 연대자들의 고성과 비명이 대추벌을 울리고 있었다. 원성이 전신주 꼭대기에는 다다르지 못했나, CCTV가 달렸다.   

  

손가락이 곱아갔다. 발가락이 시리다 못해 아파왔다. 성대가 갈라졌다. 1시간 넘게 발을 동동거리고 목을 젖힌 채 항의하고 서 있었지만, 골리앗의 손에 인도된 CCTV가 달리는 걸 막지 못했다. 연대자들의 얼굴에 분노와 허탈함이 배어 나왔다. 그때였다. 전신주에 매달려 있던 한 작은 여자가 꼭대기에 설치된 CCTV를 향해 한발 한발 기어오르고 있었다.      



이번엔 분노가 아니라 공포의 비명이 이어졌다. 더 가면 안 된다. 위험하다. 떨어진다. 감전된다. 미친 것이냐. 그 여자의 귀엔 비명이 들리지 않는다. 한겨울 새벽부터 전신주에 매달려 제발 CCTV를 달지 말아 달라고 그렇게 애원했는데, 너희는 우리에게 골리앗을 보내 결국 CCTV를 달게 하는구나. 너희가 나의 희생을 부르는구나. 저 CCTV에 달린 감시의 눈에 내 삶을 통제당하느니 차라리 죽겠다. 마치 이러는 것 같았다.   

  

상대는 골리앗을 타고 단숨에 오른 전신주 꼭대기에 여자는 낑낑대며 사력을 다해 몇 차례 실족의 위험과 낙하와 감전의 공포를 이기고 꼭대기를 향해 가고 있었다. 고개를 젖히고 이를 바라보던 모두는 아연실색했다. 어쩌면 CCTV 설치를 강행한 시청과 용역이 더 움찔했을지 모른다. 크레인만이 오를 수 있는 높이에 CCTV를 달고서는, 여기까지는 못 오겠지, 했을 테니 말이다.     

 

CCTV 하나 달겠다고 수십 명의 용역을 달고 나타난 골리앗의 들판이 수런대기 시작했다. 사고를 대비해 출동한 경찰과 소방대는 서로에게 돌아올 책임이 두려웠는지 잘못된 싸인을 받은 양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는 사이 전신주의 여자는 마침내 꼭대기에 도착해 CCTV 바에 걸터앉았다. CCTV를 떼지 않으면 여기서 죽겠다고, 그 여자가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가슴을 졸이는 긴장 속에 어디선가 CCTV를 뗀다는 소리가 들렸다. 들판과 전신주 주변의 수런거림 속에 다시 크레인이 키를 늘리고 있었다. 여자가 앉아 있는 CCTV 바까지 크레인이 뻗어갔다. CCTV 뗄 테니 내려가자는 불명확한 소리가 들렸고, 고공의 여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여자가 작업대로 옮겨 타자 작업자들이 CCTV를 떼기 시작했다. 점령군이라도 되듯 기세등등하던 CCTV가 떼어졌다. 크레인이 키를 줄이며 내려왔다. 여자가 골리앗의 목줄을 쥐고 땅에 닿았다. 모두에게서 안도와 탄식과 한숨과 오열이 터져 나왔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고공에 있던 여자를 찾았다. 창백해진 얼굴을 하고 축 늘어진 채 숨을 고르고 있었다. 맨손으로 얼음장 같은 전신주를 기어오른 그녀의 심정을 헤아릴 길이 없어 괜찮냐는 말밖에 전하지 못했다. 이들에게 닿을 유일한 위로는 시민의 더 많은 지지와 연대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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