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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원호 Dec 07. 2019

두 개의 섬 5화

인연에 대하여



그는 열탕과 냉탕의 즐거움을 뒤로한 채 마지막 수순으로 노천탕으로 향했다. 외부의 차가운 날씨와 내부의 끓어오르는 유황천이 만나 수증기로 춤을 추는 노천탕은 순환과 조화의 아름다움이 꽃을 피우는 곳이었다. 그는 열탕과 냉탕을 오고 가며 느끼던 즐거움을 이 노천탕에서도 똑같이 느낄 수 있었다. 가을과 겨울의 사이, 뜨거움과 차가움의 사이에서 그는 노천탕에 발을 담구었다.


하얀 김이 구름처럼 쏟아져 나오는 곳이었다. 밤바람과 온천수는 맞닥트리며 부드러운 구름들을 낳았다. 그의 상반신은 구름 가득한 밤하늘에, 하반신은 반짝거리는 온천수 속에 담겼다. 온기에 몽롱해지려고 하면 가을바람이 시린 냉기로 추상같이 꾸짖었고, 냉기에 움츠러들라치면 온천수가 열기로 등줄기를 거세게 쓰다듬었다. 그는 이 순환 속에서 이 모든 것 역시 상생이라고 여길 수 있었다.


그는 고개를 천천히 들어 구름 속 풍경 같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낙엽이 흩날려 온천수에 내려앉는 모습은 마치 신선지경에 들어온 것 같은 기분을 그에게 선사했다. 아쉬운 점은 이 아름다운 광경을 함께 봐주는 사람이 이 넓은 노천탕에 한 명 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그 고독한 동참자는 풍경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어보였다.


그와 함께 노천탕을 알몸으로 점거한 유일한 사람은 깡마른 소년이었다. 그냥 깡말랐다 뿐만이 아니라 고민과 번뇌로 비쩍 말라버린 것 같은 어린 소년은 앙다문 입술 사이로 고집스러움을 내비쳤고 괴어쥔 눈썹 사이로 고뇌를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 시기의 소년 중 그 누가 고민하나 없기야 하겠느냐만은, 또 그렇다고 온천에서까지 누구의 방해도 용납하지 않는 태도로 고민에 빠지는 것이 보편적인 일 역시도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소년에게 자연스러운 흥미를 가지며 상상했다.


'분명, 사랑에 관련된 문제일거야.'


라는 것이 그의 첫 추측이었다.


'아마 첫사랑일 테지? 어떻게 고백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일지도 몰라.'


물론 그는 청의 호수에서 불륜을 저지르는 노커플을 금슬 좋은 노부부로 착각하는 실수를 저지른 뒤에는 타인에 대한 상상과 억측을 조금은 줄이기로 마음먹은 상태였다. 그 소소한 억측은 그를 작은 깨달음으로 이끌었을 뿐만이 아니라, 타인을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는 스스로에 대해서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주기도 했다. 사람들은 서로 알려고 노력하는 대신, 착각된 편견과 평가를 타인에게 투영하는데 더 익숙했다. 그리고 그것은 서로를 가까워지게 만들기보다는 더 멀어지게 만드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서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기에도 바빠서 서로에게 닿을 수 없다는 사실은 그에게 생각보다 큰 슬픔을 안겨주었고, 그래서 그는 스스로라도 타인에 대한 억측과 상상을 멈추기로 마음먹은 상태였다. 그것부터 멈추어야 타인과 닿는 면 - 섬 - 이 생길 수 있을 것이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막상 맞닥트려보니 그 다짐은 생각만큼 지키기 쉬운 것은 아니었다. 그는 소년에 대해서 평가하지 않고서는 그 어떠한 유의미한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사람과 사람은 서로 추측과 상상으로 이어져 있어서 떠올려보지 않고는 그 무엇도 알 수가 없었다.


