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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Feb 13. 2023

기억에 없는 엄마

 "엄마엄마엄마"

 나도 애타게 불렀을 것 같다. 지금 우리 아이는 26개월의 베이비이다. 나의 26개월을 상상해 본다.


 나에게는 동생이 두 명 있는데, 바로 아랫 동생은 2살 터울인데 내가 두 돌을 맞이하기 전에 동생이 태어났다. 그러니 나는 이년이라는 시간 동안 온전한 사랑을 받다가 동생에게 사랑을 절반 뺏겼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엄마를 많이 찾았을지도... 그래도 엄마가 많은 사랑을 주려고 노력했나 보다.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부모님의 사랑이 부족했다 생각했던 적은 내 기억에는 없다. 그러니 나는 동생이 태어났어도 충분한 사랑을 받았을 것이다. 아니, 할머니가 있어서 그 사랑을 채워주었을 수도 있다. 커서 들어보니 동생이 태어나고 나는 할머니랑 밤에 잠을 잤다고 한다. 나를 충분히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이 할머니라는 걸 나는 동물적인 직감으로 알았나 보다. 그렇게 할머니에게 붙어 있어다고 하니 나는 충분한 사랑을 받았을 것이다.


그리고 6년 뒤, 또 동생이 태어났다. 내 나이 9살 때. 그때를 기억하자면 아직도 서글프다.

그날은 운동회날이었다. 엄마는 내가 달리기 하기 전에 온다고 신신당부를 했고, 김밥을 싸가겠다며 아침부터 분주하게 김밥을 싸고 있었다.

 "엄마 이따 봐."라고 나는 학교에 갔고, 엄마는 오지 못했다. 앞집 이모가 엄마가 아침에 분주하게 싼 김밥을 들고 왔다. 그리고 엄마가 동생을 낳으러 병원에 갔다고 했다. 그 당시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명 나한테 온다고 했는데 갑자기 동생을 낳으러 갔다는 이 상황을... 그렇게 엄마는 일주일 뒤에 집에 왔고 나는 운동회날의 일을 까먹어서 엄마에게 따지지 못했다.


그리고 장작 22년 뒤, 나는 지인과의 브런치 약속을 1시간 전에 "미안하다. 양수가 샌단다. 나 입원해야 해."라는 말을 끝으로 출산의 길에 들어섰다. 그 순간 운동회날 엄마가 생각났다. 아마 엄마도 이렇게 급작스럽게 출산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앞집 이모에게 김밥을 가지고 가서 부탁을 할 시간이 있었을까? 딸과의 약속이 그 순간에도 생각이 났을까?


 엄마는 삼일의 진통을 견뎌내고 동생을 낳았다. 나는  삼일의 진통을 견뎌내지 못하고 수술을 했다. 누가 위대하다 대단하다를 가늠할 수는 없지만 나는 수술실에 걸어 들어가며 생각했다.

 "와, 엄마는 이걸 어떻게 세 번을 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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