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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유리 Aug 20. 2024

나는 췌장이 무섭다

  나는 ‘췌장’이라는 단어가 무섭다. 어느 몸에나 있는 장기의 이름일 뿐이지만 단어 자체로 무섭고 불편하다. 췌장은 혈당을 조절하거나 소화 효소를 분비해서 내 몸이 잘먹고 잘살수 있게 도와주는 아주 착한 녀석인데도 그냥 무섭다. 불쌍한 췌장은 잘못이 없다. 췌장암으로 엄마를 잃은 내 탓이다. 아마도 나는 일평생 췌장암이 가장 무서운 질병인 줄 알며 살아갈 듯하다. 가만히 있는데도 괜히 내 췌장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염려가 된다. 그래서 혈당에 좋다는 것은 웬만하면 지키려고 노력한다. 식전 샐러드와 정재 탄수화물에 상당히 민감하다. 엄마의 식습관을 되새기며 '그게 문제였나?'하고 곱씹는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췌장이 너무 무섭다. 무서워 하고싶지 않은데, 마음처럼 쉽지가 않다. 엄마가 췌장암에 걸리기 전에는 췌장이 어디 붙은 장기인지도 몰랐다. 엄마의 병명을 알고 약 일주일 정도 췌장암 공부에 매진했었다. 그 일주일만에 췌장에 관련된 질병에 대해 일반인들 보다는 많은 지식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종양이 어디에 위치하느냐에 따라 병변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어떤 종양 모양일 때 절제술이 가능한지, 기수는 어떻게 분류하는지 등 꽤나 빠삭하게 익혔다. 절박할 때 공부한 내용이라 잊을라야 잊히지도 않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생각이 있는데, 우리 엄마라서, 나에게 일어난 일이라서가 아니라 췌장암은 정말로 무서운 병이다. 어떤 암이든 다 위험하긴 하겠지만, 췌장암은 2024년 현재까지 5년 생존률이 10퍼센트가 되지 않는데다,(얼마 전에 최근 췌장암 생존율이 많이 높아졌다는 뉴스를 보았는데, 오른 수치가 7퍼센트 언저리였다. 일단 췌장암이 발병한 환자는 몇기이건 간에 5년 이내에 100명 중 7명만 살아남는다는 뜻이다.) 발견했다 하면 4기 혹은 말기 상태라 어떻게 해볼 수가 없는 병이었다. 그 지독하고 고약한 병에 하필이면 우리 엄마라니. 우리 엄마라니? 


  췌장이 무섭기만 한게 아니라 불편하기까지 하다. 넷플릭스에서 방영했던 ‘서른, 아홉’이라는 드라마의 주인공은 췌장암으로 죽는다.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다가 ‘췌장암’ 단어가 나오자 마자 꺼버렸다. 췌장암만 나와도 못 보겠구만 췌장암으로 죽은 친구 이야기를 다뤘다? 나는 아마 죽을 때까지 그 드라마는 못 볼 것 같다. 

  유튜브를 보다가 한 의사 선생님이 진지한 표정으로 앉아서 ‘췌장암 신호, 무시하지 마세요!’라고 경고하고 있는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이런 게 왜 내 알고리즘에? 혹시나 내 이야기인가 싶어 눌러 본 사람들이 많았는지 영상 조회수는 300만이 넘게 찍혀있었다. 나는 빠르게 상단의 ‘채널 추천하지 않음’을 눌렀다. 

  유퀴즈에서 췌장암 명의 ‘강창무’ 선생님을 소개하는 방송이 나왔다. 엄마 데리고 꼭 가보고 싶었는데, 전화해 보니 외래 잡는데 3주 걸린다고 해서 포기했던 선생님이다. 댓글에는 ‘저희 엄마 살려주신 분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하는 내용이 줄줄이 수백개였다. 속만 상했다.  

    

  췌장, 췌장, 췌장 그놈의 췌장. 다시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으면 좋겠건만 언제 어디서 어떻게 튀어나올지 모르는 그놈의 췌장. 아마도 이 지겨운 췌장은 내가 엄마를 사랑하는 만큼의 세월 동안 나를 괴롭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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