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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ya Aug 08. 2022

지속의 순간들

제프 다이어



“대상이 윤이 나는 강철이든 살아 숨 쉬는 살갗이든, 카메라는 삶을 기록하고 사물 그 자체의 본질과 정수를 표현하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



사진에는 어떤 대상에 초점이 맞춰있지만 우리의 삶은 대체로 그렇지 않다. 여러 곳을 바라봄과 동시에 아무런 곳도 응시하지 않는다. 그런 삶을 사진으로 담아내기 위해선 나는 어디에 초점을 맞출 수 있을까.


누군가가 찍은 사진을 오랫동안 보게 되는 경우가 있다. 사진 속에 찍힌 낯선 사람과 낯선 장소에 익숙한 감정이 들 때 사진을 ‘보기’보단 오래 ‘읽게’된다. 사진이 찍히기 전후를 상상하고, 낯선 사람의 감정을 읽어보고, 사진 속 계절과 시간대를 짐작해 보면서. 읽히는 사진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들려주고, 없었던 기억을 짐작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삶을 표현한다. 사진에 ‘생각하는 누군가’를 단순히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생각’을 온전히 담아내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지만 사진에 찍힌 사람이 아니라 사진을 바라보는 사람에게 새로운 감정과 생각을 불러일으키기에는 충분하다. 나도 그런 순간 담기 위해,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사진을 찍는 것 같다. 내가 찍은 누군가의 손짓이 그 사람의 표정을 짐작하게 만들고, 나무의 그림자가 찍힌 계절과 시간대를 생각하게 만들고, 누군가의 뒷모습을 보고 그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상상해 보기를 바란다. 모든 예술이 화면 너머의 것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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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에서 자주 쓰이는 글감처럼 사진에도 끊임없이 등장하는 ‘소재’들이 있다. 그런 소재들(모자, 문, 주유소, 계단 같은)은 시대나 장소와 상관없이 다양한 사진에 등장해서 마치 모든 것이 사라져도 그것들은 영원할 것만 같다. 또 모든 것이 생겨나기도 전에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책의 어떤 페이지를 펼쳐도 놀라울 것 없는 사진들은 우리에게 진부한 의미를 전달하기도 하지만 또 언제 펼쳐도 늘 같은 해답을 내려주는 고전 같은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항상 독창성을 좇는 사진작가들이지만 늘 같은 소재들이 반복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 아닐까. 우리의 삶의 문제가 반복되는 것처럼 그 문제의 해답 또한 반복적이다. 매번 새로운 해답을 찾길 원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같은 대답을 듣길 원하기도 한다. 그래서 고난과 희망을 이야기하는 계단의 사진이, 죽음과 삶을 이야기하는 문 사진이 영원히 ‘지속’될 것 같다. 짧은 시간에 순간을 담는 일은 무의식과 가깝고, 실제를 담는 일은 현실에 닿아있을 수밖에 없다. 사진은 어떤 창조보다 무의식인 동시에 현실적인 이야기를 전달한다.




나는 사진을 자의적이고 우연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싶었지만, 어느 순간 사물들이 어쩔 수 없이 내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특정 영역으로 합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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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사체를 속이는 것만이 피사체에 진실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자신을 찍고 있는 것을 모를 때 존재의 본질을 담을 수 있다고 느꼈다.”라고 그는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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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남자는 “사진가와 똑같이” 구석에 틀어박힌 채 숨어서 기다리며 “무엇이든 새기고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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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세상이 완전히 시각적인 만큼 그(눈먼 연주자)의 세상은 완전히 음악적이다. 음악이 그가 더 이상 볼 수 없는 것을 떠올리게 한다면, 사진은 우리가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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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자신의 피부를 뚫고 나와 다른 사람의 피부 속으로 들어가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게 이 모든 것이 조금이나마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불행은 당신의 불행과 같지 않다.” 그렇지만 동시에 “모든 차이점은 닮은 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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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진에서 볼 수 없는 것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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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은 자신만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사실 손에는 자신만의 문명과 자신만의 특별한 아름다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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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가치는 연대순이나 시간순으로 평가할 수 없다. 만약 그렇다면 죽기 전 몇 초 동안 어떻게 느끼는지가 유일하게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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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상이 윤이 나는 강철이든 살아 숨 쉬는 살갗이든, 카메라는 삶을 기록하고 사물 그 자체의 본질과 정수를 표현하는 데 사용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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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 그동안이라는 것은 없다. 그때는 그 순간이 있었고 지금은 이 순간이 있을 뿐, 그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다. 사진은, 어떤 면에서, 연대순에 대한 부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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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는 사람이든 사물이든 끝이 없다는 이상한 규칙이 있는 것은 아닌지 슬슬 의심이 든다. 죽거나 사라지고 난 후에도 몇 년이 지나면 환생하여 다른 렌즈 앞에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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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가의 관점에서 보면 창문을 통해 거리를 내다보는 것은 세상 속으로 들어가지 않으면서 세상에 속할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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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부재의 느낌은 비어 있는 해먹 때문에 느껴지는 것이 확실하지만 이는 사실상 덜 유형적인 부재, 즉 흑백이기 때문에 훨씬 더 생생하게 전해지는 색의 부재를 상징한다. 아마도 이것이 이 이미지가 만족감과 갈망을 동시에 담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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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의도 역시 무언가가 사진에 찍히면 어떻게 보이는지 그리고 사진에 찍혔다는 사실이 그것을 어떻게 바꾸어 놓는지를 알아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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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거리는 당신을 머물게 하지만, 도로는 끝없이 떠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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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을 보고 있으면 사진 속에 보이는 거리를 따라 걷는 듯하다.”는 말은 사실 맞지 않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사진을 보면, 호텔에 있는 방으로 돌아와 비가 내리는 길을 내려다보기 전 이 길을 따라 걸었던 것 같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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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부에도 그들의 내부가 있고, 외부에도 그들의 외부가 있으며, 시각에도 또 다른 시각이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속의 순간들 - 제프 다이어> 22.08.07 완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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