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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귤선생님 Dec 05. 2023

대한민국에서 고등학생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선생님, 죄송합니다. 오늘도 학교에 못 갈 것 같아요. 정말 너무 힘드네요. 오후에 병원에 가서 진료 확인서 받아 놓을게요."


   며칠째 학교에 나오지 않는 기준(가명)이의 어머니로부터 또다시 전화를 받았다. 애가 타는 건 어머니와 담임인 나뿐인 건지, 자기 방 침대에 누워 휴대폰만 하고 있다는 기준이는 나의 연락을 피하고 있으며 메시지는 읽히지 않은 채 '1'로 표시되어 있다. 비염이 있는 아이라 병원 진료 확인서를 3일에 한 번씩 받아오고 있어서 학기 종료 전까지 질병 결석으로 해도 다음 학년 진학에 문제는 없지만 과연 내년이 되어도 아이의 마음과 태도에 변화가 있을지가 의문이다. 


   물론 학생 입장은 이해한다. 학기 초에는 수업이나 교내 활동에 그럭저럭 참여할 수는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반 아이들과의 수업 격차가 심해지는 걸 느끼면서 동시에 시험준비를 위해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이다 보니까 그냥 아예 모든 걸 포기하고 싶다는 것이다. 게다가 뚜렷한 목표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기 때문에 도대체 자기가 왜 학교에 나가서 하루종일 자리에만 앉아 있다 와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는데 솔직히 담임으로서 뭐라고 해야 할지 난감하다.


  운동을 좋아하거나 동아리 활동에 적극적인 아이라면 수업 외의 외부적인 이유를 댈 수 있겠지만 말 없고 내성적인 기준이는 그 어떤 것에도 관심과 의지가 없기 때문에 이렇게 질병 결석으로라도 아이를 잡고 있는 게 맞는지 고민이 든다. 사실 자퇴를 하고자 할 경우 자신만의 목표를 가지고 학교 일정처럼 정확히 세부 계획을 세운 경우에만 허락해 왔지만 기준이는 아니었다. 자퇴를 하고 나서도 지금처럼 방 침대에 누워 휴대폰만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리고 부모 역시 이 점에 대해 동의하고 있기 때문에 허락을 하진 않고 있었다. 하지만 기준이를 학교에 나올 수 있도록 해 왔던 여러 가지 방법이 다 통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나뿐만 아니라 부모 역시 어떤 게 맞는 것인지 많은 고민이 드는 건 사실이다.


  예전에는 이런 이유로 학교에 나오지 않는 아이들이 학년에 한 두 명 정도였다면 요즘엔 한 반에 한 두 명은 기본이다. 게다가 코로나 19를 거치면서 온라인 클래스를 경험해 본 아이들은 굳이 학교에 가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학력 격차가 심한 경우에는 '내가 학교에 가서 가만히 있을 필요가 없다'라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대한민국 대부분의 인문계 고등학교가 그러겠지만 학교 활동이 입시 위주이다 보니 수업에 따라오지 못하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할 수 있는 일도 많이 제한된 건 사실이다. 물론 점심시간에 운동을 한다던가 수업시간에 교과 선생님께 허락을 구해 관심 있는 책을 읽는 식으로 어떻게든 학업을 이어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학생들조차 "교실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 내가 도대체 뭐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라고 말한다. 한때 도 대회 스포츠클럽 준비로 학교 오는 걸 재미있어했던 몇몇 아이들조차 대회 과정이나 결과를 생기부에 입력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과 더 이상 해당 운동을 학교에서 이어나갈 수 없다는 것에 아쉬워했다.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한 선생님은 자신이 고등학생 시절에는 모든 아이들이 매일 오후 내내 다양한 클럽(동아리) 활동을 했다면서 우리나라 고등학교에서는 주 1회, 게다가 입시 위주의 정해진 동아리밖에 선택할 수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했다. 실제로 내가 근무하는 고등학교에서 영어 회화를 가르쳤던 미국인 선생님은 아이들이 고등학교에서 주로 입시와 관련된 수업과 활동을 하고 있다는 점에 놀라워했으며, 학교 밖 외부 활동은 학교생활기록부에 아예 입력할 수 없다는 것이 신기하다고까지 말했다.


  한 때 학교 밖 활동을 학교생활기록부에 입력하던 때가 있었다. 도 대회나 전국 수준의 다양한 활동에 아이들이 활발히 참여했으며 심지어는 3년 내내 도서관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책 읽기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 온 학생들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이 대입을 위한 외부 활동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아붓고 있다는 등의 이유로 교내 활동만 생기부에 입력하도록 바뀐 이후로는 그런 외부 활동이 교과별 혹은 학년별의 활동으로 옮겨갔다. 물론 교사 입장에서는 다양한 활동을 만들어 아이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진로에 도움이 되는 활동 위주라는 점에서는 딱히 변명거리가 없다.


  대한민국에서 고등학생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전 과목을 다 잘해야 하고 교내 활동에도 참여해야 하며, 아직 스스로 뭘 잘하는지 모르겠는데도 담임은 생기부에 입력해야 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진로를 적어 내라고 한다. 배구를 하고 싶지만 학교에 배구 동아리가 없어서 축구 동아리에 들까 했는데 주변에서는 진로에 도움이 되는 학업 관련 동아리가 낫지 않겠냐고 말한다. 내신 고사 준비도 바쁜데 과목별로 선생님들이 수행평가라며 해야 할 것들을 계속 요구한다. 


  나 역시 대한민국에서 고등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이기 때문에 학교 교육에서 벗어나는 아이들은 붙잡아야 하며, 입시 위주의 교육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학교에 재미를 느꼈으면, 혹은 학교에 갈 이유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학급 활동에 입시와 관련은 없지만 순전히 재미로 다양한 활동을 넣었고, 참여자가 한 두 명이라고 해도 신청한 학생이 있는 게 어디냐는 생각으로 열심히 준비하고 있다. 


  이렇게 하다 보면 조금씩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변화가 있지 않을까... 그리고 언젠가 대한민국에서 고등학생으로 그리고 교사로 살아간다는 것에 큰 재미를 느끼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서 오늘도 힘차게 교무실을 나서본다. 



*커버 이미지: 김정숙 작가의 '미술과 행복 이야기' 전시회 작품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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