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의 면회 횟수 제한이 풀린다는 것은 죽음이 코앞으로 가까웠다는 의미이다. 심박수가 많이 떨어지거나, 혹은 올라가거나, 섬망 증세가 심각해져 마약성 진통제를 투여해야할 때, 그래서 마약성 진통제로 인해 심장이 멎어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호자에게 알려야할 때. 그럴 때 간호사들은 보호자 핸드폰 번호로 전화를 한다. 지금 병원에 계시면 중환자실로 올라오라고 하고, 그렇지 않으면 전화로 동의를 받는다. 엄마의 면회 횟수 제한이 풀리고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전화를 받았다. 벨소리가 울리는 것이 두려워 자다가도 환청에 깨곤 했다. 벨소리와 함께 02로 시작하는 화면을 보면 언제나 심장은 격정적으로 두근거렸다. 투석을 하지 않겠다는 사실은 전화로 알렸고, 연명치료를 하지 않겠다는 동의서는 내 손으로 서명을 했다. 엄마가 죽고 나니 당연하게도 병원에서 걸려 오는 전화도, 격정적으로 심장이 뜀박질하던 순간도 모두 멈췄다.
그때는 그랬다. 언제라도 간호사에게 전화가 오면 달려갈 수 있도록 병원을 지켰다. 집에서 그 전화를 받으면 언제나 꽉 막혀있는 올림픽 대로를 뚫고 병원으로 달려갈 수가 없기에 더 불안해서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밤이 되면 불이 다 꺼진 병원 중환자실 앞 의자를 세 개 이어 붙여 잠을 청했다. 팔걸이가 없어서 노숙하기 좋은 의자는 빨리 선점해야한다. 노숙하는 사람이 나뿐이 아니기 때문이다. 로비로 나가보면 그 시간까지 그곳에 남아있는 보호자들이 많다. 이유를 속속들이 알지는 못하지만 잠을 못 자 까칠해진 낯빛과 어디 편하게 누울 곳이 없는지 찾아보는 느릿한 걸음걸이가 비슷하다. 한낮의 대학병원은 사람도 넘치고 생기도 넘치지만 밤에는 진짜 시름과 걱정만이 남아 어두컴컴하다. 하루에 몇 명이나 이 병원에서 목숨을 잃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그 숫자가 왠지 나에게 위로가 될 것만 같았다.
엄마의 죽음은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다. 벌써 5년이 다 되어가지만 생각만 하면 1초만에 눈에 눈물이 고인다. 그래도 이젠 남들에게 웃으면서 말할 수 있을 정도까진 되었는데, 혼자 생각을 떠올릴 때면 어김없이 눈물이 난다. 전에는 세상에서 내가 제일 슬플 줄 알았는데, 이제는 부모의 죽음을 겪은 모든 사람이 이런 마음이겠거니 한다. 세상에는 더 슬픈 이별도 많다. 갓난쟁이 아이를 잃은 부모도 있고, 생판 모르는 남에게 살해를 당해 가족을 잃기도 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부인을 먼저 보내고 연달아 3년 터울로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보낸 우리 외할아버지만 생각해도 가슴에 묻고 사는 눈물의 양이 나보다 무거울 것 같다.
얼마 전 드라마를 보는데 여자 주인공이 불임 판정을 받고 너무 슬픈 나머지 그 병원 지하에 있는 장례식장으로 가서 대성통곡을 하는 장면이 나왔다. 엄마의 장례를 치르고 보니 슬픔을 씻어내기에 3일은 너무 짧다는 것을 느꼈다. 장례가 끝났음에도 여전히 대성통곡이 필요했던 나는 얼굴도 모르는 이의 장례식에 가 목 놓아 울고싶다는 생각을 여러차례 했었는데, 나만 그런 생각을 하는게 아니구나.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또 있었구나. 내가 했던 생각은 드라마 소재로 쓰일만큼 흔하디 흔한 것이었구나. 그 사실은 왜인지 나에게 위로로 다가왔다. 감당하기 힘들만큼 무거운 슬픔을 눈물로 씻어내기위해 고군분투하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이들이 떠올라 왜인지 든든해졌다. 다들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구나, 살아가고 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