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노트 - 3
본의 아니게 글이 많이 늦었다.
가끔 브런치 카테고리를 타고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개업을 하고 다사다난한 1년이 지났다. 일은 좀 처럼 뜻대로 되지 않았고 이사한 집에선 물이 새는 통에 8개월만에 급하게 이사를 준비해야했다. 10월엔 계약 했던 고정 거래처 중 하나가 돌연 프로젝트 취소를 외치며 거래가 끊겼고 한 곳은 거래처 막내 직원의 실수로 남의 회사 프로젝트의 덤태기를 쓸 뻔도 했다.
일이 쉽지 않을 거라는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어든 지난 1년간의 성적표는 처참했고 불만족스러웠다. 1년이라는 시간동안 내 포트폴리오에 남길만한 무언가가 하나도 없었다. 돈은 벌었지만 다음 단계로 이어나갈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냐고 누가 묻는다면 자신있게 대답할 거리가 없었다.
그랬기에 연말의 지독한 풍파를 겪고 나서 한 동안은 다시 회사로 돌아가야 하나 싶었다. 몇몇 친구들은 연차가 슬슬 쌓이며 자리를 잡았고, 한 친구는 이런 상황을 아는지 몰랐는지 연이어 스카웃 제의를 주기도 했다.
누구는 이 나이에 성공해서 무얼 하고 있다니, 뭐니 하는 유튜브 영상이나 웹진 기사를 보고 있노라면 어디서 부터 꼬인걸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회사로 돌아오란 말들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안정적인 수입, 골치아픈 제안서, 고객상담, 세금문제로 더 이상 골머리 썩을 일도 없을테니까.
그런데 문득, 면접자에게 많이들 물었던 질문 하나가 생각났다.
"그래서 그 실패에서 뭘 배웠나요?"
1년 넘게 회사를 안다니고 뭘 했으니 만약 면접장에 가면 이런 질문을 들을게 뻔한데 그때의 나는 대체 무슨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자소설이라 할 수 있을 만큼 포장할 이야기도 없었고, 무언가 해야겠다며 벌려 놓았던 일들은 고착 상태에 빠졌으며 끊긴 거래처 복구를 위해서 노선을 바꿔본다던지 시도 한게 없었으니까 당연했다.
그래서 썩 내키지 않았지만 ( 사실 마음은 이 힘든 굴레를 벗어던지고 싶었다. ) 회사로 돌아갈 고민을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 방금 도착한 국세청 문자 때문에 또 신경이 곤두서기 시작했지만 그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귀찮지만 하나씩 바꿔보기로 했다. 배는 고프겠지만 단가를 낮추고, 거래 제안서는 상대방 입맛에 맞게 추려서 다시 폼을 만들었다. 작년엔 들여다보지 않았던 포맷의 프로젝트들에 눌을 돌리기 시작했고
겁이 나기도 했지만 우선은 그게 중요한게 아니었다.
그냥 누군가 실패에 대한 질문을 캐물었을 때, 면피할 무언가라도 만들어보자는게 목적이었으니까.
그렇게 이런저런 회신들을 기다리며 새해 첫 달이 그렇게 흘러갔다.
그리고 2월.
다행스럽게도 무려 네건의 계약이 성사되었다. 금액적으로 아주 만족스럽지는 못하지만 새로운 고정 거래처가 나타났고 결과물에 대한 유의미한 인사이트가 쌍방에 생기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잡음 없이 무난하게 쌓여가는 결과물들 덕에 마음이 좀 놓이기 시작했다.
사실 여전히 불안하지만, 골치 아픈 문제 하나가 떨어져 나간 느낌이라 다른 문제들을 돌볼 여유가 생겼다.
일이 좀 체계화 되고 조정이 되면 작년에 벌려놓았던 많은 프로젝트들을 다시 만져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 단계까지 가기까지 많은 불안 요소들과 나에 대한 불신을 넘어서야겠지만
올해의 성적표에 무언가를 남길 수 있는 첫 발걸음을 떼었다는 것으로 일단은 만족해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