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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뚝배기 Mar 19. 2024

당신의 꿈은 이상입니까, 현실입니까

늦은 <오펜하이머> 감상후기

 

< 오펜하이머 > , 스틸 컷 속에서도 왠지 무게감이 느껴진다.

 

 오랜만에 처음 부터 끝 까지 숨죽이며 본 영화였습니다. 전기영화라기에는 무거웠으며 다채로운 심리묘사는 영화가 끝나고도 긴 여운을 남겼으며 영화 속 번갈아 등장하는 현재와 과거는 마치 '오펜하이머'의 이상과 현실을 양분하여 보여주는 듯 했고 번쩍이는 폭탄의 불꽃은 요란하지는 않았지만 압도적이었습니다.


 놀란 영화의 특징 답게 영화 속 시간은 여전히 뒤죽박죽입니다. 물론 큰 흐름은 우리도 아는 '핵폭탄 개발' 이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루이스 스트로스'의 '오펜하이머'에 대한 회상과 '오펜하이머'의 청문회 중 회상이 연달아 점프하며 소개됩니다.

 

 혹자는 이 영화를 단순 전기영화이기에 핵폭탄을 개발하는 과정과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크게 재미가 있지 않았을 것이라 평가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이야기하기에 이 영화는 '오펜하이머' 라는 인물의 감정선을 너무 세심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전쟁을 끝낼 수 있는 발명품을 만들 수 있는 본인의 능력에 대한 자신만만함, 그러나 막상 성공하고도 정치인과 세력들에게 놀아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허탈감과 더 큰 전쟁을 불러일으켰다는 죄책감에서 오는 자기반성은 시종일관 압박감을 주는 다양한 연출 속에서 굉장히 진하게 다가옵니다.


 종전이 되고 기뻐하는 사람들과 겹쳐 보이는 비극적인 장면들 속에서 '오펜하이머'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옳고 그름을 끊임없이 되묻습니다. 많은 이들을 지키는 선택이란 명목하에 시작된 '핵폭탄' 개발은 차악이 되었고 '차악'은 머지 않아 '오펜하이머' 에게 많은 갈등을 안깁니다.

 

 영화 속 '오펜하이머'는 똑똑합니다. 물리학자로서 자신감 넘치며 이념적인 문제에서까지 그는 논리적으로 모든 문제를 풀어가려 합니다. 그에게 '차악' 인 '핵폭탄'은 수학적으로 풀어갈 수 있는 이상적인 해결방식이었고 가장 높은 확률로 최대다수의 행복을 끌어낼 수 있는 방법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거대한 현실 앞에 이상은 무너졌고 그가 꾸던 꿈은 악몽이 됩니다. 영화 속 대중들과 정부 인사들은 '오펜하이머'를 몰아갑니다. '차악' 이라 생각하며 만류하던 더 많은 군비경쟁은 그를 붙잡는 족쇄가 되었고

'핵폭탄'은 그가 열은 새로운 시대를 좌지우지 할 열쇠이자 자물쇠가 되어 버렸습니다.


 극의 후반부 내내 이어지는 '오펜하이머'의 압박감은 길고긴 스트로스와 오펜하이머 양측의 청문회가 끝나며 어느 정도 해갈됩니다. 전기영화이기에 아주 아주 색다른 시원한 맛은 아니지만 그가 이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던 이유와 우리가 그를 왜 이해해야하는지, 이 '핵폭탄' 이라는 것을 개발하게 되면서 생긴 수많은 결실과 업적에 대한 무게감을 여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180분의 러닝타임은 아주 길었지만 쉴틈 없는 감정선의 변화와 연출, 놀란 감독 영화에서 맛볼 수 있는 웅장한 음악들과 버무러져 지루하기보다는 꽤 흡입력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다시금 '오펜하이머'가 남겼던 말을 곱씹어보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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