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ya Sep 05. 2022

안동






안동은 철학의 도시이다. 자꾸만 질문이 새어 나오게 만든다.


“왜 안동은 버스가 하루에 3대만 다닐까?”

“왜 같은 안동인데 2시간이나 더 가야 할까?” 

“왜 우리 화장실은 10m나 떨어져 있는 거야?”


끝없는 기다림은 여유보다는 조급한 질문을 낳았고, 고단함은 우리를 노래(실성)하게 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지만 7년만 지나서일까 안동은 무심할 정도로 그대로였다. 3년 뒤에 다시 와야지. 차를 가지고.





안동에는 열매가 많았다. 포도, 대추, 옥수수, 자두, 감… 그늘이 없어 햇빛을 맘껏 받아서 그랬을까 제각각의 동그란 열매가 틈틈이 눈에, 발에 밟혔다. 베어 물고 싶을 때마다 사진을 찍다 보니 식물도감을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열매가 모이면 장난스러운 식물도감을 만들어봐야지. 여름 동안 부지런히 열매를 모을 예정이다.





아이의 손은 촉촉하다. 눈도, 말도 촉촉하다.


고사리 손으로 내 손을 잡고 사과나무도 블루베리도 보여줬다. 조금은 느슨하게 잡은 내 손이 너무 건조해서 꽉 잡지 못했다. 아이의 말은 물 같아서 단단한 형태를 가지지 못하고 흩어진다. 흩어진 말들은 의미를 전달하지는 못하지만 분명 그것보다 더 큰 무언가를 전달한다. 나는 아이의 눈에 맞춰 다리를 구부렸고, 흩어진 말을 이해하려고 애썼고, 고장 난 장난감을 계속해서 고쳐줬다.


그리고 마음속에 끊임없이 맴도는 말을 했다. “너 정말 귀엽구나!”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아이스크림은 탱크 보이다. 안동에서 깨달은 가장 큰 사실이다.


우리는 그늘이 없는 마을을 산책했고 하필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뒷짐을 지고 느긋하게 걸으며 양반의 삶을 상상했다. 허허벌판이라 집에서 책만 읽을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둥, 왜 옛날 사람들이 지칠 때 노래를 불렀는지 알 것 같다는 둥의 대화를 나눴다. 시골마을의 낭만은 한 시간 만에 작열하는 태양과 함께 사라졌고, 속세의 낭만은 탱크보이와 함께 살아났다. 그래… 조선시대 사람들은 탱크보이 없었을 거야 하면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아이스크림은 빠삐꼬도 아니고 폴라포도 아니고 탱크 보이다.

















아저씨들은 유독 말이 많다. 나는 유독 그 말들을 좋아한다.


아이스크림을 사는 그 짧은 시간에 아저씨의 딸들 나이와 직업까지 알아버렸다. 아저씨들의 직업도 상황도 나이도 다르지만 레퍼토리는 늘 똑같다. 자식 자랑 아니면 지식 자랑이다. 그럼 나도 늘 비슷하게 대답한다. 어떤 아저씨라도 상관없이. 나는 그 진부한 열망을 사랑한다. 각자에게는 특별한, 다른 사람에게 얼른 내보이고 싶은 열망 같은 것을 사랑한다. 그럴 때 아저씨들은 말이 빨라지고, 많아지고, 길어진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얘기하는 것처럼.


안동에서 만난 두 아저씨. 아이스크림 아저씨와 택시 아저씨.

그리고 안동에서 만난 두 구세주.


나는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두 아저씨 얘기를 내보이고 싶은 열망을 느낀다. “내가 안동에서 어떤 아저씨들을 만났는데 말이야!”







“이렇게 손 올리고 있으면 깔따구들이 얼굴 주변으로 안 오고 손 쪽으로 모인대. 짝짓기 하는 약속 장소를 사람 정수리로 잡아두는데, 이렇게 손을 올리고 있으면 거기가 정수리인 줄 알고 거기에서 모인대.” 얼굴 주변에 깔따구들이 모이는 것도 괘씸한데 짝짓기를 한다니 더 괘씸하다. 많고 많은 곳 중에 왜 하필 정수리일까. 우리는 언덕을 올라갈 때까지 손을 들었고 나름의 효과를 봤다. “기분 탓인지 모르겠는데 얼굴 쪽으로 안 오는 것 같아!”










느긋한 병산서원에서 달려 다니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지 않았을까. 병산서원과 30분이라는 시간은 너무도 어울리지 않았다. 택시 아저씨는 다음 목적지로 출발하기 전에 30분이라는 시간을 주셨고 그 순간 아저씨가 구세주에서 인색한 사람으로 느껴졌다. 30분이 지나면 떠나버린다는 아저씨의 말에 우리는 뛰었고, 조급했고, 아쉬워했다. 사람들은 마루에 앉아 사색에 잠기기도, 누워있기도, 여유롭게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우리는 아쉬움을 남긴 채 병산서원을 나왔고 그 말도 잊지 않았다. “아쉬울 때 떠나야 더 좋은 법이지!” 29분에 맞춰 도착한 우리를 보고 아저씨는 감탄하면서 아쉬워했다.













카메라가 주머니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카메라를 어깨에 메고 집을 나서면 그날 부지런히 주워 모은 장면들로 마음도, 메모리카드도 든든하다. 우리는 각자의 주머니를 메고, 각자의 시선대로 장면을 모아 왔다. 나는 안동의 열기를, 열매를, 여운을 그리고 영감을 담아왔다.




작가의 이전글 film `0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