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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맛을 느끼고 싶다면

누구나 즐겁게 일하길 원한다. 하지만, 누구나 일하면서 항상 즐거울 수는 없다. 나 역시도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여 년 일을 하면서 종종 이런 질문을 들어왔다.


- 일가장 즐거우셨던 때는 언제인가요?

- 그런 열정은 어디서 나오나요?


사람들이 내게 이런 질문을 많이 한 이유는 내가 열정을 가지고 즐겁게 일한 시간이 다른 사람보다 비교적 많아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 난 한동안 신나게 일했다.




나는 머리가 특별히 좋거나 아이디어가 풍부한 사람이 아니다. 회사를 20여 년 다니면서 엄청난 성과를 이루어낸 것도 아니다. 비교적 소심한 성격에 때론 어리석은 짓도 종종 하곤 하는 그저 평범한 직장인이다. 그런 내가 열정을 가지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일의 맛'을 알게 되었던 계기는 무엇이었을까? 일이 가장 즐거웠던 때는 언제였을까?


시간을 돌이켜보니, 일이 가장 즐거웠던 때는 '내가 일의 주체가 되었던 순간'이었다. 직장에서 일을 하다 보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권한이 더 많아지고 직접 새로운 일을 기획해서 실행할 수 있는 때가 온. 업무에 대한 권한은 주로 회사가 나에게 부여하는 것이지만, 자신도 스스로에게 특정 업무를 부여할 수도 있다. 내가 가장 일을 즐거워했던 때가 바로 그렇게 일했을 때였다.


내가 주도적으로 일할 때 일이 즐거워지고 이 즐거움은 함께 일하는 동료에게 전이되어 멋진 팀워크를 이룬다


여러 책을 기획하고 개발하던 어느 날 회사는 나에게 처음으로 중요한 프로젝트를 맡겼다. 드디어 내가  선배나 그 누구의 개입 없이 오롯이 나의 생각과 판단으로 기획 방향을 잡을 수 있는 첫 프로젝트가 주어진 것이다. 그것은 정말 신나는 일이었다. 제품에 대한 설문지를 꼼꼼히 작성하고 한 달 남짓 전국의 총판돌고 소비자를 만나며 광범위한 시장조사를 했다.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작은 의견 하나하나에도 귀를  기울이며 소비자들의 숨은 요구를 찾기 위해 여러 밤낮을 고심했다. 소비자들의 핵심 요구를 찾은 후에는 그것들을 잘 반영하기 위해 이 책이 어떤 방향으로 구현되어야 하는지, 책의 구성과 난이도는 물론, 학습 사이사이에 읽으면 좋을 것들과 같은 세세한 부분까지 정성을 들여 기획을 했다. 그동안 이 분야에서 쌓아온 나의 경험들을 총집결하는 순간이었다. 이 기획은 12권의 책으로 기획되어 세상 밖으로 나왔다.


자식 같은 첫 책이 세상 밖으로 나올 때쯤 나는 내가 소속된 회사의 한계를 느꼈다. 내가 홀로 기획한 첫 책인 만큼 다른 대형 출판사처럼 다양한 루트와 방식으로 마케팅이 진행되기를 기대했었다. 하지만 이 회사의 마케팅 부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마케팅 부서처럼 홍보를 위한 팀이 아니라 도서 총판을 관리하기 위한 영업팀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책이 잘 팔렸으면 좋겠다. 이 책을 홍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판다고 했던가. 나는 그때 잠시 셀프 야간 마케팅 부서가 되었다. 요즘 말로 하자면 열정 페이만으로 일을 했다. 회사가 시킨 것이 아니었다. 단지 내가 하고 싶은 바가 있어서, 목표하는 것이 있어서였다. 난 나의 첫 기획물이 비슷한 도서 부류에 끼지도 못하고 소비자에게 한걸음 다가가지도 못한 채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아니, 다른 책 중에서 이 책이 제 역할을 잘해주기를 바랐다. 이런 바람으로 회사 근무 외의 시간에 책 홍보를 위한 블로그를 만들고 각 온라인 서점과 포털사이트에 홍보글을 남겼다. 팀원들은 물론이고 지인들에게도 도움을 요청했다. 젊어서였을까? 이때는 정말 야근이고 뭐고 불사를 수 있을 때였다. 작지만 꾸준한 노력의 결과, 다행히도 12권의 책들은 기존에 같은 분야에서 자리 잡고 있는 출판사들과 비슷한 정도의 판매율을 기록했다.


이때 나는 일하는 것이 참 재미있었다. 일의 시작부터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 스스로 업무의 큰 틀을 짜고 실행하고 이 분야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보니 작은 꿈도 생겼다. 멋진 어학 출판사로 독립할 수 있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멋진 꿈. 작은 책 하나로부터 시작된 작은 팀, 작은 팀이 할 수 있었던 많은 일들, 그  팀의 미래를 위한 3개년, 5개년 계획을 짜고 실행되는 것이 정말 즐거웠다.


안타깝게도 이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직장을 다니고 있는 20년 차 직장인이다. 하지만, 그때가 내가  일을 가장 즐겁고 신나게 하기 시작했던 최고의 순간이었다. 다른 사람이 시킨 일이 아닌 나만의 목표를 만들고 성취하는 기쁨을 누렸던 경험. 그 경험은 운 좋게 그 후에도 여러 차례 반복되었고 그것은 내가 계속해서 일에 즐겁게 몰입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일의 맛을 느끼고 싶다면, 자신의 권한을 좀 더 넓히고 주도적으로 일을 하라. 회사가 또는 남이 시키는 일만 그대로 하면 재미가 없다. 그럴 때 내가 사장인 듯 일을 해보자. 일을 할 때 자신의 목표를 세우고 더 효율적인 프로세스나 방법 등을 고민해서 적용하자. 사장처럼 주도적으로 일을 한다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나처럼 출판사에 다니고 있다면 오류 0%의 책이라든지, 초등학생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만들겠다는 목표일 수도 있고, 업무 방식이나 프로세스를 개선하는 것일 수도 있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일을 해나가면서 작은 시도의 기쁨을 느끼다 보면 어느새 당신도 '일의 맛'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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