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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바람 Mar 28. 2024

트라우마 #6

인생의 불편함 참아내기

 외상 후 성장. 나는 사건 이후로 외상 후 성장 길을 걷고 있다. 그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하는 다른 평행우주(?)를 상상해 보곤 하곤 하는데. 결국 내가 이겨냈고, 걸어가고 있는 현실은 이 길이니 더 이상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프리다이빙 강사가 됐다. 사건이 없었으면 상상도 하지 못했을 기회이자 부업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강사과정을 하나씩 밟는 동안 많은 것을 배웠다. 인내를 배우고 이해를 배우고, 인생을 배웠다. 나의 강사님이 프리다이빙과 인생을 비유한 말들이 머릿속에 잔류한다.


"너 물속에 들어가면 불편하지? 사람들이랑 있는 것도 똑같아. 사람 대하는 거? 진짜 불편해 근데 그 불편함을 견뎌내는 법을 알아야 하는 거야."


그 수많은 말 중에 이 말이 생각난다. 물이 나를 안아주는 감각 그 감각에 프리다이빙을 시작했는데, 갈수록 물은 나를 너무나도 세게 안아왔다. 게다가 무호흡으로 하다 보니 물안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괴롭게 다가오기도 했다. 폐가 조여들어가는 느낌이 나를 물밖으로 박차 오르게 만든다.


 실은 강사과정을 하며 사람들과의 관계가 불편하기도 했다. 내가 속한 곳은 하나의 사회였으며 단체였다. 그 사이에서 나의 어떤 행동이라도 모든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환경이 내게 썩 좋진 않았다. 또한, 사건 이후 아직까지 좋지 않은 건강 상태를 이해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내가 말을 하고 싶지 않아 굳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을뿐더러 선뜻 먼저 내게 다가와서 묻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나라는 사람에 대한 오해가 생기기도 했다. 수면제를 먹고 수면시간 조절을 못하고,  진정제를 먹고 멍하니 있으며, 주면 인지를 못하고 일을 쉬고 있는 모습이 참 남이 봤을 때 좋은 모습이진 않았다. 성실하지 못하고 게으른 사람. 자기 관리 못하는 사람. 원래 내가 이런 모습이었나. 하며 자기 혐오감을 느꼈다.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순 없듯, 그 단체 내에서도 나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심지어 내가 용인 딥스테이션(36m깊이의 풀장)에 티칭 시험을 보러 갔을 때 날 떨어뜨리겠다는 그 의지 하나만으로 새벽부터 차를 타고 광주에 와서 정말 나를 떨어뜨린 사람도 있었다. 그냥 웃어넘긴 해프닝이지만 말이다.


 물속에서 오래 머물기 위해선 여러 요소들이 필요하지만 그중 하나, 호흡충동을 견뎌내야 한다. 몸 안에 내가 가지고 들어간 산소가 이산화탄소와 기체교환을 하면서 몸 안에 이산화탄소가 쌓이게 된다. 이로 인해 횡격막이 딸꾹질을 하듯 당겨지는 현상이 발생하는데 이걸 컨트렉션이라 한다. 뇌가 계속해서 호흡을 하라고 몸에 신호를 준다고 생각하면 된다. 처음에는 이 컨트렉션이 오면 몸에 힘을 잔뜩 주게 되고, 놀라서 물에 올라오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트레이닝을 하면서 익숙해지면 내 기술대로, 그 컨트렉션을 다스릴 수 있게 된다. 사람과의 관계도 그와 같았다. 참 불편하고, 싫고, 다신 쳐다보기도 싫고 그랬는데, 그걸 인내하고 이겨내는 법을 배우니 유하게 넘기게 됐다.


최근에는 이런 말이 들렸다.  "걘 보면 죽으려고 프리다이빙하는 것 같아" (나를 향한 말은 아니었다.)


 프리다이빙을 처음 했을 때가 생각난다. 물에서 죽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던 그 과거의 사고가 프리다이빙에도 적용이 됐었다. 죽으려고 시작한 서핑. 그 사고가 프리다이빙에도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프리다이빙에는 스태틱이라는 종목이 있다. 물속에서 차분히 릴렉스를 하고 한 호흡으로 수중에서 얼마나 오래 있는지를 시간으로 기록하는 것이다. 그걸 하는데, 내가 숨을 쉬고 싶어서 올라오더라. 그때 느꼈다. 그렇게 죽고 싶었으면서, 이마저도 살겠다고 올라오다니. 결국 난 살고 싶었던 거였다. 잘 살고 싶은 거였다.


 작년 내 생일 형사소송이 2심 결과가 나왔다. 날짜도 참 거지 같다. 하필 내 생일이라니. "이게 선물이 될지 안될지는 기다려봐야 아는 거야" 하면서 마음을 졸이던 기억이 난다. 그때 참 건강 상태 안 좋았다. 그냥 집구석에 박혀 우울해하느니, 프리다이빙 하러 가야겠다 하며 내 생일 선물 겸 보홀에 갔다. 그 곳에서도 많은 경험을 하고 배웠지. 그제서야 내가 프리다이버가 된 느낌이었다.

 민사소송을 위해 변호사님과 미팅을 잡아놨다. 그리고 4월엔 또다시 보홀에 간다. 수심시합에 참여하는 목표가 하나, 그리고 수심 목표를 달성해 강사 레벨업을 하는 것 하나. 저번에 못 본 고래상어랑 거북이도 보고 싶다.

 울릉도로 가는 크루즈를 운영하는 지인이 시합에 협찬도 하고 싶다고 한다. 다시 인생이 수월하게 풀리는 것도 같고, 이제 무언가를 해낼 마음의 근력도 조금씩 붙고 있다.


 아직 그 사건에 대해 생각하면 심장이 콩닥콩닥 하면서 불안증이 올라오고 숨이 턱 막히기도 한다. 하지만 이젠 그 또한 컨트렉션처럼 내리는 방법을 배웠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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