노천탕에 앉아서 그가 소년에 대해서 확실하게 알 수 있는 정보는 외모적인 부분 밖에는 없었다. 물론 벌거벗은 채 노천탕에 앉아있는 상황이라 신체에 대한 정보를 얻기 어렵지 않은 것은 있었지만, 소년의 키나 허리둘레, 팔 길이 따위를 잘 알게 되는 것이 소년을 이해하는 것을 돕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언어가 서툴러 소년에게 말을 걸 수 조차 없었고, 설령 언어가 서툴지 않았다고 해도 벌거벗은 채로 낯선 미성년자에게 말을 거는 것을 시도할 생각은 없었다. 말을 걸 수 없으니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루어질 리 없었고,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데 그 사람에 대해서 알거나 이해할 수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서 조금 더 깊게 생각해보다가 한 가지 한계를 더 깨달았다. 사실 대화가 이뤄진다고 해도 그 사람을 확실하게 더 알게 되는 것 역시도 아니었다. 


그는 어딘가 논문에서 읽었던 내용, 사람들은 대화할 때 평균적으로 7%의 거짓말을 섞는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이것은 상대가 사기꾼이나 허언증 환자가 아닌 일반인일 때의 비율이었기에, 실상 세상의 악한들이 내어놓는 거짓말까지 합친다면 정상적인 대화를 통해서도 사실을 알 수 있는 가능성은 한없이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는 소년과 언어적인 장벽을 모두 통과하여 대화를 나누어도 고작 거짓 섞인 가공된 이야기를 받아낼 수밖에 없다면 그것이 상상하는 것보다 과연 낫기는 할지 의문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조금 사고를 수정해 보았다. 어쩌면 되려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상상하고 추측해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비록 자신의 상상이 상대방의 경험과 완벽하게 일치할 수는 없더라도, 서로 비추고 미루어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될 수는 있는 탓이다. 그는 사람과 사람이 닿는 면이 반드시 일치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서로 똑같지는 않더라도 닮기는 했다면 사람은 서로의 섬에 정박할 수 있었던 셈이다.


그는 소년을 평가하지는 않으려고 애썼지만, 대신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첫사랑의 아픔과 추억은 그에게도 있었기에, 그 모든 것이 자신의 것처럼 느껴질 수 있었다. 풋풋해서 설레고 풋내 나서 아팠던 그 시절의 고민거리들이 그에게 홍수처럼 밀려들었다. 그 모든 기억은 소년과는 관계없는 그만의 것일 테지만, 바로 그렇기에 그는 소년을 평가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떠올리는 상상이 자신의 것임을 주지한 채로 소년을 이해하기 위해 애썼다. 그래서 그의 경험에 의거하여 소년을 보고, 소년을 봄으로서 다시 자기 자신을 보게 될 수 있었다.


첫사랑의 기억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리 낡지는 않은 기억이었다. 아마도 달콤하기보다는 짤만큼 아팠기에, 그리고 시큼할 만큼 시렸기에 그 감정의 편린들은 쉽게 기억의 표면으로 떠올랐다. 너무 불안해서 새침데기 같았던 소녀의 얼굴과 너무 예민해서 멍청할 수밖에 없었던 소년의 얼굴이 차례로 기억을 할퀴었다. 그리고 그 할큄의 흉터를 넋을 놓고 매만져보던 중에서야 그는 그 순간의 기억들이 영롱하지만은 않은 것임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때의 그들은 너무 어려서 자기 자신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조차 몰랐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모르는데 박혀 드는 타인이란 결국 생채기나 흉터가 될 뿐이었다. 첫사랑은 그처럼 오래된 생채기와도 같았기에 수많은 시인과 영화들이 노래하는 애틋함도, 절절한 사랑스러움도 깃들어있지 않았다. 다만 아물지 않은 낡은 염증처럼 시큰거릴 뿐이었다.


그 여자아이를 왜 좋아했는지는 기억 속에서 떠오르지 않았다. 특별히 예쁜 것도 아니었고 그에게 다정한 것도 아니었는데 왜 그토록 마음이 끌렸는지는 그때도 이해할 수 없었고 지금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떠오르는 기억들이라곤 드세게 꼬집힌 것과 숙제를 대신해주어야 했을 정도로 (멍청하게) 사랑했던 것, 연락이 왔을까 봐 안절부절못했던 것, 답장을 바로 하지 않으면 그 아이가 화를 내었던 것처럼 좋아해볼라야 좋아할 수가 없는 기억들 뿐이었다. 그는 사랑의 단서를 찾기 위해 몇 개의 낡은 기억들을 더 헤집어본 뒤에야 불쾌함 속에서 헤어 나올 수 있었다. 아마도 그때도 이유를 몰랐기에 기억조차 할 수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왜 시작되었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하여서 그 관계가 가벼워지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는 그 아이와의 인연이 얼마나 끈질긴 시간 동안 이어져왔는지 잘 알고 있었다. 왜 좋아하는지 조차 몰랐기에 그 관계는 때론 아픔인 채로, 하지만 또 어떨 때에는 따스함이나 의지의 대상인 채로 인연의 끈이 이어졌다. 그 누구도 인연의 실가닥이 어디서부터 자아져 어디로 땋아져 가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하지만, 결국 모든 사람이 그 실로 자아진 타페스트리의 일부분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왜 사람들이 그 거대한 실낱들의 일부가 되는지 궁금해해야만 했다.


