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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녀의 글쓰기

인생의 마취제

by 비유리

엄마의 꿈속 방문은 여전히 빈번하다. 아주 가까이에서 엄마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엄마 얼굴에 기미가 있었던가? 아마도 없었던 것 같은데. 빨간 반점으로 시반이 생기기 시작한 얼굴을 혹여나 잊을까 눈에 담으려고 악착같이 쓰다듬고 들여다보았던 그 기억이 마지막으로 남아 이젠 도무지 엄마의 얼굴에 촘촘히 찍혀있던 것이 기미인지, 시반인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엄마의 육신을 본 것이 5년도 더 지난 일이다.


엄마는 작가의 꿈을 평생 마음에 품고 살았다. 고등학생 때부터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즐겨 집에 남아 있던 엄마의 글이 실린 문집이 여러 권이었다. 대학생 때는 학보사에서 신문을 만들었다. 엄마의 주변에는 항상 펜과 종이가 있었고, 무슨 글이든 썼다. 엄마는 원체 뭔가를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미키마우스가 그려진 줄 없는 엄마의 작은 일기장을 훔쳐본 적도 있다. 그게 왜 그렇게 궁금했던지. 볼까, 말까 망설이다 딱 한 페이지만 읽겠다고 스스로 타협을 하며 조심스럽게 읽었지만, 별 내용이 없어 실망을 했던 기억도 있다.


아빠는 연년생이었던 남동생이 100일도 되기 전에 바람을 피웠다. 내 인생이 언제부터 꼬였을까 거슬러 올라가보곤 하는데, 연이은 되새김질 끝에 이 일을 그 시발점으로 꼽기로 했다. 그러니까 아빠가 유부녀인 동창과 외도를 저지르고, 상간녀의 남편이 야밤에 야구방망이를 들고 우리 집에 쳐들어와 세간 살림을 다 부수었던 그 일을 시작으로 우리 집은 천천히 풍비박산이 났다. 엄마는 결혼 7년 만에 더는 나아지지 않는 아빠와 이혼을 했다. 그리고 나는 불안정한 이혼가정 속에서 열심히 시행착오를 견디며 유년기를 살았다.


오직 불행을 자각하고 있는 사람만이 글을 쓰고싶은 충동에 사로잡힌다는 문구를 읽었다. 글은 자기 자신에 혹은 불행한 현실에 마취제가 되고, 그 글을 읽는 사람도 동시에 자신에게 마취제를 주사한다는 내용이었다. 엄마가 연신 ‘쓰기’에 몰두했던 것이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쓰지 않으면 내 안의 어떤 것이 도무지 해소되지 않는다는 느낌에 어떤 글이든 써온 지가 오래다. 해마다 늘어나는 일기장으로 유년기를 버텼다. 주기적으로 혼자만의 ‘쓰기’ 시간을 갖지 않고서는 도무지 살아갈 수가 없었다. 엄마도 ‘쓰기’를 통해 남편의 외도와 이혼을 거쳐 이혼녀로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빠와 바람난 상간녀의 남편이 우리 집 세간 살림을 다 부순 사건으로부터 20년이 조금 넘게 흐른 어느 날 엄마는 그 일을 글로 써 사람들 앞에 선보이기 시작했다. 브런치를 통해서였다. 사람들은 열광했다. 아마도 비슷한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마취제 혹은 흥분제를 맞은 듯한 느낌이었을까? 엄마는 단숨에 수 천명의 구독자가 생겨났고, 많은 출판사에서 연락을 받아 출간까지 앞두게 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작에 말했듯 엄마는 출간을 며칠 앞두지 않은 채 죽은 몸이 되어 시반이 남은 얼굴이 되었고 작가의 꿈도 함께 무덤 속으로 묻히게 되었다.


갖은 불행이 도사리는 나날 속에서 도무지 글을 쓰지 않고는 살 수 없었던 나는 죽은 엄마와 바람난 아빠를 팔아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쩌면 내가 엄마의 꿈을 대신 이루어줄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나도 엄마가 되었다. 뱃속의 생명은 꿈틀대며 엄마에의 그리움을 더 크게 만든다. 가물거리는 엄마 얼굴의 기미 혹은 시반이 원망스럽다.


열심히 쓴다고 썼지만 아직 제자리에 있는 것 같다. 내가 쓰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그런 것이 꼭 있어야 하는지도. 글을 통해 어딘가로 나아가고자 하긴 했는데 그게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래도 일단 손을 움직이고 있기에 그렇지 않을 때보다는 나아지고 있다고 느낀다. 내 안에 마취제가 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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