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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ya Jun 08. 2022

루이지 기리의 사진 수업



보이지 않는 영역 


사진은 무엇을 보여주기 위함이지만 또 보여주지 않는다. 그리고 그 보이지 않는 영역이 우리 안에 있는 이미지들을 끊임없이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닫힌 문의 이미지를 보고 문 너머에 대한 풍경을 상상하고, 누군가의 가족사진을 보며 사진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들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해변가 사진을 보며 잊고 있던 휴가의 기억이 되살아나기도 한다. 그렇게 사진은 시처럼, 노래처럼 우리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면을 보여준다. 그래서 루이지 기리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균형을 맞추고자 했다. 





사진의 본질은 내가 보는 넓은 시야에서 작은 부분만을 담아내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담아야 하고 무엇을 배제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내 시야에 담긴 큰 정원을 찍을 때 정원의 조화로운 조형미나 나무 한 그루, 혹은 남들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 꽃 한 송이만을 담을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 사진을 '왜' 찍어야 하는지 알아야 한다. 


"그에게 사진은 사물에 어떤 존엄성을 부여해야 하는 것이었고, 그는 그것들을 아무것도 쳐다보지 않는 사람들의 성급한 판단과 도식에서 벗어나게 해야 했다."


루이지 기리에게 사진은 모두가 무관심한 사물에 존엄성을 부여하고 그것으로 하여금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불러일으키는 것이었던 것 같다. 나에게 사진은 순간에 대한 기록뿐만 아니라 이야기에 대한 기록이었으면 좋겠다.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닌 읽을 수 있는 사진이기를 바란다. 꼼지락대는 발의 사진을 보고 그 여행의 설렘을 읽고, 호수의 윤슬에서 당시의 안온함이 읽히길 바라는 마음으로 사진을 찍었고, 찍을 것이다.





카메라라는 언어


우리가 '왜' 사진을 찍는지 알았다면 '어떻게' 찍어야 하는지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사진을 잘 찍기 위해서 누군가의 사진 기술을 훔쳐오는 것과는 달라야 한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우리의 감정을 다 표현하지 못하는 것처럼 카메라라는 언어의 한계를 배워야 한다. 빛과 어둠에 대해 공부하고 사진 크기에 대한 여러 가지 시도들도 필요하다. 그런 과정은 우리가 사진을 잘 찍는 것이 아니라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잘 담을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광학 이미지 (사진, 영화, 비디오)를 자주 접해 익숙해져 있습니다. 그러나 수세기에 걸친 회화, 조각, 건축의 시각예술 역사에 비하면 광학 이미지의 경우 아직 성장기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유형은 새롭고 신선하지만 일관성 없이 전개되는 인상을 줍니다. 그렇지만 좀 더 쉽게 현실과 교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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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 사진은 내가 본 것의 증거이기도 하지만 내가 본 것의 재해석입니다. 근본적으로, 사진은 세상에 대한 한 사람의 인식을 나타내죠. 사진 이미지에 존재하는 모든 수수께끼와 신비한 요소들이 이 재해석에 포함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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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교류는 더욱 가속화되어 이미지의 내면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외부로부터 전해진 시각적인 영향은 의식과 무의식을 통틀어 우리의 기억에 흔적을 남깁니다. 그 흔적은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행동과 감각으로 나타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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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언제나 세계의 아주 일부분만 드러내기 위해 나머지 세계를 배제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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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심각한 문제들 가운데 하나는 거대한 시각적 재난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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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 이미지의 경우 99퍼센트가 얼굴로 채워집니다. 주변 공간은 절대 나타나지 않죠. 우리가 사는 공간을 부정하는 이 현상은 역사적으로 볼 때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공간은 물론 환경과 교류하지 못하는 현대인의 모습은 표현의 결핍과도 상응하니까요. 아마 이로부터 환경과 생태 문제에 무관심한 태도로 이어질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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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는 우리 눈이 24시간 내내, 다행히 우리가 자는 동안에도, 일상적으로 행하는 기능을 기계적으로 모방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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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는 늘 주관적으로 대상을 바라보니까요. 그러나 카메라는 자기 본위의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진가는 손에 든 이 기계를 최대한 활용할 줄 알고 그 한계를 아는 것이 중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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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는 투명하지 않은 연필을 도구로 사용하지만, 사진가의 사진은 빛과 투명성을 통해 구성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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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는 연필과 다릅니다. 글쓰기를 배우는 일이 중요하지, 연필에 좌우되지 않으니까요. 사진은 빛으로 써 나가는 글쓰기이기 때문에, 카메라라는 대상을 통해 빛으로 글을 쓰고 읽는 법을 깨우치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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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근본적인 문제는 내가 표현하고 싶은 바와 이미지로 소통하는 바를 정확히 아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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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서 결정적인 문제는 관찰자로서 바라보는 무한한 공간에서 작은 사각형, 직사각형, 원형으로 부분을 잘라내는 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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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본질적으로 외부세계를 지워 나가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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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의 크기를 선택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왜 제 사진이 대부분 중간 사이즈일까요? 큰 사진에서는 모든 것이 뚜렷하게 보입니다. 나중에 손봐야 할 세부적인 것까지도 나타나죠. 이 경우 오히려 이미지의 요소를 과하게 드러내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대형 사이즈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너무 많은 것들이 보이니까요. 이미지의 매력은 보여야 할 것과 반드시 보일 필요가 없는 것 간의 균형에도 있습니다. 현실의 복사물이 되어서는 안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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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사진은 사물에 어떤 존엄성을 부여해야 하는 것이었고, 그는 그것들을 아무것도 쳐다보지 않는 사람들의 성급한 판단과 도식에서 벗어나게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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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을 축소하고 고정하기 위한 모든 장치들은 도시 문명 없이 생겨날 수 없습니다. 도시 문명은 거꾸로 바뀌는 세상을 봐야 할 필요성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마치 이중으로 보이는 세상처럼 말이죠. 하지만 농촌에서는 전복된 세상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시골에서는 어디서나 그런 세상이 보이니까요. 웅덩이, 우물, 연못, 그림자를 통해 거꾸로 된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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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각자의 이미지가 다른 이미지들을 불러온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독자적인 이미지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이미지는 자기 안에 다른 무언가를, 즉 다른 이미지, 사진, 시각, 외적인 모습에 대한 기억의 흔적을 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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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시기에 기리는 사진 작업을 시나 음악과 같은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비유해 생각했다. 그는 사진 촬영을 다닐 때 항상 음악을 들었다. 말년의 한 인터뷰에서 시선과 음악의 닮은 점을 말하기도 했다. 양쪽 모두 한계를 넘어서려는, 보이지 않는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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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있다는' 느낌은 마치 일상생활, 즉 모든 신비가 추방당했다고 믿었던 바로 그곳에 덜컥 발을 들인 무언가와 같다. 기리는 이렇게 말하면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이 느낌이야말로 한 편의 시나 그림, 노래, 사진에 요구할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루이지 기리의 사진 수업 > 22.05.02 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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