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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na Jun 20. 2022

연극 수업

재미있겠다고 말한 건 순전히 남의 얘기처럼 들었기 때문일까.

   

아는 책방 사장님이 낭독극을 준비하고 있다며 하루 수업을 해볼 텐가- 하셨다. 나란 사람, 그래도 칠 년 정도의 연극공부와 작업을 했고 교직 실습을 거쳐 중등학교 정교사 2급 자격증을  가지고만 있는 사람이었다. 수업을 해본 적은 손에 꼽을 정도지만 아는 것을 알려주는 일은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주의기도 하고 특히 연극은 나의 즐거운 일 범주 안에 가장 우선순위에 있으므로, 그런 날이 온다면 한번쯤 해보겠다는 생각이 머릿속 어딘가에 깔려있었다. 그렇다고 무조건 수업을 하겠다는 건 아니었는데, 사장님이 너무 가볍게 이야기해서일까. 나도 너무나 가볍게 생각해보겠다- 에서 알겠다- 로 자연스레 대답을 해버리고 말았다. 아- 나의 가벼운 입이여.     


낭독극 소개, 낭독방법, 낭독 연습. 이렇게 세 가지를 중점으로 수업내용을 구성해달라는 게 주최자의 간단한(?) 요구였으나 (어느새 우리 사이는 갑과 을로) 나는 이미 열 가지도 넘는 수업 방법과 내용을 고민하느라 복잡했다. 성별과 연령대가 다양한 건 물론이고 연극이나 연기를 접해본 경험이 없는 분들이다 보니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의 범위로 수업을 진행해야 할지 막막했다. 깊이가 너무 깊으면 지루할 것 같고, 그렇다고 너무 얕으면 시간 보내기 밖엔 안 된다 싶어 조절하기가 힘들었다. 거기다 오랜만에 수업을 준비하려니 오랫동안 보지 않았던 전공서를 느닷없이 탐독하고 책방에 출근해서도 희곡을 읽고 또 읽고, 난리도 아니었다. 이걸 알려주려고 하니 이걸 알기 위해선 저걸 알아야 하는데 싶고, 이론을 많이 하면 지겨울 거 같은데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고, 실습은 무조건 해봐야 하는데 처음 만난 낯선 자리에서 선뜻 하겠다고 나서지 않으면 어쩔까 싶고. 내가 보여주는 연기가 그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면 나는 제대로 망했다는 절망적인 생각까지. 생각에 생각을 더해 생각 산을 만들다 보니 처음 가졌던 재미와 흥미는 사라지고 부담만 남아 수업준비가 솔직히 점점 하기 싫어지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면 그래도 정신을 잘 붙잡았을 텐데. 지나간 나날들까지 새삼스레 찾아와 나를 마구 두들기기 시작했다. 돌아보면 좋았던 순간만 있었다며 포장해두었던 연극쟁이 시절. 입시 준비를 위해 온종일 악기 연습을 하고 (대기만성인 나는 배움에 유난히 더뎠다) 여기에서 저기로 걷는 단순하지만 심오한 연기가 되지 않아 (연기해본 사람이라면 오백프로 이해할 수 있다) 걷는 훈련만 반복하던 고통스러운 날들도 있었다. 또 대사 한 줄이 이해가 되지 않아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봤지만 결국 이해도 안 되고 이해가 안 되니 자신 있게 대사를 뱉질 못해 관객들의 매서운 시선을 견뎌내야 했으며, 그런 날이면 무대 뒤에서 홀로 눈물 콧물을 쏟아냈다. 운다고 연기가 나아지는 것은 아닌데 나는 왜 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가 하며 알 수 없는 억울함에 또 울었다. 온몸으로 새록새록 솟아나는 것들이 이런 것뿐이라 어느새 수업은 잊어버리고 나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을 수 있을까 허우적거리지 바빴다. 하지만 나는 대기만성형(?)으로 뒤늦게 꼭 정신은 차린다. 그들에게 연극과 연기가 얼마나 재미있는 작업이고 의미 있는 과정인지 알려주고자 하는 의욕에 불을 지폈다. 나는 정신을 더 차려야 했다. 그래서 인정하기로 했다. <그래, 나는 잘해야겠다는 부담감을 느끼고 있구나.> <정신 차리렴, 이 수업의 주체는 네가 아니란다.> <나를 알리는 게 목적이 아니라, 내가 아는 것을 그들에게 알려 주는 게 목적이란 걸 잊지 마라 제발!!!>      


사람들은 흔히들 배우만 무대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럴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내게는 아니다) 하지만 배우는 결코 혼자서 연기를 할 수 없다. 극의 4요소라고도 하는 4가지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배우, 관객, 무대, 희곡(대본) 빈말이 아니라 이 4가지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야 하나의 무대가 제대로 완성된다. 눈앞에 빛이 나는 건 배우일지 모르지만, 빛을 내는 건 모두의 몫이고 그 과정에서 모두가 빛이 난다. 그것이 각자의 역할이자 자리이다. 나의 자리는 무대에 오를 그들이 조금이라도 빛이 나기를 바라며 무엇을 하면 좋을지 알려주는 일이다.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마음이 편해졌다. 다가오는 시간이 지루하거나 불안하지 않고 드디어 재미로 오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이 올지, 사람들 자체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그날 그곳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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