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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Jun 19. 2023

제주살이 2일 차

23.06.19. 31개월 아이와 단둘이 제주에서

아침마다 숙소에서 말타기체험이 있다. 아침에 눈을 뜨더니 누워서 빈둥빈둥거리던 아이는 엄마도 옆에 누우라고 손가락을 까딱한다. 나는 다가가서 누웠다. 그리고는 속삭였다. 

 "밖에서 말 탈 수 있다는데 가볼래?"

 "싫어. 하기 싫어."

 단호하게 싫다고 말하는 아이에게 나는 그럼 구경이라도 가자고 재촉한다. 마지못해 모자를 쓰고 나온 아이는 말을 보더니 흥분한다. 작은 말을 보고 타겠다고 했다. 대기석에 앉아 기다리며 아이는 '밀키'이야기를 한다.


밀키는 아이가 예전에 탔던 조랑말 이름이다.


내가 이 말은 밀키가 아니라고 하자, 아이는 사장님에게 묻는다.

 "사장님, 이 말은 이름은 뭐예요?"


새삼 놀랐다. 매일 우리 뒤에 숨어서 비비적거리던 아이가 제주생활 이틀 만에 먼저 다가가서 질문을 한다. 요즘 들어 질문이 많아진 것도 있지만 그래도 이렇게 나서는 아이가 아니라서 아침부터 놀랐다.


오늘은 낚시체험을 하기로 해서 10시쯤 나갈 준비를 했다. 낚시라는 이야기에 아이가 조금은 기대를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정작 낚시체험공간에 가니 아이는 기대이하였는지 30분 만에 집에 가자고 했다. 그래도 인증샷을 다 찍었다.


낚시체험이 끝나고 이동하는 차 안에서 아이는 나에게 넌지시 말했다.

 "아빠, 이제 네 밤 자고 오는 거야?"

 "응. 네 번만 자면 아빠 비행기 타고 올 거야."

 "엄마, 우리 그냥 비행기 타고 우리 집 가면 안 돼?"

 "우리가 비행기 타고 제주도 왔는데 비행기 타고 집에 가고 싶어?"

 "응. 아빠 있는 집 가고 싶어. 아빠 보고 싶어."

속으로 울었다. 아빠가 보고 싶은 것을 이렇게 아빠가 있는 집에 가고 싶다고 표현하는 것에도 아이의 마음이 느껴졌고 조금은 가혹하게 아빠랑 생이별을 시킨 건가 싶어 조금 나도 서글펐다. 그래도 또 간식을 찾는 것을 보니 그새 아빠는 잊은 듯하다.


아이와 붕어떡을 먹으러 카페에 가서 당근주스를 먹었다. 아이가 당근주스를 너무 좋아했다. 맛있다며 계속 먹었다. 제주는 무엇이든 맛있게 만드는 힘이 있다. 붕어떡이 5개가 나왔는데 다 못 먹고 2개는 포장을 했다. 언제 먹을 거냐고 물어봤더니 나중에 먹는다고 했다. 아마 그 나중에라는 건 아이가 정한 나중이라는 시간에 나에게 알려줄 것이고 아이는 그 떡을 잊지 않고 있을 것을 알았다. 그래서 고스란히 한 곳에 두었다.


곽지해수욕장에 갔다. 숙소에서 모래놀이를 하다 왔지만 바다에서 하는 모래놀이에 한껏 들뜬 아이를 보니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파도가 무서웠는지 저 멀리 모래언덕에서 놀기 시작했다. 점점 앞으로 나아가더니 결국 파도에 맞서서 나아갔다. 물을 많이 좋아하는 아이는 그렇게 오늘도 바다와 한 몸이 되어 즐겁게 놀았다. 혼자 아이를 케어한다는 건 바다에서는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라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거기에 내가 준비한다고 준비했지만 빠진 것들이 있어서 난감했지만 그래도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라는 심정으로 아이를 케어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 시간 반정도를 모래놀이와 해수욕을 한 아이는 춥다는 말과 함께 집에 가겠다고 했다. 이제 속도전이다. 아이가 춥다는 말을 했기에 얼른 대충 씻겨서 수영복을 벗기고 옷으로 갈아입혀야 한다. 진짜 100m 달리기 전력질주 하듯이 아이의 옷을 벗기고 씻기고 갈아입혔다. 미션 클리어!!


그리고 카시트에 앉은 아이는 나에게 넌지시 말했다.

 "엄마, 아까 남은 붕어떡 먹고 싶어요. 당근주스도 같이요."

말을 어쩜 이렇게 조근조근 잘할까? 아이의 31개월의 일생에서 그 무엇이 아이의 말하는 습관을 이렇게 만들었는지 조금은 생각해 봐야겠다.


그렇게 아이와 오는 차 안에서 아이는 또 바다를 보고 산을 보았다. 그리고 나에게 또 넌지시 말했다.

 "엄마, 제주 너무 좋아요. 아빠 네 밤 자고 오면 여기 또 오고 싶어요."


아이의 말에서 나는 사랑을 느꼈다. 어제도 자기 전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꼭 안아주면서 6번은 하고 잤다. 그리고 그냥 가만히 쳐다보면 좋다는 말을 자꾸 한다. 진짜 좋은가 보다. 아이가 지금의 감정을 표현해 주는 것이 너무 고맙다. 심심하다, 좋다, 즐겁다, 또 오고 싶다, 가고 싶다, 싫다 등등 하루에도 오만가지 표현을 하는 아이가 너무 고맙다.


제주살이 이틀째, 아이가 많이 성숙해짐을 느낀다.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자기 전까지 재잘재잘 거리던 아이의 말에서 어느 하나 헛된 소리가 없는 것 같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지금의 상황을 직시하여 자신이 해야 할 행동이나 생각을 나에게 말해주는 것도 아이가 제주 와서 더 표현한다. 엄마랑 단 둘이 있기에 조금은 기다려야 하는 상황과 조금은 더 조심해야 하는 상황등에서 아이는 자신이 해야 할 행동을 미리 알고 있는 듯하다. 엄마와 단둘이 온 제주라 조금은 위축되지 않을까 하고 싶은 것을 100% 온전하게 하지 못해서 속상하지 않을까 싶지만 그 안에서 아이는 많은 것을 느끼고 더 많이 생각하는 힘이 길러진 것 같다. 아이와 함께 지내는 이 시간이 쌓이면 아이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이 커서 돌아갈 것 같다.


나도 그만큼 더 자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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