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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Jun 20. 2023

제주살이 3일 차

2023.06.20. 비 오는 날 아이와 단둘이

일기예보를 이렇게 자주 쳐다본 적이 있었나? 일상을 살아가면서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지 않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나의 일상은 거의 변함이 없다. 그냥 날씨가 궂으면 아이의 등하원길이 조금 버겁다는 것뿐?


제주를 오니 자꾸 일기예보를 보게 된다. 일기예보를 보고 오늘과 내일을 준비한다. 어제부터 비로 그려진 날씨는 아침에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더니 점심때가 지나니 본격적으로 오기 시작했다. 비가 오기 시작할 때, 우리는 뽀로로앤타요테마파크에 들어갔다.


비가 오면 한 번은 가야겠다 생각했지만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 몰랐다. 또 이것도 운인 건가? 오늘 아니면 비가 없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은 비를 만나서 아이와 실내 놀이를 할 수 있는 것도 행운인 것 같다. 뭔가 날씨가 좋은데 실내에서 논다면 아쉬운 느낌이니까...


아이는 들어가기 전부터 텐션이 업되었다. 입장하자마자 눈이 동글해지고 뛰기 시작했다. 그렇게 아이와 신나게 놀았다. 아이를 따라가기 바빴다. 아이는 이것도 타고 싶다, 저것도 타고 싶다 하여 하나하나 줄을 서서 탔다. 줄을 서서 타야 하는 것도 알지만 먼저 타고 싶은 아이의 심정을 헤아려주는 것도 나의 몫이었다. 아이와 줄을 서서 이런저런 이야기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그래도 평일이라서 그런지 줄이 그렇게 길지 않았고 100cm 이하의 키를 가진 아이와 같이 타야 하는 놀이기구가 많았다. 그래서 같이 타면서 더 많이 즐겼던 것 같다.


아이가 이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다. 그냥 뽀로로다, 타요다 하고 끝날 줄 알았는데 아이는 이 환상의 세계를 완전히 믿는 느낌이었다. 무언가 산타할아버지를 믿는 어린이처럼. 뽀로로가 실존인물인 것처럼 믿는 유아가 되었다.


그 환상을 언제까지 지켜줄 수 있을까? 나는 언제까지 산타할아버지를 믿었었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더 슬픈 건 크리스마스 때 선물다운 것을 받아본 기억도 없다는 것이다. 엄마아빠에게 사랑을 못 받은 건 아니지만 그런 건 잘 안 챙기는 부모님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6시 문을 닫을 때까지 아이와 신나게 놀았다. 이곳저곳을 누비며 이것저것을 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오길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했고, 기분 좋게 저녁도 갈치를 먹고 들어왔다.


아침에는 뽀삐(조랑말)를 탔다. 내일은 유월이(말)를 타고 싶다고 한다. 비가 안 와야 할 텐데...


비가 오는 제주는 한 없이 고요하다. 유월의 제주는 소리 없이 한적하다. 내가 조용한 곳만 다녔나? 아이와 함께 갈 수 있는 공간들의 한적함이 좋다. 관광지처럼 붐비는 곳에서 느끼는 아름다움도 있지만 한적하고 고즈넉한 공간에서 느끼는 아름다움 또한 너무 좋다.


아이가 내일은 엄마와 산책을 하고 싶다고 했다. 비가 내린 흙길을 걸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또 나는 내일을 계획하고 아이와 여유로이 제주살이를 이어가 본다.


여행과 살기의 그 중간 어딘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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