사람들에게는 뚜렷한 이유 없이도 인연을 잣는 놀라운 능력이 있었다. 돈이나 지위 때문에 관계를 만드는 재미없는 존재들 - 어른 -으로 전락하기 전, 모든 어린이와 젊은이들은 전혀 닮은 곳이 없는 대상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았다. 때론 닿거나 사랑하기조차 어려워 보이는 '다름'과도 연이 이어질 수 있었다. 어릴 적 친구들과 공통 관심사 없이도 어울릴 수 있고, 처음 찾아드는 사랑에서 이유를 찾을 수 없는 것은 연을 잇는 능력이 사람에게는 선천적으로 주어진 능력이기 때문이었다. 이유를 두고 사랑했다가 세월에 잊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이유 없이 사랑했기에 이유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은 그에겐 꽤 멋진 일로 들렸다. 그렇듯 사람은 처음부터 이유 없이 닿아가며, 이유 없이 아끼고, 이유 없이 사랑할 수 있는 존재였다는 뜻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동시에 사람들은 그 능력을 나이가 들어가며 잃어버렸다. 나이를 먹고 세속에 물드는 데다가 현실과 타협하며, 그 순수하고 아름다운 능력이 점차 사라져 갔던 것이다. 그리고 그 능력을 잃어버린 이들은 그다음 세대에 건네줄 수 조차 없었다. 이젠 어린아이들이 유치원에서부터 부모 직업 서열로 관계를 맺었으며 청년들은 외모와 능력 조건이 맞아야지만 짝을 이루었다. 성인들은 가치관이 맞지 않으면 가족과 친구마저도 손쉽게 잘라내었고, 갓 태어난 아기들은 절박함과 필요를 통해서만 부모와 관계 지어졌다. 그 필연적이고 의도적인 사랑은 인연의 본질인 우연성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로부터 비롯된 아름다움 역시도 머금을 수가 없었다. 그는 깨달았다. 이유 없이 사랑할 수 없기에 사람은 섬에 가는 방법도 잊어버렸던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그가 닿았던 인연들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잘 맞아서 애타도록 좋아한 관계들보다는, 필요와 우연에 의해 맞닿은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같은 동네에 살아서, 같은 학교를 다녀서, 같은 언어를 말하고 같은 아픔을 겪어서 그는 사람들에게 보다 손쉽게 닿을 수 있었다. 첫사랑을 시작하게 되는 것도 우연, 관계가 진전되는 것도 우연, 관계가 끝나는 것도 모두 우연일 뿐이었다. 우연을 인연 삼을 수 있는 것은 사람이 섬에 갈 수 있는 방법이었다. 나이가 들어감에도 불구하고 그 우스꽝스럽고 비논리적인 우연을 마음에 품어 사랑의 이유 삼을 수 있다면 사람은 언제나 섬에 갈 수 있었다. 그것은 그의 눈에는 꽤 사랑스러운 한 송이 꽃처럼 보였다.


그는 고개를 들어 고민에 찬 소년을 바라보았다. 한번 말을 걸면 서로가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섬에 닿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에서였다. 하지만 우연을 핑계 삼아 인연을 자아내 보려는 그의 시도는 소년의 실존, 그러니까 실종으로 인해 무산되었다. 소년과 고민이 있던 자리에는 뿌연 수증기와 다섯 장의 가을 낙엽만이 떠다니고 있었다. 그는 그것도 나쁘지 않은 우연이라고 생각하며 방긋 미소 지었다. 







6화에서 계속


매주 수요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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